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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플광24』


록밴드는 ‘에리’ 있는 옷 입으면 안 돼!

채문석| |댓글 1 | 조회수 176

족발집의 ‘영식스티’, 기죽지 않아!

우리는 록밴드다. 대학 영문과 동기들끼리 만든 밴드이다. 우리 시대 표현으로는 ‘그룹사운드’다. 누가 뭐래도 우리는 진지하다. 매우. 첫 공연을 무사히(?) 마치고 대학가 족발집에 마주 앉았다. 주변은 온통 파릇파릇한 젊은이들뿐이지만, 방금 무대에서 내려온 우리 ‘영식스티’에겐 기죽을 새가 없다.


겨우 두 곡 연주했는데 에너지는 이미 방전. 하지만 소맥 한 잔이 들어가는 순간, 방전된 배터리가 100% 급속 충전된다. 청춘은 사라졌지만 소맥 말아먹는 속도는 아직 현역이다. "야, 마로니에 공원 버스킹 가자!", "해외 버스킹도 가능하지." 잔이 비워질수록 근거 없는 자신감은 성층권을 뚫고 올라간다.


그때였다. 뒤풀이에 동석한 친구 부인들이 ‘콧방귀’를 낀 건 바로 이 대목. 퍼스트 기타를 치는 친구가 자못 진지하게 훈수를 뒀다. 

“야, 록밴드는 기본이 라운드 티야. 너네처럼 ‘에리’ 있는 옷 입으면 안 돼.”

“에리?” 친구 부인의 목소리가 뒤집어졌다. “에리가 뭐야, 에리가! 이 할배들을 어쩌면 좋아!”


폭소가 터졌다. 칼라(Collar), 깃... 그래, ‘에리’는 우리 시대만 알아듣는 유물 같은 단어였다. 록 스피릿을 외치면서 단어 선택은 지극히 ‘라떼’였으니 웃음이 터질 수밖에.


빵 냄새 나는 무대 위의 ‘첫 물방울’

불과 몇 시간 전, 우리는 혜화동의 한 카페 무대에 서 있었다. 통기타 음악회에 초대된 게스트의 자격이다. 빵 냄새가 향긋한 그곳에서 우리는 이른바 ‘공연비’를 내고 무대에 올랐다. 아마추어는 무대에 서기 위해 돈을 내기도 한다는 걸 환갑 넘어 처음 알았다.


관객석에선 아기의 칭얼거림도 들리고, 지인들의 응원 박수도 쏟아졌다. 드디어 우리 차례. ‘영식스티의 정열을 보여주마!’ 했건만, 시작부터 삐끗거린다. 연습 때와 달리 퍼스트 기타의 전주가 묘하게 엇나가고, 내 베이스도 박자를 놓쳤다. 보컬도 한 박자 늦다.


하지만 어쩌랴, 라이브에 ‘되감기’는 없다. 그대로 GO! 젬베 리듬에 맞춰 서로 눈을 맞추며 안도를 얻는다. 절름거리던 연주는 중반을 넘어서며 서서히 화음으로 맞물렸다. 관객들이 박수로 빈틈을 메워주니, 실수는 감쪽같이 가려졌다. 후련했다. 그건 완벽한 연주가 아니라, 우리 생애 가장 뜨거운 ‘첫 물방울’의 감동이었다.



인생이라는 악기를 다시 조율하다

우리 팀 구성은 화려하다. 언론인 출신 세컨 기타 겸 단장 A, 외교관 출신 퍼스트 기타 B, 대기업 임원 출신으로 현직 제빵사 드럼 C, 그리고 독학으로 베이스를 잡은 나 D.


살아온 궤적이 제각각이다. 우리는 이제 직함을 잃었지만, 여기선 ‘대사님’ 대신 ‘퍼스트기타’, 전무님 대신 ‘드럼’으로. 계급장 떼고 오직 ‘악기’로만 대화한다. 밴드에서는 박자 하나만 놓쳐도 모두가 내 존재를 안다. 서로서로 필요한 사람이라는 것을 느끼는 순간이다.


연습 내내 고수 친구들은 하수인 나를 배려했다. “밴드는 자기 자랑하는 곳이 아니라, 상대의 소리를 듣기 위해 내 소리를 낮추는 ‘사랑의 공간’이야.” 그 한마디가 베이스 독학러인 나를 무대까지 끌어올린 힘이 됐다.


은퇴는 마침표가 아니었다. 인생이라는 악기를 새롭게 조율하는 시간이었다. 손가락은 무뎌지고 악보는 가물가물해도, 동기들과 맞추는 화음이 있다면 우리 인생의 후반전은 언제나 ‘You’re my sunshine’일 것만 같다.


친구들이 내게 ‘섭외 담당’을 맡겼다. 밴드도 키워 나가자고 한다. 그래서 친구들에게 한마디 하려 한다. 내 연주 실력은 좀 달릴지 몰라도, ‘귀’ 하나는 황금 귀라고. 섭섭하게 생각하지 말아라. 냉정하게 진단하건대, 우리 팀은 다 좋은데 보컬이 조금(?) 약하다. 패션의 완성은 얼굴이고, 밴드의 완성은 보컬이라 하던데, 앞으로 완성도를 높여 보자고...


[긴급 구인]

“고대로 밴드에서 음량 풍부한 여성 보컬을 모십니다!”

은퇴한 영식스티의 열정에 완성도를 얹어주실 분, 도와주는 셈 치고 연락 주십시오.

목 빠지게 ‘고대’하고 있겠습니다!


1 댓글
오파라 05.12 12:28  
고대로 밴드 ~
고대로 멋있네요
고대로 나이들어 가시고
고대로 행복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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