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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현의 세상유감] 기억이라는 걸림돌

박지현| |댓글 1 | 조회수 103

시간은 참 묘하다. 


어떤 사람에게는 깊은 상처를 아물게 하는 약이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책임을 지워주는 면죄부가 되기도 한다. 흔히 시간이 흐르면 분노가 가라앉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그러나 가끔은 멈추어 서서 질문을 던져본다. 과연 그것은 치유일까, 아니면 그저 망각일까.


계엄 상황으로 돌아가 보자. 국민들은 총을 든 이들을 맨몸으로 막아내고 얼어붙은 땅바닥에 주저앉아서도 민주주의의 가치와 헌정질서를 염려하며 한목소리를 내었다. 대통령이 바뀌고 국정운영을 지켜보면서 ‘이제 세상은 바뀔 수 있으리라’ 불안하지만 소중한 믿음도 생겼다.


선거에 대한 기대감이 상당했던 모양이다. 후보자도 아닌 내가 선거 후유증을 앓고 있다. 그 증상으로는 소화불량, 어지간한 일에 짜증이 나고 분노하니 생긴 현상이다. 한때 시민들의 거센 비판을 받았던 이들, 즉 내란범이라는 사람들을 다시 권력의 자리로 돌아온 것을 두고, 혹은 나라의 권익보다 자신의 정치적 자리를 위한 행보를 보이는 정치인들의 모습을 보면서 “아 하나도 변하지 않았구나” 그동안 가졌던 내 생각은 순진한 일장춘몽이었다는 것을 뼈아프게 느꼈다.


그렇지, 역사는 그리 빠르게 그리 간단하게 흐르지 않는다는 사실을 깜박했던 것이다. 무엇보다 20대의 선택에 놀라움을, 그리고 우리의 미래에 암울해졌다. 


2026년 5월 18일, 스타벅스가 선보인 이른바 ‘탱크데이’ 이벤트!


세월호 참사의 아픔이 깃든 4월 16일엔 ‘노래로 배를 가라앉힌다’는 세이렌 신화를 가져온 마케팅! 그 외에도 노무현 대통령을 연상시키는 조롱 섞인 기획들이 이어졌고, 소비자들은 불매운동을 시작했다. SNS에는 스타벅스 텀블러를 깨고 기프트카드를 환불했다는 인증 글과 함께 "다시는 찾지 않겠다"는 다짐들이 메아리쳤다. 경영진이 고개를 숙였지만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얼마 되지 않은 지금, 뉴스가 전한 현실은 조금 달랐다.


연간 수백억 원의 이자 수입을 안겨준다는 스타벅스의 기프트카드 사용이 다시 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매장을 찾는 발길은 조금 줄었을지 몰라도, 우리가 가졌던 분노의 온도는 생각보다 너무나 빠르게 내려가고 있다. 여기서 기프트카드의 의미는 뭘까? 카드를 내밀며 잔액을 '충전'하는 행위는 단순히 미래의 커피값을 미리 지불하는 일을 넘어선다.


망각의 온도가 내려가고 슬그머니 이어지는 우리의 소비는, 기업의 오만함에 그리고 권력의 무책임에 다시 뛸 수 있는 에너지를 '충전'해 주는 일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잔액을 채워 넣는 순간, 그들도 시민을 두려워하지 않을 배짱을 채워 넣는다. 그들이 진정 두려워하는 것은 순간의 불타는 분노가 아니라, 지속되는 ‘기억’이다.


분노는 감정이기에 휘발되지만, 기억은 이성이기에 소비 행위라는 미래의 신뢰를 바꾸어 놓기 때문이다. 이러한 망각의 흐름은 정치권력이 작동하는 방식과도 묘하게 닮아 있다. 때로 투표는 정당성을 주는 도구를 넘어, 과거의 과오를 가려주는 가림막이 되기도 한다.


"시간이 지나면 어차피 잊힐 것"이라는 확신이 권력의 마음속에 자리 잡는 순간, 책임 있는 정치는 조금씩 빛을 잃어간다. 권력이 시민의 망각을 조용히 기다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이 거대한 망각의 중력에 온 마음으로 저항했던 아름다운 기억이 있다. 1980년 5월 이후, 그날의 권력은 광주를 철저히 지우고 싶어 했다. 진실을 왜곡했고, 깊은 침묵만을 강요했다. 시간이 흐르면 모두가 잊어버릴 것이라 믿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삼엄한 감시 속에서도 망각을 거부했던 ‘불편하지만 소중한 사람들’이 있었다.


항쟁이 지나간 거리의 핏자국을 지우려는 청소차가 들어오기 전, 깨진 보도블록 틈에서 찌그러진 탄피를 주워 품에 숨겼던 여고생이 있었다. 병원의 서슬 퍼런 감시 속에서도 총상 환자들의 기록과 엑스레이 필름을 천장 깊숙한 곳에 숨겨 사수했던 의사와 간호사들이 있었다.


