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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관 - '폭싹'과 '핫스팟', 두 로컬 배경 드라마가 던지는 질문

플레이광주 0 131 03.19 10:03


한라산과 후지산, 스크린 속 로컬의 온도차

넷플릭스 시리즈 '폭싹 속았수다'가 공개 직후부터 뜨거운 화제를 모으고 있다. 제주를 배경으로 1960년대부터 현재까지의 이야기를 담은 이 드라마는 애순’(아이유/문소리)와 관식(박보검/박해준)의 모험을 사계절로 표현하며, 성장과 사랑, 가족의 의미를 깊이 있게 탐구한다. 매주 금요일 새로운 에피소드가 공개될 때마다 시청자들은 인생 드라마라는 찬사를 보내고 있다. 필자 역시 드라마 속 주인공들처럼 1950년대생 부모를 둔 시골 촌놈으로서, 드라마를 보며 부모님과 나의 성장기를 떠올리며 주책맞게 눈물을 훔친다.  "다른 사람을 대할 땐 연애편지 쓰듯 했다. 한 자 한 자 배려하고 공들였다. 그런데 백만 번 고마운 은인(부모님)에겐 낙서장 대하듯 했다. 말도 마음도 고르지 않고 튀어나왔다." 와 같은 독백에 무너지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로컬, 배경인가 주인공인가

'폭싹 속았수다' 열풍에는 제주 고유의 문화와 서민들의 삶에 대한 핍진한 묘사가 한몫했다. 정낭, 식게반 등 제주 전통문화 요소는 리얼리즘을 더했고, 드라마 제목처럼 제주 방언으로 표현된 대사들은 제주 여성들의 삶을 더욱 애절하게 그려냈다. 이를 통해 제주민이 아니더라도,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시대극이자 부모님 세대에 바치는 헌사가 됐다.

 

이 드라마와 결은 다르지만, 넷플릭스에서 잔잔한 인기를 끈 드라마가 있다. 일본 후지산 기슭을 배경으로 한 '핫스팟'이다. 싱글맘 주인공이 외계인 동료의 도움을 받아 일상 속 소소한 문제를 해결하는 이 작품은, 고교 동창들의 계모임처럼 그 지역만의 문화를 바탕으로 서로 돕고 소통하는 모습을 아기자기하게 담아낸다. 또한, 드라마의 주 배경이 되는 후지산의 아름다운 경관과 로컬 맛집, 카페, 술집은 누구라도 방문하고 싶은 생각을 하게 한다. '폭싹 속았수다'가 한국 시청자들의 인기를 독차지한 것처럼, '핫스팟'은 일본 시청자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다. 격동의 한국 현대사 속 극한 환경에서 가족을 지켜내는 한국 드라마와, 일본 소도시에서 일어난 다채로운 해프닝을 소재로 소확행을 추구하는 일본 드라마는 양국 시청자들의 문화와 취향 차이를 보여주는 지점이기도 하다.

 

 

로컬 드라마, 무엇을 담아야 하는가

하지만 로컬 콘텐츠의 관점에서 볼 때, 둘의 차이는 꽤 명확하다. '폭싹 속았수다'가 제주 고유 문화를 재조명했지만, 결국 지역은 지나간 역사처럼 드라마의 극적 요소를 위한 배경이나 소재로서 기능한 측면이 강하다. 반면 '핫스팟'은 로컬의 현재적 삶의 아름다움과 기쁨을 강조한다. 일례로 '폭싹 속았수다'600억을 들여 제주 바다와 전통 마을을 그대로 재현한 세트장을 안동에 세웠지만, 지금은 관리 비용 문제로 모두 철거했다. 반면 '핫스팟'에 나온 카페와 맛집은 관광객들로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고 한다.

 

이 글은 무엇의 옳고 그름을 논하려는 게 아니다. 일본과 한국 문화의 우위를 평가하려는 것도 아니다. 매주 금요일에 공개되는 '폭싹 속았수다'에 푹 빠져 있으면서도, 그 직전에 인상 깊게 보았던 '핫스팟과 비교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 차이가 보였을 뿐이다. 다만, 한가지 바람이 있다면, 앞으로 드라마가 '폭싹 속았수다'처럼 특정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바탕으로 굵직한 시대극을 만드는 것에서 더 나아가, '핫스팟'처럼 다양한 지역의 현재적 삶과 소소한 일상의 가치를 조명하는 방향으로 소재, 형식, 내용을 확장해 나갔으면 한다


로컬이 단순한 시대극의 배경이나 주인공의 고난을 강조하는 요소로만 기능하지 않고, 로컬 그 자체의 삶,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철학과 라이프 스타일을 아름답고 다채롭게 담아내야 한다는 뜻이다. 지역에서 살아가는 것이 결코 힘들거나, 재미없거나, 뒤처지는 삶이 아니라, 그 자체로 충분히 매력적이고 가치 있는 삶이라는 메시지를 다양한 작품을 통해 더 자주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건, ‘콘텐츠 크리에이터로서 내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이자 요청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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