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가 중대한 잘못을 저지르거나 큰 실수를 하여 사회적으로 지탄(指彈)을 받으면 “도대체 참모들은 뭐하는 거야?”라고 참모 탓을 하는 경우를 흔히 본다. 과연 이게 참모만의 탓일까?
나는 이 말을 들을 때마다 “참모들이 문제라고? 아냐 문제는 리더야. 생각을 해봐. 어떤 문제에 대해 의견을 제시했는데 리더가 귀담아듣지 않고, 때로는 듣기는 하는데 자신의 뜻대로 관철해. 그리고 일이 잘못되면 과오는 인정하지 않고 참모를 탓하고, 때로는 훈계하듯 나무라면 바른말을 하는 것도 한두 번이지 계속 충언(忠言)할 수 있을까? 그러면 참모의 선택지는 하나밖에 없어. 그만두거나 아니면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순응하며 일하거나. 그러면 리더 주변엔 소위 말하는 예스맨들만 득실거리게 돼. 한마디로 인의 장막에 둘러싸여 건전한 비판도 들으려고 하지 않고, 자신이 잘하고 있는 줄로 착각을 해. 그러다 회사도 나라도 망하는 거지. 문제는 참모가 아니라 결국 최종 결정권자인 리더야”라고 말하면 대개 수긍을 한다.
코비리더십 센터의 창립자이자 부회장인 블레인리가 쓴 지도력의 원칙(The Power Principle)에서 그는 지도력을 크게 3가지로 나누고 있는데 이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첫째, 독재자들이 사용했던 ‘강압적 지도력’. 둘째, 어떤 혜택이나 이익이 있을 때만 관계를 유지하는 ‘실리적 지도력’, 그리고 셋째는 존경심에 바탕을 둔 ‘원칙중심의 지도력’이다.
현재 우리 사회의 리더들을 보면 일부 강압적 지도력을 가지면서 이해관계가 있을 때만 관계를 유지하는 실리적 지도력의 단계에 놓여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87년 민주화 투쟁으로 쟁취한 직선제 개헌과 30여 년의 지방자치제를 경험하면서 축적된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는 12.3 비상계엄 이후 ‘원칙중심의 지도력’을 발휘할 수 있는 지도자를 더욱 간절히 원하고 있다.
그런데 왜 우리 사회에선 ‘원칙중심의 지도력’을 가진 리더를 찾아보기 어려운 것일까? 그것은 바로 좋은 ‘학습효과’에 따른 경험치가 축적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례로 유럽의 경우 10대 때부터 정당 활동과 봉사활동 등 체계화된 다양한 활동을 통해 훈련과정을 거친다. 그래서 20대 후반이나 30대 초반에 정당이나 국회를 대표하는 리더가 나오고, 30대 또는 40대에 장관이나 총리, 대통령이 나온다. 오랜 학습효과와 당사자의 끊임없는 노력 그리고 학교, 정당, 지역사회 등의 역량이 집중되어 약관의 나이에도 국가를 이끌어 갈 지도자가 나오는 것이다. 이런 과정을 보고 자란 후세들은 그들을 본받고 더 뛰어난 리더가 되기 위해 더욱 노력하는 ‘학습효과의 선순환’이 작동하게 된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가 실물경제로 옮겨가고, 금융위기로 전이되는 악순환이 반복되려고 할 때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통합의 리더십을 발휘했다. 당시 그가 미국인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은 이유는 부시와 달리 화해와 협력을 주창하고, 공화당 출신 또는 경쟁자였던 힐러리 클린턴을 요직에 등용하는 등 통합의 리더십을 발휘하고, 실천했기 때문이다.
국가는 다양한 사고와 계층이 존재하는 복잡다단한 구조를 가진 거대한 집단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2차 세계대전 이후 독립한 국가 중 가장 빠르게 경제를 성장시키고, 국민의 피와 땀으로 민주주의를 발전시켜 온 나라다. 이처럼 역동적인 대한민국에서 상식보다 비상식이 난무(亂舞)하고, 이치에 맞지 않아도 궤변(詭辯)과 요설(饒舌)로 우기면 그것이 사실인 냥 호도(糊塗)된다. 내 편 아니면 적이라는 진영논리가 판을 치는 한 정쟁(政爭)은 발생할 수밖에 없고, 그러면 국민 여론은 극단적으로 분열돼 이번처럼 심리적 내란 상태에 빠지게 된다. 그러면 나라가 어찌 되는지 우리는 현실에서 목도(目睹)하고 있다.
올해는 윤석열의 비상계엄으로 인해 국민의 삶이 그 어느 때 보다 힘들다. 윤석열 파면은 예상보다 시간이 더 걸리겠지만 헌재에서 인용될 것이다. 아니 인용되어야 한다. 대한민국과 국민을 위해...그리고 대통령 선거가 정상적으로 치러진 후 새로 탄생하는 정부는 지체(遲滯) 없이 적폐 세력 청산과 국민경제 안정화에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문재인 정부의 실패를 되풀이해서는 절대 안 된다. 비상계엄 이후 그 어느 때 보다 힘든 국민의 마음을 치유하고, 삶을 좀 더 나아지게 하는데 그 어느 때 보다 정치권의 역할이 중요하다. 특히 정치지도자들이 공의(公義)와 정의(正義)로운 마음을 바탕으로 대국적(大局的)인 견지에서 ‘원칙중심의 지도력’을 발휘해주길 간절히 바란다. 그래야 나라도 국민도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