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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대중음악잡지

주광| |댓글 2 | 조회수 146

지난 4월 15일. 전일빌딩 9층 다목적강당에서 열린 전남광주 책(Book)박물관 추진방안 세미나가 열린 이후 책박물관 건립 시민모임도 만들어지고 6월 5일에는 황윤석도서관과 광승서가, 책마을 해리, 대산면 서점마을로 유명한 고창으로 탐방도 다녀왔다. 세미나를 위해 쓴 글에서 나는 대중음악 잡지 ‘월간팝송’에 대한 추억을 언급했는데 이번 기회에 우리나라 대중음악 잡지의 역사에 대해서 알아보았다.


여러 자료를 찾아 보다 클래식 음악을 다루는 잡지 「객석」에 우리나라 최초의 음악잡지는 1925년 홍난파가 발행한 「음악계」로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한국 대중가요 잡지의 역사는 1933년 12월에 발간된 「재생예술」이 최초다.


당시의 기사에 보면 ‘요새 축음기와 라디오를 통하여 여러 가지 가요가 일반가정과 거리로 넘치게 되고 따라서 그것이 사회에 끼치는 영향이 많은데 금번에 레코드 예술의 향상을 도모하기 위하여 월 1회 그것에 대한 기사를 취급하는 「재생예술」을 발간하게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1961년 1월에 창간한 월간 「가요세계」가 있었고 1966년 3월에 창간한 월간 「가요생활」은 1970년대 초까지 발행되었다. 


팝 음악 잡지는 우리나라 최초의 팝 칼럼니스트 서병후씨와 동아방송 PD였던 이해성씨, 동양방송의 PD 조용호씨에 의해서 1968년 6월에 창간된 「팝스 코리아나」 7월호로부터 시작된다. 이 잡지는 팝송과 대중가요, 방송, 영화, 패션 등의 내용으로 120면에 당시 130원에 판매되었다. 그 후 1970년 9월에 MBC라디오 프로그램 이름인 「뮤직 다이얼」이 잡지로 잠깐 나왔고 1971년 「월간 팝송」이 창간되는데, 「월간 팝송」은 1986년까지 16년 동안 팝송 매니아와 DJ들의 필독서가 되었다. 


「월간 팝송」은 주로 팝 음악계의 소식을 전했지만 국내 포크음악과 보컬밴드의 활동 내용도 소개하고 많은 행사를 치렀는데, 70년대에는 매년 여름에 청평유원지에서 템페스트, 영사운드, 막내들, 쉐그린, 이장희, 김세환, 양희은, 은희 등의 가수들이 출연하는 청평 페스티벌도 개최했고, 매년 말에 한 해 동안 인기를 얻은 가수들에게 부문별로 상을 주는 팝스 그랑프리 시상식도 개최했다.


1974년 3월에는 클래식과 대중가요, 팝송을 망라하는 「월간 FM」이 창간되는데 이 잡지는 1976년 12월호부터 「음악세계」로 이름을 바꿔서 발행되지만 얼마 가지 못해 폐간된다.


1975년 11월에 월간 「팝월드」가 창간되지만 「월간 팝송」의 벽을 넘지 못하고 곧바로 폐간된다. 「월간 팝송」의 독주가 계속 되는 가운데 80년대 뉴웨이브 시대가 오고 워크맨 등의 소형 음향기기가 보급되면서 팝송을 듣는 젊은이들이 늘어난다.


(좌) KBS POKO2001 창간호, (우) 월간팝송 1984 6월호


자연스럽게 음악 방송 중에 팝송의 비중도 많이 늘어서 1984년 대중음악 방송 채널 KBS FM2는 하루 20시간 방송 중에서 팝송 프로그램이 15시간이었고, MBC FM은 하루 21시간 방송 중에 팝송 방송이 13시간이었다. KBS에서는 1981년 5월 팝송 매니아를 위한 잡지 「POKO 2001」를 창간했다.


이렇게 팝송에 대한 관심이 많아지는 분위기에 편승해서 중앙일보에서 1985년에 「음악세계」를 창간하고 같은 해에 또 다른 음악 잡지 「뮤직 피플」이 창간되면서 음악 잡지의 전성시대가 열린다. 「월간 팝송」 일변도의 음악잡지계에 대형 신문사에서 발행한 음악잡지 「음악세계」와 「뮤직 피플」이 나오면서 경쟁 체제를 이룬 것이다. 그 경쟁에서 밀린 「월간 팝송」은 1986년에 결국 폐간되었다.


그런데 80년대 말부터 이문세, 변진섭, 이승환, 신승훈 등의 발라드 가수가 나오고 가요의 비중이 높아지면서 팝송에 대한 관심은 점차 줄어드는데 「음악세계」도 1989년 「뮤직시티」로 제호를 바꾸고 발행하다 얼마 가지 못하고 폐간하고 「뮤직 피플」도 1992년에 문을 닫는다.


