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의 5월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노래하지 말아라 오월을 바람에 일어서는 풀잎으로
풀잎은 학살에 맞선 피의 전투를 담기에는 부적절한 시의 어법이다
김남주, 「바람에 지는 풀잎으로 오월을 노래하지 말아라」 중에서
계절의 여왕이라 불리는 5월. 광주에게는 아직 끝나지 않은 시간으로 남아있다. 5·18 광주 민주화운동은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깊은 상처로 남은 사건으로 1950년 한국전쟁 이후, 가장 많은 희생을 남긴 정치적 비극으로 기록되었다.
1980년 5월 18일부터 27일까지, 광주는 멈춰 선 시간 속에 갇혀있었다. 전두환의 신군부 계엄군에 맞선 시민들의 항쟁은 거리를 피바다로 물들였고 광주는 지옥의 도가니가 되었다. 당시 약 40만의 시민을 향해 80만 발의 탄환이 준비되었다고 전해진다. 이는 국가가 폭력적인 괴물이 되었다는 참혹한 증거로 보인다.

영화 <화려한 휴가>는 이 열흘간의 시간을 평범한 시민들의 시선으로 그려낸다. 계엄령 선포 이후, 시민들의 일상이 어떻게 붕괴되었으며 계엄군의 잔인한 폭력을 향한 처절한 저항을 보여줌으로써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정면으로 던진 작품이다.
영화 속 택시기사 민우(김상경)는 어린 시절 부모를 잃고 동생 진우(이준기)와 단둘이 살아가는 평범한 인물이다. 성당에 다니는 간호사 신애(이요원)를 마음에 두고 서툰 구애를 건네는 그의 삶은, 작지만 소중한 일상으로 채워져 있다. 그러나 어느 날, 이 일상은 예고 없이 무너진다. 무장한 계엄군이 시민들을 향해 총을 쏘고 무고한 이들이 거리에서 쓰러진다. 눈앞에서 가족과 이웃을 잃은 사람들은 시민군을 조직하고 저항하지만 존재도 이름도 없이 사라졌다.
“우리는 폭도가 아닙니다! 사랑하는 광주 시민 여러분! 우리를 잊지 말아 주십시오!”
“사랑하는 사람들을 끝까지 지켜주고 싶었습니다.”
“사람을 죽여놓고… 어떻게 애국가를 부를 수 있단 말입니까?”
이 절규들은 단순한 영화 대사를 넘어, 그 시대를 통과한 사람들의 실존적 외침으로 남는다. 영화는 국가라는 거대한 권력이 개인의 삶을 어떻게 파괴할 수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한편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는 광주민주화 운동을 배경으로 계엄군에 대항했던 시민들과 남겨진 이들의 고통과 증언을 하나씩 펼쳐 보이며 인간의 존엄과 국가 폭력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이 작품은 15살 소년 동호의 죽음을 중심으로 죽은 자와 살아남은 자들의 겹겹이 쌓이는 목소리들을 통해 비극적인 역사를 기억해야만 하는 이유에 대한 성찰의 기록이다.
“군인들이 죽인 사람들에게 왜 애국가를 불러주는 걸까. 왜 태극기로 관을 감싸는 걸까. 마치 나라가 그들을 죽인 게 아니라는 듯이. ... 군인들이 반란을 일으킨 거잖아, 권력을 잡으려고. 너도 봤을 거 아냐. 한낮에 사람들을 때리고 찌르고, 그래도 안 되니까 총을 쐈잖아. 그렇게 하라고 그들이 명령한 거야. 그 사람들을 어떻게 나라라고 부를 수 있어”
“양심. 그래요, 양심.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게 그겁니다”
법의 이름으로 폭력에 갇힌 광주
이탈리아 철학자 조르조 아감벤(Giorgio Agamben,1942~)은 국가가 비상사태를 이유로 법의 효력을 멈추는 상태를 ‘예외상태’(State of Exception) 라고 설명했다.
