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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해리 - 폭정의 군주는 끌어내려야 한다는 18세기의 「탕론湯論」

플레이광주 1 216 03.11 14:44

 

정약용(丁若鏞,1762~1836)은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실학자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500여 권의 방대한 저술을 남겼다. 그의 여유당전서與猶堂全書에는 탕론湯論이라는 정치논설이 있다. 은 넘어지다. 쓰러지다, 흔들다라는 뜻이다.

 

- 여유당전서 [사진:네이버문화재단] -
 

왕이 걸왕을 내쫓은 것이 옳은 것인가? 신하가 군주를 친 것이 옳은 것인가?

말하자면 옛날의 도이지, 탕왕이 처음 한 것은 아니다.

 

탕론湯論의 첫 대목이다. 은 중국 하나라 걸왕의 폭정을 축출하고 자신이 상나라를 세운 인물로 성군으로 알려져 있다. 즉 탕왕이 걸왕을 내쫓고 상나라를 세운 것을 옹호하면서 역성혁명易姓革命의 정당성을 부여한 것이다.

은 본래 짐승의 가죽을 가리키는데, 짐승은 계절에 따라 털갈이를 하기 때문에 바뀌다라는 의미가 파생되었다.


역성혁명은 맹자孟子가 주장한 것으로 인의仁義를 해치는 군주는 스스로 통치의 권위와 정당성을 상실한 개인에 불과하며, 백성이 나라의 근본이라는 민본주의에 입각한 것이었다. 따라서 걸왕을 몰아내고 왕이 된 탕왕의 행위는 하늘의 명을 받은 혁명이라고 보았던 것이다.

 

정약용의 탕론湯論은 맹자의 역성혁명론에서 출발하였고 제후와 천자는 어떻게 존재하는가에 대한 설명을 덧붙였다.

다섯 집이 한 이웃, 5린이 1, 5리가 1, 5비가 1현이 되는데 각 단위의 장은 구성원들의 합의에 의해 책임자로 추대된다. 제후와 천자 또한 그 같은 과정에서 선출된 장이다. 합의가 결렬되거나 추대 이유가 사라지면 책임자는 물러나거나 끌어내려져야 한다. (목민심서서문 중)

 

즉 천자라 할지라도 백성들의 합의와 전체 의사로 추대되었기 때문에 권좌에서 물러나게 할 수 있다는 뜻이다.

탕론湯論은 정치권력이 백성들의 합의와 추대에 의해 주어진다는 것으로 오늘날 민주주의 국가에서 지자체의 장을 뽑고 국회의원과 대통령을 선출하는 것과 같은 맥락인 것이다. 또한 국민의 의사에 따라 위정자가 제대로 그 소임을 다하지 못할 때 자리에서 물러나게 해야 한다는 것은 탄핵과 같은 의미로 볼 수 있다.

 

대한민국 헌법 제 1조는 2개의 조항으로 되어있는데 제 1항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2항은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대한민국 헌법에서 권력이라는 단어가 유일하게 명시되어있고 이후 모든 헌법 조항은 권한이라고 되어있을 뿐이다. 따라서 모든 국가기관은 권한만 가질 수 있는 것이다.

한편 양반과 상민, 군왕과 신하의 신분제가 엄격했던 18세기에 군왕도 백성의 선출에 의해 뽑아야 하고 잘못하면 몰아낼 수 있다는 정약용의 정치 인식은 전근대적인 봉건사상을 정면으로 부인한 것으로 그야말로 혁명적인 것이었다.


탕론1797(정조 21) 36세 때 곡산 부사를 마친 뒤에 쓴 것으로 추정된다. 그는 곡산 부사 시절 부당한 조세에 항의하여 백성 1,000여 명이 관청에 몰려와 집단시위를 벌인 주동자를 풀어주었던 일이 있다. 정약용은 그에게 말하기를 한 고을에 너와 같은 자가 있어서 형벌을 두려워하지 않고 만백성을 위해 그 원통함을 펼 수 있어야 한다.”

이 사건은 그가 단순한 애민 정신을 뛰어넘어 근대적인 민권 의식을 지향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한편 그는 목민심서牧民心書를 통해 지방 수령의 백성을 다스리는 요령과 경계할 마음가짐과 태도를 저술하였다.

 

...오늘날의 백성을 다스리는 자들은 오직 거두어들이는 데만 급급하고 백성을 부양하는 방법은 알지 못한다. 이 때문에 하민들은 여위고 병들어 줄지어 굶어 죽은 시체가 구덩이를 메우지만 다스린다는 자들은 바야흐로 고운 옷과 맛있는 음식에 자기만 살찌고 있으니, 어찌 슬프지 아니한가. ( 목민심서서문 중)

 

한편 그는 목민관의 행태에 대해 다음과 같이 비판하였다.

목민관이 백성을 위해 있는 것이지, 백성이 목민관을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다.”

백성은 토지를 밭으로 여기는데 벼슬아치들은 백성을 밭으로 삼으니, 살갗을 벗기고 골수를 두들기는 것을 밭갈이로 삼으며 머릿수를 세어 거두어들이는 것을 가을걷이로 삼는다

 

나는 목민심서의 서문과 위의 내용을 보면서 21세기 대한민국의 현실을 떠올렸다.

2020OECD국가 중 자살률이 가장 높은 나라로 발표된 나라, 2022년 기준으로 2시간마다 3명이 자살하였고 출생률이 가장 낮은 나라, 부자에게는 세금을 감해주고 자영업이 많은 나라의 소상공인들은 장사가 안되어 임대료도 못 내 쫓겨나 못 살겠다고 아우성친대도 속수무책인 현실, 천민자본주의가 발달하여 태어날 때부터 빈부의 격차로 인생이 좌지우지되면서 학벌과 능력 만능주의가 판치는 사회 속에서 우리는 각자도생의 길을 찾느라 허우적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시대 버전으로 보면 일개 중인 계층에 속하는 검찰이 금수저 출신들로 채워져 하는 짓은 법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법을 이용한 법의 타짜 노릇을 하며 권력을 마음대로 망나니 칼춤까지 추고 있는 세상이다. 그것도 모자라 검찰 출신의 대통령은 내란을 일으켜 국회를 해산시키고 정적을 제거하며 수백 명의 반대파 인사들을 수거하여 죽이려 했고 군대를 동원하여 저항하는 시민들을 향해 총부리를 겨누게 했던 것이다. 게다가 전쟁을 유발시키려 했다는 증거들이 속속들이 나왔는데도 그 모든 범죄를 부인하는 내란수괴. 권력에 눈이 멀어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하듯 내란에 동조하는 무리들.


조선의 형벌로 따지면 능지처참에 무덤에서 관을 꺼내 관을 부수고 시신을 참수해도 모자랄 정도라고 할 수 있다. 이렇듯 내란 사태로 경제는 도탄에 빠지고 외교는 실종되고 국제정세는 불안하여 나라의 운명이 더할 수 없이 어렵고 위태로운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이 오늘의 대한민국이다.

요즈음 대통령의 탄핵 사태를 둘러싼 시국을 보면서 국가란 무엇이며 누구를 위한 국가이며 민주주의는 무엇인가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본다.



 

Comments

목민심서 03.11 21:36
글줄 하나하나에 감동하며 읽었습니다.
위정자들이 각인으로 새겨야 할 문장입니다만
한낮 고서로 여길뿐 그 뜻을 한뼘이라도 펼칠 의원들이 과연 얼마나 될지. . . .유독 더 깊게 다가온 목민심서의 이야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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