(좌) 전국DJ연합회 잡지 POPS WEEK, (우) 광주DJ협회 잡지 음악광주」창간호


가요에 대한 관심과 분위기가 최고조에 달했던 1988년 6월. 대중가요를 만드는 작사가, 작곡가들의 모임인 연예협회 창작분과에서 대중가요 창작인 회보 「노래샘」을 창간했다. 「노래샘」의 편집장은 광주 통기타 1세대 가수이자 KBS TV프로그램 ‘열린음악회’와 ‘가요무대’ 구성작가로 활동했던 이장순이 맡았다. 이 무렵 음악관련 협회에서 발행한 음악잡지들도 많았는데 전국DJ연합회에서는 월간잡지 「Pops Week」를 발행했고 광주DJ협회에서도 필자가 회장으로 취임한 1989년에 「음악광주」를 펴냈다.


1990년 11월에 창간된 「핫뮤직」은 빌보드 차트와 독점계약을 맺고 팝음악의 정보를 서비스했다. 락 밴드 위주의 해외 유명뮤지션과 국내음악 등 다양하고 폭넓은 대중음악을 소개한 「핫뮤직」은 음악 전문 잡지로 2008년 5월 폐간 때까지 18년 동안 204호를 발행해서 대중음악잡지 최장수 기록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영상음악이 보편화된 1993년 10월에는 GMV (지구촌영상음악)이 창간돼서 1998년까지 매월 잡지를 발행했다. 그 뒤로도 스완송, 페이모스, KHMC(코리아 헤비메탈 클럽), 락킷(ROCKiT) 같은 잡지들이 나왔다 사라졌다.


음악이 일상화되면서 음악 애호가를 위한 오디오 잡지도 나오는데 1983년에 격월간 「오디오와 레코드」가 창간돼서 오디오전문지 시대를 열었다. 오디오가 사치품으로 취급되던 시절, 「오디오와 레코드」 잡지는 등록하는 데 애를 먹어서 창간호 발행 예정일보다 1년이나 늦어지는 수난을 겪었다. 그 후에 비정기적으로 나오는 무크지 「스테레오 뮤직」이 나왔고, 1988년 1월에 「월간 오디오」가 나온다.


「월간 오디오」는 월간팝송사가 문을 닫고 난 이후에 1987년에 「월간 가요」로 제호를 바꿔서 발간하다가 1988년에 「월간 오디오」로 다시 바꾼 건데 나름대로 성공을 거둬서 그 이후 「프로사운드」, 계간 「스테레오 가이드」, 「오디오 월드」, 「하이비」 등의 잡지들이 계속 나오는 데 영향을 주었다.


오디오 평론가인 이영동씨가 단행본으로 발간한 「세계의 오디오 사운드」, 「알기 쉬운 오디오」가 인기를 모으자 1989년 3월 계간 「스테레오」를 창간했다.


음악 잡지는 아니지만 1959년부터 노래 악보와 가수들의 근황을 담은 노래책 「대중가요」가 세광출판사에서 발행됐는데 이 책은 기타를 배우는 젊은이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고 가요뿐 아니라 팝송 악보도 실어서 밴드를 하는 멤버들의 필독서가 되었다.


80년대 이후에는 세광출판사에 이어서 삼호 등 다른 출판사에서 발간된 노래책이 7가지나 발간되었을 정도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이런 노래책은 2000년대 초반까지 발간됐다가 디지털 시대가 되면서 사라졌는데 음악 애호가들은 노래책이나 음악잡지 뒷부분에는 실린 펜팔코너를 통해 인연을 맺기도 했다.


요즘에는 예전에 유통되던 음악잡지가 고가에 거래된다고 한다. 여러분의 책장에 혹시라도 남아있을 30,40년 전 「월간 팝송」이나 노래책을 통해 당시에 듣던 음악과 추억들을 되새겨 보시기를 바란다.


2 댓글
이여진 06.21 11:58  
대중음악 잡지에 관해 잘 정리해주셔서 좋은 공부가 된것같아서 너무 좋습니다.
언젠가 광주에도 이장순, 국소남 등 1세대 통기타 가수들, 김정호 가수, 대학가요제 가수들 을 집대성한 대중음악박물관이 원도심에 생겨서 이러한 잡지들이나 노래책들을 LP, 뮤직비디오와 함께 감상할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조대영 06.22 16:40  
광주DJ협회 회장에 취임하시면서 만들었다는
<광주음악> 창간호가 무척 궁금하네요.
글을 읽으면서 생각한 건데, 음악 관련 잡지만
한데 모아도 장관이겠다 싶습니다.
음악팬들도 좋아하겠다 싶구요.
긴 호습을 가지고 준비해 보면 좋겠다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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