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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왜 굳이 힘든 길을 선택하는가

이당금| |댓글 0 | 조회수 117

‘배우는 숲에 깃든 나무처럼 연기하고, 연출은 다양한 나무가 깃든 숲을 가꾸듯 연출하라’


배우는 지금 눈앞의 호흡과 감정, 손끝의 떨림 같은 아주 작은 디테일에 집중해야 한다. 반면 연출은 장면 전체의 흐름과 구조, 작품이 어디를 향해 가는지를 놓치지 않아야 한다. 인생도 비슷하다.


너무 먼 미래만 바라보면 현재의 숨결을 놓치게 된다. 반대로 오늘 하루를 살아내지 못하면 결국 미래 또한 존재할 수 없다. 산을 오를 때도 그렇다. 정상만 바라보며 조급해지면 숨이 먼저 무너진다. 내 발치의 두세 걸음 앞의 돌부리와 자기 호흡에 집중해야만 끝내 정상까지 도달할 수 있다. 어쩌면 삶이란, 나무를 보면서도 동시에 산의 방향을 잃지 않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렇다 해도 인간은 왜 굳이 힘든 길을 선택하는가? 편안함만 추구한다면 굳이 에베레스트 등등 최고봉의 높이까지 자기 몸을 밀어 올릴 이유는 없다. 그런데도 기어코 오르고 정복하고자 한다. 삶과 죽음의 경계를 명확히 느낄 수 있는 지점 딱 바로 한발 앞의 죽음을 초월하고자 하기 때문일 것이다.


딱 한발만큼만 바로 그 한발 앞서 있는 죽음을 직면하거나 초월하는 일,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 그 순간에야만 감각할 수 있는 살아있다는 감각, 살아 있다는 감각을 확인하기 위해 스스로를 극한까지 밀어붙이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산은 거대한 무대다.


배우가 자기 호흡을 조절하듯 산에 오르고 내릴 때 나의 보폭과 숨의 리듬을 맞춰야 한다. 등산과 삶을 살아내는 일은 현재를 살면서 미래를 꿈꾸는 공통점을 있기 때문에 굳이 힘든 산행을 하는 것이다.


I got it!


내가 남한에서 가장 높은 산 1,947m 정상 한.라.산. 백.록.담 정상에 올랐단 말이닷! 세계 최고봉인 에베레스트 등정에 피할 수 없는 것은 죽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천 미터 나락으로 떨어지면 죽는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왜 그렇게들 산을 정복하고자 안달하는지! 높은 산을 올라온 자만이 만끽할 수 있는 짜릿함. 살아있음을 감각할 수 있는 마약같은 충동! 물론 내게 있어서 최고봉은 해발 2,170m!


2017년, 네팔 ABC 트레킹을 시도했었다.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ABC)는 4,130m 가기 위해서는 촘롱을 지나 도반 약 2,600m, 데우랄리 약 3,200m, MBC 약 3,700m, ABC 약 4,130m을 올라야 한다. 하지만 촘롱(Chhomrong) 마을에 도착했을 때 아침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가 제법 굵어지기 시작했다. 트렉커들 사이에서 올라가도 된다는 사람과 올라가지 말아야 한다는 사람들로 의견이 나뉘었다. 난 혼자이기 때문에 위험한 선택을 하고 싶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 의기양양한 일부 등산객들이 올라갔지만 몇 시간 후에 다시 내려와야 했다.


자연을 거스르는 것은 무리다라는 것을 판단한 것이다. 마침내 ABC 입산 금지령으로 촘롱에 3일간 발이 묶였었다.  촘롱은 네팔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트레킹에서 가장 중요한 거점 마을 중 하나다. 해발 약 2,170m에 위치한 구릉족(Gurung) 마을로, 대부분의 트레커들이 안나푸르나 생츄어리(Annapurna Sanctuary)로 들어가기 전 마지막으로 “사람 사는 온기”를 느끼는 곳에서 발이 묶여서 더 이상 올라가지 못하고 내려와야 했다. 언젠가 다시 돌아오리라는 다짐을 했다.



