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수의 광주 최초를 찾아라] 전남광주 최초 문방구점 이야기
문방사우(文房四友)! 지필묵연(紙筆墨硯)으로 기록문화 도구다. 전남에서 붓글씨로 가장 오래된 유산은 순천 송광사에 있다. 1216년 고종이 오영을(혜심)께 대선사(大禪師)를 내린 글이다. 민간은 해남 녹우당 1354년 노비문서다. 광주 최고(最古)는 지산동 자운사 1388년 수보개금기문(修補改金記文)란다.
조광철은 광주 진다리(泥橋) 붓촌 형성에서 1910년대 백운동 633번지 진도생 김순주[順志]를 꼽았다. 1960년대 서예인구·학원증가와 교육과정으로 막붓 수요폭발요인을 들었다. 1970년대부터 각급학교 근방은 학용품과 장난감·과자 판매를 겸한 ‘만물상’ 문방구 가게가 성황이었다.
< 광복이전 문방구점 관련 기록과 사진 >
전남광주 최초 근대 문구점은 1906년 목포 목포대(木浦台) 1번지에 든 노구치(野口小次郞)의 일본노트학용품주식회사 전라남도 총대리점으로 짐작된다. 1930년 상공인명록에는 목포 대화정 오오카(大岡德太郞)·마쓰무라(松村正助), 순천 대수정 쿠로카와(黑川美代松), 여수 동정 핫토리(服部玉崎), 해남 대화정 가타야마(片山洋三)가 보인다.
광주는 북문통 이모토(井本幸吉)·우에키(植木泰), 남문통 오카(岡新一), 수기옥정 요시다(吉田贊吾)가 기록돼 있다. 황금정 기쿠치(菊地一二堂)서점은 지도, 사진엽서, 문방구도 팔았다. 당시 엽서사진에 현 충장로3가 16번지 사이코(雜子政夫)의 카가야(加賀屋)문구점 간판이 띈다.
1939년 지상보도에 광주 문방구상인은 5월 17일 141종류 학용품 소매가격을 협정한다. 전남문방구조합 문구상 78명은 저축조합을 설립한다. 학교교육원조와 저축보국조합원상호친목 차, 노구치문구점 주최 제1회 총회를 6월 2일 연다.
< 광복이후 광주문방구(제조)점 관련 자료 >
광복 이후 신문에 1947년 충장로3가 26번지 용문당(성기영) 만년필점, 1949년 광주 영창(물방애)잉크, 1950년 순천제지회사 광고가 실렸다. 1956년 광주시가안내도에는 충장로2가 중앙문구점과 순창지업사가 표기돼 있다. 같은해 명감자료에 수록된 문구점을 열거한다.
광주는 충장로 덕문사(김완수)·전남상사주식회사(조남웅)·명문당(신순우)·삼신상회(김화신), 광산동 전남문구사(박병홍)·태평당(정운욱), 궁동 문우사(김영진), 누문동 미흥지공사(정동식), 송정리 호남문구사(김승천)가 있다.
전남은 목포 무안동 박문사(서준수)·산정동3구 대성필방(강도순), 순천 중앙동 일성상회(황붕현), 나주 영산포읍 대성동 영흥상회(구자옥), 보성읍 동윤동 인문사(서인길)·협성문구점(장금석), 강진 칠량 영동리 동신상회(최동출), 해남 성내리 박문당(박동주)이 있다.
1979년 ‘오늘의 전남’에 남동 4-8번지 한성노트사(남궁영규) 선전이 끼였다. 1985년 전남전화번호부 중 광주시 업종별편에 문방구점 131개, 서예·필방 31개, 우진화학(왕자풀) 포함 문구제조사 5개, 사무용품 3개, 노트제조와 만년필·볼펜 각 2개, 연필 1개사가 있다.
< 붓글씨 문화재·작품과 한지공장·서예·필방 >
해남북일 출신 손동연 시인의 2003년 동시 ‘연필이 신날 때’를 낭독한다. 연필은/산 그릴 때/쓱쓱 잘 그려요. // 연필은/새 그릴 때/쓱쓱 신이 나요. // 연필은/나무가 엄마거든요./숲이 고향이거든요.
2022년 광주광역시 전화번호부 문구·사무용품란에 알파문구점 20개 포함 189개소다. 다이소와 같은 편의점에도 문구코너가 마련돼 있다. M문구회사 취급품목은 3천여 가지란다.
담양 대전면 대치리 1063-2번지에 한솔페이퍼텍이 있다. 장성 한지공장과 함께 닥나무골 지소(紙所)와 먹을 만든 묵점 터가 그립다. 손전화·전자펜 시대에도 한글서예·캘리그라피 바람이 잔잔히 불고 있다.
지난해 서울서예박물관 평보 서희환(1934~1995)전에 1959년 5월 광주공원 ‘어린이헌장탑’ 제목 글이 소개됐단다. 함평엄다인, 1955년 광주사범졸업생, 1968년 대한민국전 서예로 최초 대통령상 수상자다. 보통걸음 글폼, 뽄 따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