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에 오신 엄마
< 제46주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 사진:청와대통신사진기자단 >
올해도 어김없이 5월이 왔다. 올해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은 복원된 옛 전남도청 앞 광장에서 ‘오월, 다시 광장을 품다’를 주제로 열렸다. 5·18민주광장에서 대통령이 참석한 기념식이 열린 것은 2020년 40주년 행사 이후 두 번째라고 한다.
‘님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하는 모습을 보면서 노래마저 제대로 부르지 못하고 자유로이 행진도 못했던 시절을 생각해 보았다. 그러나 올해도 어김없이 금남로 무등빌딩 앞에서 열린 극우 집단의 '윤어게인' 집회 모습을 보고 5·18민주화운동은 아직도 진행형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1980년 이후, 광주의 젊은 음악인들은 5월을 노래한 곡들을 계속 만들어냈다. 광주일고 출신으로 한양대학에 다녔던 정오차는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죽은 친구의 묘비를 바윗돌에 비유한 노래 ‘바윗돌’로 1981년 MBC 대학가요제 대상을 받았다. 그러나 그 사실을 방송을 통해 고백한 이후 ‘바윗돌’은 금지곡이 되었다.
1982년 전남대학교 상과대학 학생이었던 김종률이 ‘님을 위한 행진곡’을 만들었다. 운암동 황석영의 자취방에서 녹음한 노래는 광주 MBC PD이자 DJ였던 오창규(본명 오정묵)가 불렀다. 대학교 졸업 후 군에 입대한 김종률은 그 이듬해 휴가 나와서 연세대학교 시위현장에서 나오는 ‘님을 위한 행진곡’을 듣고 감격했다. 이후 이 노래는 5·18민주화운동을 상징하는 노래가 되었다.
1984년에 광주에서 만든 앨범 <예향의 젊은 선율>에 수록된 ‘바위섬’이 전국적으로 히트한다. 배창희 작사/작곡의 노래 ‘바위섬’은 5·18 당시 고립된 광주를 상징한 것이고 파도는 군부독재를 은유한 것인데 김원중은 정오차의 ‘바윗돌’에서 교훈을 얻어 그 의미를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한 번도 말하지 않았다.
1985년에 광주 민중문화연구회에서 정세현의 ‘광주 출전가’가 수록된 노래 테잎을 만들어 배포했다.
1986년에는 소리모아 <10년만의 외출> 음반에 김순곤 작사/박문옥 작곡의 ‘누가 거미줄에 걸린 나비를 구할 것인가’를 발표한다. 소리모아 스튜디오에서는 정세현(후에 범능), 박종화 등의 음반과 민중가요 테잎을 공식적으로나 비공식적으로 다수 제작 발표한다.
1988년 당시 중학교 3학년 학생이었던 박용주가 지은 시 ‘목련이 진들’이 전남대 오월문학상을 받아 화제가 되었다. 그 시에 소리모아 박문옥이 곡을 붙여 만든 노래 ‘목련이 진들’은 2001년 제작된 박문옥 앨범 <양철매미>에 수록되어 있고 류의남 등의 광주 민중가수들이 다시 불렀다.
2001년 제작된 시노래 모임 <나팔꽃 2집> 음반에 수록된 정호승 시/류형선 곡. ‘눈물꽃’은 2010년 김원중의 <5․18 광주 민주화운동 30주년 기념 음반>에도 수록되어 있다. 이즈음에는 광주를 노래한 많은 시들이 광주 뮤지션에 의해 노래로 만들어지는데 김준태의 시 ‘금남로 사랑’은 박문옥이 곡을 붙여 2002년 제작된 박문옥의 음반 <운주사 와불 곁에 누워>에 수록된다.
그 외에도 많은 곡들이 있으나 지면 관계상 이 정도로 하고 오늘은 최근에 나온 5월 노래 한 곡을 소개한다. 노래 제목은 ‘오월에 오신 엄마’다. 작사, 작곡은 이윤호가 맡았다. 이윤호는 현재 풍암동에 위치한 라이브 카페 ‘섬으로’를 운영하면서 한종면, 최현미와 함께 포크 트리오 ‘나무의자’와 밴드 ‘반올림’의 메인 보컬로 활동하고 있다. ‘오월에 오신 엄마’는 2024년 ‘오월 창작 가요제’에 참가한 노래다.
< 이윤호 / 포크트리오 나무의자 >
이 노래를 부른 가수 최현미는 솔로 활동과 더불어 포크 트리오 ‘나무의자’와 여성 듀오 ‘파스텔’로 활동하고 있다. 깨끗하고 섬세한 목소리가 좋은 가수다. 편곡은 광주 서구 운천로에 위치한 녹음실 허리우드 스튜디오의 대표 전철완이 맡았다.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조대부중 2학년 학생이었던 이윤호는 광주교도소 인근 친척 집에서 하숙하고 있었다. 외부로 통하는 모든 도로가 통제되었고, 접전 지역이었던 교도소 부근은 사방에서 총소리가 유독 많이 났다. 그런 어느 날 그 총성을 뚫고 시골에 사시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광주에서 난리가 났다는 말을 듣고 자식걱정에 하루 꼬박 걸어오신 어머니가 문밖에 계셨던 것이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 끌어안았다. “어머니에게서 향긋한 흙내와 땀내가 났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그날의 어머니가 단지 내 어머니뿐만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윤호는 그때를 지금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어린 아들 얼굴만 보고 ‘절대로 밖에 나가지 말아라’ 당부하시고 다시 되돌아가신다는 어머니를 못 가시게 잡았는데도 어머니는 또 그 먼 길을 걸어가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으로 아찔한 기억이다.
당시 자식을 광주로 유학 보냈던 모든 어머니들이 자식 걱정을 하고 아들이 살아있는 것을 본 어머니도 있지만 끝내 그렇지 못한 어머니도 많았다. 금남로에 붉은 선혈을 묻힌 민주열사 어머니들의 아픔을 기억하고 잊지 않기를 기원하는 마음에서 만든 노래 ‘오월에 오신 엄마’.
이 노래가 5월 광주의 노래로 오래도록 기억되기를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