1980년 5월 광주가 바로 그런 시간이었다. 계엄령 아래에서 법은 더 이상 시민의 편이 아니었고 대신 불법적인 신군부의 권력이 국가라는 이름으로 폭력을 저질렀던 것이다. 이때 시민들은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존재로 밀려난다. 아감벤은 이런 상태를 ‘호모 사케르’라고 불렀으며 ‘벌거벗은 생명’이라고 표현했다.
고대 로마법에서 이 말은, 누구나 죽일 수 있지만 그 죽음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는 사람을 뜻한다.
광주의 시민들이 ‘호모 사케르’가 된 것이다. 계엄군에게 그들은 보호해야 할 국민도 시민도 아닌 폭도로 포장된 채 제거의 대상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방아쇠를 당기는 손- ‘악의 평범성’
그렇다면 시민들을 향해 총을 쏜 그들은 처음부터 괴물이었을까?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1906~1975)는 이를 ‘악의 평범성’으로 설명한다. 그는 나치 전범의 재판을 보면서 악은 괴물의 얼굴을 하고 오지 않고. 생각하기를 멈춘 평범한 사람들의 얼굴로 우리 곁에 존재한다고 역설하였다.
<화려한 휴가> 속 계엄군들 역시 누군가의 아들이고 형제이며 가족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국가라는 조직의 부품이 되는 순간, ‘상부의 명령’이라는 이름 아래 사고를 멈추었다.
『소년이 온다』에서 고문 기술자들과 진압군들은 국가라는 거대한 기계 속에서 '효율성'과 '완수'만을 생각하는 부품들이었다. 그들은 동호와 같은 어린 소년에게 총을 쏘고, 여대생의 몸을 유린하면서도 그것이 '국가 질서 유지'라는 직무라 믿었다. 이것이 아렌트가 말한 스스로 사유하기를 멈춘 평범한 사람들이 가졌던 ‘악’이었던 것이다.
또한 군인들이 시신을 번호로 매기고 부패해가는 육체를 방치하는 행위는, 그들을 공동체의 구성원이 아닌 제거된 '잔여물'로 취급했음을 보여준다.
“네가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습니다.”
“나는 싸우고 있습니다. 날마다 혼자서 싸웁니다. 살아남았다는, 아직도 살아 있다는 치욕과 싸웁니다.”
망각은 폭력에 동의하는 침묵이다
“당신들을 잃은 뒤, 우리들의 시간은 저녁이 되었습니다. 우리들의 집과 거리가 저녁이 되었습니다. 더 이상 어두워지지도, 다시 빍아지지도 않는 저녁 속에서 우리들은 밥을 먹고 걸음을 걷고 잠을 잡니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상처와 고통 속에서 힘겹게 하루 하루를 버텼던 것이다. 『소년이 온다』 는 15살 동호의 죽음 너머에 있는 희생자들의 귀환이며 ‘벌거벗은 생명’이 인간의 존엄성을 회복하는 동시에 비극의 역사를 기억하고 기록하였다.
국가가 스스로 예외상태를 선포하고 시민을 향해 폭력을 행사할 때, 이를 멈출 수 있는 힘은 결국 ‘사유하는 시민’의 연대에서 비롯된다. 2024년 12월 3일, 44년 만에 비상계엄령이 선포되었다가 330분 만에 해제되는 급박한 상황 속에서 우리는 그것을 다시 목격했다. 늦은 밤 무작정 국회로 달려가 무장한 군인들과 맞섰던 시민들은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광주의 5월을...
E. H. 카(Carr 1892~1982)는 역사가 단순한 과거의 사실이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현재의 시선 속에서 끊임없이 새롭게 해석된다고 보았다. 그래서 광주의 5월은 지나간 사건으로 머물지 않는다. 그날은 지금도 우리 앞에 남아 있다.
우리는 그날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광주의 5월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