그러던 것이 2022년 코로나 펜더믹으로 모든 길이 막혔을 때 뚫고 나가고 싶은 강력한 충동을 느꼈다. 충분하지 못해서 위험하기 그지없는 허름한 등산용품으로 죽을려고 작정한 사람처럼 홀로 산행은 위험천만이었다. 오직 간절함으로 내달렸던 윗세오름 저 멀리서나마 안개와 바람과 눈에 뒤덮인 백록담을 멀리서 바라볼 수 있었다.


설산이 주는 황홀한 풍경은 언젠가 꼭 다시 오르리라 다짐하게 했다.  ABC 베이스캠프를 밟지 못한 것이나 한라산 설산 주변에서 또다시 내려와야 하는 상황에서는 그저 이유가 없었다. 또다시 오르고자 하는 다짐뿐이었다. 그 다짐을 이루어내고 싶었다. 성판악에서 백록담 정상 1,947해발 관음사 코스로 이어지는 19km를 오르고 내렸다. 한라산은 숲속으로 파고드는 산세다.


숲에 들어선 지점부터 백록담 정상에 가까워지기 전까지 대체로 나무와 나무 사이, 바위와 바위 사이로 점점 옥죄이는 느낌이다. 우거진 풀숲으로 하늘은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우리나라 지형상 그러하리라.  그래서인지 나와 길만 있는 것 같다.



“안개 속에서 나는 울었어. 힘들어서 한참을 울었어”


그래서였을까, 점점 가팔라지는 산길에서 저절로 노랫가락이 흥얼거려진다. ‘안개 속에서 나는 울었어. 외로워서 하얀 참을 울었어~ 보고 싶을 때 못 보면 눈멀고 마는 활화산처럼 터져 오르는 그런....한라산!’ 혜은이가 열정으로 불렀던 노래 열정이 매달린 이슬처럼 방울방울 또그르르르.


안개 속에서....너 뭐 하니 이당금? 피식피식 웃음이 나왔다. 비록 ABC 등정은 못 했지만 피레네산맥을 넘었던 나 아닌가! 피레네산맥은 순례자들이 오르내리는 구간의 해발은 원래 해발보다 낮은 곳으로 길을 내었기 때문에 경사가 대체로 완만한 편이다. 그에 비하면 한라산은 급경사 구간이 많다. 피레네산맥이 하늘로 열려 있는 산이라면, 한라산은 숲속으로 잠겨 드는 산이다.


10년전 산티아고 순례길, 첫날 첫 코스는 피레네산맥이었다. 카미노 산티아고의 가장 상징적인 첫 관문이 바로 피레네산맥을 넘는 구간이기 때문이다. 순례자의 첫 시험이라고 불릴 만큼 강력한 구간이다. 어떤 이는 첫날 코스로 가야 한다고 하고 어떤 이는 마지막 코스로 잡아도 좋다고 한다. 그리고 어떤 이는 피레네산맥을 건너뛰어도 괜찮다고도 했다.


난 17kg 배낭을 메고 24km에 달하는 해발 1,450미터의 프랑스와 스페인 국경을 넘는 생장 피레네산맥도 넘었는데...아이고 소리가 절로 나온다. I GO. 가자 가보자고! 피레네산맥을 오르던 때와는 다르게 버겁고 힘들었다. 10년이라는 세월 동안 몸의 유연성이 떨어지고 근육이 약해지고 체력 소모가 많은 것은 피할 수 없는 노화임을 온전히 수긍해야 하는 자연의 법칙임에 순응해야 한다.


백록담에 다다라야 할 지점에서는 거의 비명에 가까운 소리가 턱 밑까지 치밀어올라 뱉어내어진다. 제어되지 못한 한 바가지 욕지기를 볼따구니에서 바람 빠진 풍선처럼 피식피시시피픽 피스스피리피피. 거의 이천미터에 달하는 눈물 나는 산행은 그야말로 고행길이다. 높은 산을 등반한다는 것은 자기를 극복해야 하는 과정이라는 것을...


염려가 많은 뇌수술 환자이기에 체력의 한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라산 백록담을 간절하게 오르고 싶었다. 이유? ... 이유는?.... 아주아주 간절함 뿐이다!  산에 오르면서야 이유를 알게 되었다. 


