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재준의 책읽기] 오베라는 남자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최민우 옮김, 다산책방
삶은 다시 사람에게로 향한다
고독한 세상이다. 물질문명이 눈부시게 발전해서 살아가기에 더없이 편리한 시대이지만 사람들은 이웃을 생각할 겨를도 없이 쫓기듯 살아간다. 요즘 사람들은 낮과 밤이 따로 없는 것 같다. 타인과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하루하루 전쟁을 치른다. 별 쓸모없는 자기계발을 위해서 미친 듯이 학원을 뛰어다니거나, 의미 없는 만남에 온통 시간을 낭비하고, 온갖 재테크 망상에 빠져 허우적거린다. 뭐라도 하지 않으면 불안한 사람들로 구성된 사회다.
소설 속 주인공 오베의 나이는 59세다. 그동안 오직 아내 소냐만 사랑하면 살아왔다. 그의 성격은 까칠하지만 모든 일에 원리원칙을 중요시한다. 마을에 불법 주차한 차량을 단속하고, 무단 방치된 쓰레기를 직접 분리수거하기도 한다. 세상은 인터넷 시대로 변했지만 그는 여전히 아날로그 감성을 그리워한다.
사람들이 펜으로는 글을 못 쓰고 커피 하나 제 손으로 끓여 먹지 못한다면 대체 세상은 어떻게 돌아갈지 걱정스러워한다. 사람들은 오베가 세상을 흑백으로 본다고 말했지만, 아내는 오베가 볼 수 있는 유일한 색깔이었다. 아내가 죽은 지 6개월이 지나자 오베는 그저 평화롭게 죽기를 바란다.
“인생이 이리될 줄은 몰랐다. 열심히 일해서 모기지도 갚고 세금도 내고 의무도 다했다. 결혼도 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 함께하자고, 서로 그렇게 동의하지 않았던가?” 오베는 그랬다고 분명히 기억하고 있었다.
오베가 죽음을 결심하고 천장에 고리를 걸 구멍을 뚫으려던 순간 옆집으로 이사 온 이웃 때문에 자살 계획은 거듭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목을 매는 밧줄이 뚝 끊어지기도 했고, 배기가스로 질식사를 시도 하려던 순간에는 파르바네의 참견으로 실패한다.
선로에서 뛰어내려 기차에 치여 죽으려던 순간에는 먼저 정신을 잃고 떨어진 사람을 구하는 바람에 엉망이 된다. 하지만 그 사람을 구한 덕분에 영웅 대접을 받는다. 약을 먹고 자살을 시도하지만 그와 함께 살게 된 고양이와 이웃의 개 때문에 죽지 못한다. 결국에는 라이플총으로 자살을 결심하지만 이마저도 이웃의 방해로 실패한다.
거듭된 자살 실패 속에서 오베는 스스로 변화하고 있었다. ‘자기가 틀렸다는 사실을 인정하기란 어렵다. 특히나 무척 오랫동안 틀린 채로’ 살아온 오베 같은 남자가 바뀐다는 건 기적 같은 일이었다.
까칠했던 이웃들과의 관계는 곧 화해로 이어진다. 자기가 쓸모없다고 치부하던 손기술을 활용해 집수리를 해주고, 버려진 고양이를 돌봐주고, 파르바네에게 운전을 가르쳐주고, 그녀의 딸들과 친해지고, 아내의 제자였던 청년을 만나 자전거 수리법을 가르쳐주고, 오랜 기간 우정을 끊고 지냈던 루네와 관계를 회복한다. 오베는 예전의 행복을 되찾아간다.
오베는 죽기 전 파르바네에게 그의 통장과 함께 익살스럽지만 감동적인 짧은 편지를 남긴다. 장례식에서 아무런 의식도 원치 않는다고, 그저 아내 옆에 묻어주기만 하면 된다고 했다. ‘조문객 금지. 시간 낭비 금지!’ 확실하고 분명하게 밝힌다. 장례식에는 300명의 사람들이 ‘소냐 기금’이 새겨진 촛불을 들고 있었다. 오베가 남긴 돈은 고아들을 위한 기금으로 사용될 것이다.
오베를 통해 우리 사회의 기성세대를 생각한다. 젊은 시절 나는 기성세대가 조금이라도 높은 자리에 있으면 목에 힘을 주고, 나이 한 살이라도 많으면 무조건 가르치려 든다고 여겼다.
그들은 논리적이거나 이성적이지 않고 자기 고집을 물리거나 잘못을 인정하지도 않았다. 합리적 소통이 부재한 권위적인 사회가 된 까닭도 기성세대 때문이었다. 그런데 어느덧 내가 기성세대가 되어가고 있다. 요즘 젊은이들은 앞 세대를 어떻게 생각할까? 예전에 내가 했던 생각과 어떻게 달라졌을까? 까칠하지만 속 깊은 오베 같은 사람 정도로 기억되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