망월동의 차가운 흙구덩이 속에서, 가족을 잃은 어머니들은 통곡 속에서도 훗날 아이를 찾기 위해 옷가지의 색깔과 신발의 모양을 수첩에 눈물로 받아 적었다. 누군가는 목숨을 걸고 사진 필름을 숨겨 외부에 전했고, 누군가는 평생의 아픔을 무릅쓰고 해마다 오월이 오면 증언대에 섰다.


5·18이 끝내 왜곡되지 않고 민주화운동으로 역사에 머무를 수 있었던 것은, 시간이 흘러 저절로 찾아온 기적이 아니다. 권력의 총칼보다 더 끈질기게 기록하고, 숨기고, 나직하게 외쳤던 이들의 ‘구체적인 다정함과 용기’가 망각을 이겨낸 덕분이다.


< 유럽 전역의 나치즘 희생자 스톨퍼슈타인(Stolpersteine) 기념비 > 

▶▶▶ 출처 바로가기 : https://www.stolpersteine.eu/en/the-art-memorial/stolpersteine 


역사의 상처를 일상 속에서 다스리며 기억하는 이들은 먼 곳에도 있다. 독일의 오래된 골목길을 걷다 보면, 발끝에 툭 걸리는 작은 황동 보도블록을 만나게 된다. 예술가 ‘군터 뎀니히(Gunter Demnig) 의 손에서 시작된 ‘걸림돌(Stolpersteine) 이라는 이름의 기념물이다. 가로세로 10센티미터 남짓한 이 작은 청동판에는 나치에 의해 끌려갔던 이들의 이름과 생몰연도(生沒年度), 그리고 ‘여기에 살았다’라는 문장이 다정하게 새겨져 있다.


독일인들은 출근길에 무심코 고개를 숙이다 이 작은 돌과 마주한다. 거대하고 엄숙한 기념관에 갇힌 기억이 아니라, "내가 매일 걷는 이 길에 80년 전 어린 소녀 사라가 살았고 게슈타포에게 끌려갔다"는 구체적인 삶의 이야기를 일상 속에서 호흡하는 것이다.


독일인들이 길을 걷다 황동판에 발이 걸리는 것은 과거를 대면하는 불편한 품격이다. 반면 우리는 지금 어디에 걸려 넘어지고 있는가. 역사적 참사 앞에서도, 부조리한 선거 결과 앞에서도 우리는 걸려 넘어지기는커녕 너무나 매끄럽게 잘 닦인 망각의 고속도로 위를 질주하고 있다.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일상을 뒤흔드는 가장 불편한 걸림돌 하나를 마음속에 심어두는 일이다.


< 24년 8월 기준, Stolpersteine 기념비는 107,000개 이상 돌을 놓고 있다 >


다시 우리의 오늘을 돌아본다. 커다란 참사가 생기면 우리는 ‘잊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민주주의가 흔들리면 ‘기억하겠다’고 외친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자극적인 소식들에 밀려 타임라인 뒤로 사라지고, 추모의 공간은 쓸쓸해지며, 책임져야 할 이들의 목소리는 흐려진다. 그리고 망각이 찾아온 자리에 비극은 매번 다른 모습으로 다시 찾아오곤 한다. 망각은 과거를 지우는 것에 머물지 않고, 어쩌면 미래의 아픔을 다시 허락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이 글은 단순히 특정 커피 브랜드를 영원히 미워하자거나, 선거에서 누군가를 매섭게 심판하자는 차가운 주장이 아니다. 그저 우리가 온 마음으로 분노하고 염려했던 ‘그 이유’만큼은 잃어버리지 말자는 나직한 제안이다.


왜 마음이 아팠는지, 왜 비판했는지, 왜 그토록 우리 사회의 상식과 민주주의를 걱정했는지, 그 본질을 잊지 않으려는 노력이다.


시간은 흐르고 세상은 여전히 우리의 망각을 기다릴지 모른다. 하지만 기억은 언제나 가장 조용하면서도 힘 있는 저항이 된다. 기록하고, 서로에게 다정하게 묻고, 다시 떠올리는 이들이 있는 한 진실은 결코 흐려지지 않는다.


민주주의는 언제나 망각을 거부하는, 그 불편하지만 고마운 사람들의 기억 위에서 오늘도 간신히 숨을 쉬고 있다.


1 댓글
토르넬 5분전  
망각은 과거를 지우는 것에 머물지 않고, 미래의 아픔을 다시 허락하는 일인지도 모른다는 말이 너무 아프게  다가옵니다.  망각이 미래의 아픔을  허락하는 일이 되지 않도록 
망각의 브레이크를 채워야 겠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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