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레이광주 > 웹진 『플광24』 > [박지현의 세상유감] 지원받는 도시와 살아남는 도시

웹진 『플광24』


[박지현의 세상유감] 지원받는 도시와 살아남는 도시

박지현| |댓글 0 | 조회수 250

< 신구 공간이 공존하는 동명동 거리 >


요즘 광주에서 가장 핫한 동네를 꼽으라면 사람들은 양림동과 동명동을 이야기할 것이다. 두 곳 모두 오래된 골목 위에 새로운 감각이 덧입혀진 공간이다. 카페와 관광객, 사진 찍는 사람들까지 꽤 닮아있다. 하지만 거리를 조금만 오래 걷다 보면 둘 사이에는 분명 다른 공기가 흐른다.


양림동은 근대문화유산과 펭귄마을, 역사문화길과 선교사 사택까지. ‘이곳은 이런 곳입니다’라고 소개할 수 있는, 서사가 분명한 마을이다. 실제로 양림동은 2017년 도시재생 뉴딜 시범사업 대상지로 선정되며 대규모 공공 지원을 받기 시작했다.


이후 수백억 원의 예산이 투입되어 청년창작소와 문화공간 조성, 골목 정비와 집수리 사업, 관광 콘텐츠 사업 등이 이어졌다. 광주 도시재생의 대표 사례라는 말도 자연스럽게 따라붙었다. 그렇게 양림동은 오랜 시간 지원과 관심 속에서 조금씩 지금의 모습을 갖춰갔다.


반면 동명동은 조금 다른 방식으로 변화해왔다. 물론 도시재생 사업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동명동에 작업실, 혹은 사무실을 얻어 10년 넘게 지켜보며 느낀 건, 이 동네의 변화는 사람들로부터 시작됐다는 점이다.


< 동명동 거리 전경 >


오래된 주택 사이로 카페가 들어오고 작은 술집과 독특한 가게들이 생겨났다. 어떤 가게는 사라지고, 어떤 공간은 살아남았다. 이국적인 공간과 생활적인 낡은 주택들이 자연스럽게 뒤섞이며 동네의 분위기를 만들었다. 정돈되지 않았지만 그래서 더 살아 있었다. 지원이 없었기에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그러다 보니 자기만의 아이덴티티를 찾아냈다.


실패하지 않기 위해 상권을 분석하고 비슷한 종목이 많아지면 가게를 바꾸든 아니면 메뉴라도 바꿨다. 이 독특함은 창의적인 청년 창업가를 불러 모았고 결국 젊은이들의 아지트가 되어갔다. 이렇듯 동명동은 도시재생보다 먼저 사람들이 분위기를 만든 동네에 가깝다.


그동안 많은 도시재생은 공간부터 바꾸는 데 집중해왔다. 벽을 칠하고 간판을 정리하고 포토존을 만들고 축제를 열었다. 물론 그런 변화는 필요하다. 하지만 공간은 새롭게 만들 수 있어도, 그 안의 분위기와 시간의 흐름까지 계획할 수는 없다. 예산은 건물을 만들 수 있지만 사람들이 자꾸 다시 찾아오게 만드는 감각까지 만들지는 못한다.


“도시는 건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반복되는 일상으로 완성된다.” 현대 도시재생 담론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제인 제이콥스의 말이다.


실제로 살아남은 도시들의 공통점은 ‘사람이 머물 수 있는 속도’를 남겨두었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성수동이 아닐까 한다. 지금은 서울에서 가장 트렌디한 동네지만 성수동 역시 처음부터 계획된 관광지는 아니었다. 수제화 공장과 인쇄소, 작은 제조업 공장들이 밀집해 있던 산업 지역으로, 오래된 공장 건물과 낮은 임대료, 낡은 골목은 오히려 젊은 창작자들과 자영업자들을 끌어들였다.


작은 브랜드들이 먼저 들어왔고, 카페 하나와 작업실 하나가 조금씩 동네의 분위기를 바꾸기 시작했다. 중요한 건 서울시가 처음부터 성수동을 ‘핫플레이스’로 설계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사람들이 먼저 모여들었고, 각자의 취향과 감각이 동네 안에 자연스럽게 쌓여갔다. 그리고 그 흐름을 뒤따르듯 행정과 자본이 들어왔다. 다시 말해 성수동의 핵심은 건물이 아니라 ‘자생적인 흐름’이었다.


그래서 지금도 성수동은 완벽하게 정돈된 공간이라기보다 계속 변화하는 공간에 가깝다. 낡은 공장 옆에 유명 브랜드 쇼룸이 들어서고, 작은 카페 옆에 글로벌 기업의 팝업스토어가 생긴다. 서로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풍경들이 뒤섞여 있는데도 사람들은 오히려 그 불균형 때문에 성수동을 찾는다. 살아 있는 동네에는 늘 설명하기 어려운 혼잡함과 예측 불가능함이 남아 있다.


자생적으로 살아난 공간이라도 생각보다 쉽게 소비되기도 한다. 익선동 역시 처음에는 오래된 한옥과 좁은 골목, 작은 가게들이 만들어낸 독특한 분위기로 사람들을 끌어들였다. 사람들은 익선동의 낡고 불완전한 감각에서 오히려 새로움을 발견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빠른 상업화와 높은 임대료는 동네의 생활감을 조금씩 밀어내기 시작했다. 비슷한 간판과 비슷한 가게들이 늘어났고, 골목은 여전히 예뻤지만, 점점 소비를 위한 공간처럼 변해갔다. 이렇듯 자생적으로 만들어진 동네라 하더라도 그 분위기를 오래 유지하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다. 어쩌면 우리는 그동안의 젠트리피케이션 사례들 속에서, 무엇을 지켜야 하는지 다시 고민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도시는 관광지로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생활로 유지된다. 한 번 방문하는 사람보다 반복해서 오는 사람이 중요하고, 사진 찍는 사람보다 자기 시간을 보내는 사람이 많아질 때 동네는 살아남는다.


양림동을 걷다 보면 깔끔하게 정리된 모습에 기분이 좋아진다. 동명동은 아직도 조금 어수선하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사람들은 완성된 공간보다 여전히 진행 중인 공간에 더 오래 머문다. 빈 가게가 생기고 새로운 가게가 들어오고, 서로 다른 취향들이 뒤섞이는 곳. 살아 있는 동네에는 늘 그런 빈틈이 남아 있다.


요즘 지방 도시들은 끊임없이 무언가를 유치하려 한다. 축제와 관광객, 브랜드와 청년 사업까지. 하지만 정작 필요한 건 사람을 잠깐 불러오는 일이 아니라 떠나지 않게 만드는 일인지 모른다.


청년들은 지원금만 따라 움직이지 않는다. 오히려 자기 삶을 조금이라도 오래 버틸 수 있는 동네에 남는다. 결국 도시재생은 건물을 고치는 사업이 아니라 사람을 남기는 일이어야 할 것이다. 실패해도 다시 돌아올 수 있고, 조금 느려도 자기 삶의 속도를 유지할 수 있는 곳. 살아남는 도시는 결국 그런 도시 아닐까?


도시의 미래는 얼마나 많은 사람을 불러왔는지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사람이 끝내 떠나지 않았는지에 달려 있는지도 모른다.


마지막으로 제인 제이콥스의 말을 원문으로 여기에 붙인다. “Cities have the capability of providing something for everybody, only because, and only when, they are created by everybody.” 옮기자면 “도시는 모두에 의해 만들어질 때에만 모두를 위한 공간이 될 수 있다.”



0 댓글


카카오톡 채널 채팅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