나에게로의 집중


산에 오른다는 것은 온전히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이었다. 하루종일 안개비가 내리는 산을 걷는 일은  집중이 요구된다. 미끄러지거나 돌 무리에 걸리지 않도록 주의해야 백록담 정상을 보고야 말리라는 계획을 수행할 수 있게 된다. 혹여라도 주변 경치에 한눈팔다가 발목이라도 삐끗하게 되면 곧바로 하산을 해야 하기 때문에 온전히 나에게 집중에 집중!


한발보다  딱 두세 발치 앞선 약 30도 정도의 시선으로 삼각 꼭지를 삼으며 시야가 흔들리지 않도록 해야 한다. 혹여 주변 경치에 넋 놓고 해찰하면 안 된다. 그런데 참 어불성설이다. 느릿느릿 해찰하며 살아야 삶이 보인다고 말하면서도, 산에서는 한눈파는 순간 곧바로 미끄러질 수 있으니 말이다. 꼿꼿하게 세운 몸을 앞으로 살짝 낮춘다. 시선은 30도에서 더 좁혀진다. 땅과 내 몸이 맞닿아진다.


일반적으로 등산은 지구력이다. 지구의 중력을 거슬러 위로 올라가는 일이다. 지루하고 외롭고 힘겨울수록 내적 자존감이 솟구친다. 외적 의식보다 내적 무의식으로 호흡을 고른다. 오직 오르고 오를 뿐이다. 해발이 높아질수록 머릿속은 텅 비워지는 대신 하체 근육은 팽팽해진다.


극에 다다른 거칠어진 숨소리는 비명에 가까운 신음소리로 치환된다. 아하...으흐흐...허어억... 끄응끄응..저 깊이 숨겨진 창자가 뒤틀리면서 내뱉어지는 음절도 안되는  단장의 비명은 단전을 송두리째 뽑아내는 것 같다.  휘청이는 몸을 잠시 주저앉혀 숨을 내뱉는다.


풀어진 숨만큼이나 헐렁해진 등산화 끈을 질끈 고쳐 매고 재차 발걸음을 서두르지만 몇 걸음 못 가서 다시 주저앉는다. 나를 지나쳐 오르는 사람들을 앞세우고 스텝과 호흡을 정돈시킨다.


Let it be! Let it go!


어떤 이는 가볍게 올라가고 어떤 이는 힘들게 올라가고 어떤 이는 쉬엄쉬엄 올라가고 어떤 이는 지속적으로 쉼 없이 올라가고 어떤 이는 몰아서 올라간다. 나름 한번 시작한 일은 끝까지 해내는 편이라서 이를 악물고 기어올랐다. 한 발 한 발 남들보다 꽤 늦은 런닝타임으로 도착했다. 마침내, 완등했다.


우리는 늘 정상에 오르면 무언가 달라질 거라 믿는다. 돈을 벌면, 성공하면, 사랑을 얻으면, 병을 이겨내면, 삶이 선명해질 거라 믿는다. 그러기에 더 높은 산, 다음 산으로 향하는 거겠지.


가쁜 숨을 몰아쉬고 올라온 정상은 안개가 자욱하다. 1미터 앞도 보이지 않는다. 백록담의 풍경을 볼 수 있을 거라는 희망으로 올라왔건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사는 일이 그렇다.


정상에서 방점을 찍어보고 싶은 것이다. 꾸역꾸역 살아온, 기를 쓰고 살아내온 내 삶의 아름다운 증표를 남길 수 있다면! 마치 안개 따위는 상관없다는 백록담 표지석을 안고 인증샷을 찍는 것처럼!


하하하. 이빨을 드러내고 웃을 수 있다. 고통의 한계를 넘어섰을 때 오는 그 짜릿함을 악물었던 잇속에서 솟아나는 침샘처럼 엔돌핀이 솟구친다. 자기 초월자! 


“내려올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못 본 그 꽃.”


안개 가득한 숲속에 멈춰 서서 온몸으로 나무둥치를 끌어안았다. 올라오는 내내 가득했던 상념들은 어느새 안개처럼 흩어지고, 마음 깊숙이 스며 있던 불안 또한 천천히 사라졌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던 숲의 윤곽이 어느새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나는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는 숲의 정령처럼 안개 사이를 자유롭게 떠다녔다. 그리고 올라올 때 보지 못했던 꽃들을, 내려오는 길에서 비로소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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