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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에게 쓰는 레시피] ep4. 쑥의 계절, 루비를 닮은 하루

곽복임| |댓글 0 | 조회수 80


 



〈딸에게 쓰는 레시피〉는 엄마가 계절의 재료와 사회의 온도를 살펴 딸에게 응원 한 그릇 내놓는 엄마카세다.



ep4. 쑥의 계절, 루비를 닮은 하루


 

  #4월, 꽃보다 먼저 떠오르는 날들


봄이 봄 같지 않은 날씨가 연속이야. 언제부턴가 화창한 봄을 만끽하는 날이 줄어든 것 같아. 그 때문이 아니더라도 4월이 오면, 꽃보다 먼저 떠오르는 날들이 있어. 그래서 4월은 가볍게 시작되지 않아. 계절은 분명 봄인데, 그 안에 붙어 있는 시간은 그렇게 가볍지가 않지. 우리가 기억하는 ‘제주4.3’이 있고, ‘4.16세월호참사’가 있어.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마음이 한 번쯤은 멈추게 되는 날들.


잠시 멈춰 선 마음 다독이다가 너랑 같이 세월호 기억식에 함께 있었던 날들이 생각났어. 안산, 목포, 팽목항을 걸었던 기억도 같이 따라와. 네가 학교 밖에 있던 시절, 학교에 다니지 않는 우리 딸에게 수학여행이 없어서 서운하겠다며 아빠가 제안한 ‘엄빠스쿨 수학여행’. 우리가 직접 일정을 짜고 3박4일 동선을 만들었지. 그중 하루는 수학여행으로 떠난 네 또래 친구들이 끝내 가지 못하고 돌아오지 못했던 제주에서 너와 함께 4월 16일을 보내며 기억식에 함께했던 거 생각나? 제주세월호기억관 청소년들과 나란히 앉아 있던 네 모습을 보며 미안하고, 고맙고, 서글펐어. 그때는 우리가 같은 4월 안에서 같은 장면을 보고, 같은 공기를 느끼고, 같은 시간 위에 서 있었던 날들이었다.



  #같은 4월에서 다른 4월로


이번 4월은 조금 다르게 흐른다. 너는 대학에 들어가 첫 중간고사를 치르고 있고, 나도 여느 때와는 다른 4월을 보내고 있어. 며칠 전, 전화했을 때 목소리가 심상찮음을 느꼈는데 몸살이 왔다지? 잠긴 목소리를 들었을 때 당장이라도 달려가고 싶었지만, 서두르는 마음을 붙잡았어. 몸이 아프다고 먼저 얘기하지 않는 것도, 엄마의 도움 없이 병원엘 혼자 다녀오고 어떻게 자기 몸을 챙겨야 할지 스스로 챙기는 것도, 내가 다 해줄 수 있는 종류의 일이 아니라는 걸 알기 때문이야. 이제는 네가 혼자 하루를 건너는 사람이 되었다는 뜻인 거 같아 너의 시간을 지켜주기로 했어.


물론 그걸 잘 알면서도 엄마는 자꾸 묻게 돼. 괜찮은지, 밥은 먹었는지. 그런데 요즘은 그 말을 조금 참고 있어. 대신 너를 생각하며 언젠가 네게 필요해질 요리 하나 더 만들어봐. 그래서 생각난 재료가 쑥! 집 근처 로컬푸드직매장에 갔더니 쑥이 ‘쑥-’ 올라와 있더라. 엄마 눈에 쑥이 들어왔던 이유는 편도염과 몸살을 앓고 있는 네 생각이 나서겠지?


쑥은 3월 말부터 5월 초까지 나오는데, 지금이 딱 좋을 때지. 따뜻한 성질이라 몸을 데워주고, 염증 있을 때도 좋다고 하더라. 지금 너한테는 약 같은 음식이겠다. 몸이 천근만근일 때는 만사가 귀찮겠지만, 조금 움직일 만하면 쑥국 한 그릇 끓여 먹으면 좋겠다. 흘렁하게 된장 풀어서 다시 멸치 댓 마리 넣고 끓인 맑은 국물에 다진 마늘 조금, 쑥 한 줌만 슬쩍 넣어주면 쑥 향만으로도 제법 괜찮은 쑥국이 돼. 복잡한 조리 과정 없어도 지금처럼 몸의 기운을 회복해야 할 때 좋은 음식이야.


참! 너 어릴 때, 엄마가 쑥을 손질하면서 불렀던 노래 생각 나? “이 산으로 가면 쑥국~쑥국~ 저 산으로 가면 쑥쑥국~쑥국~” 그러면 너는 또 까르르 숨넘어가듯 크게 웃었지. 너 웃는 모습을 보기만 해도 너무 행복해서 엄마가 그 노래를 끊임없이 불렀지.


쑥국 끓여 놓고 네 생각이 나서 전화했더니 너는 루비 키위를 썰고 있었지. 딸기를 그렇게 좋아하던 네가 루비 키위를 골랐다는 얘기를 듣고 웃음이 났어. 왜 하필 그걸 골랐는지는 묻지 않아도 알 것 같았거든. 비타민C 함량이 높아 아플 때, 입맛 없을 때 찾아지는 과일인 루비 키위는 항산화 성분 때문에 염증 완화에도 좋다지? 요리 공부를 했던 네가 그렇게 너만의 방법으로 네 몸을 잘 챙기고 있다는 생각에 안도감과 대견함이 차올랐어.


나는 쑥국을 끓이고 있고, 너는 루비키위를 주문해 먹고……. 예전 같으면 같은 식탁 위에 올랐을 것들이 지금은 각자의 자리에서 따로 놓인 풍경이야. 같은 4월을 함께 지나던 때가 있었는데, 서로 다른 4월을 지나고 있다는 게 조금 낯설긴 해. 그런데 또 생각해 보면, 그게 맞는 흐름이기도 하겠다 싶어.


#나는 계절을 보내고, 너는 하루를 보낸다.


나는 계절이 바뀌는 걸 음식으로 안다. 쑥이 올라오면 쑥국을 끓이고, 그걸 먹으면서 ‘아, 지금 이 시기를 지나고 있구나’ 하고 확인한다. 너는 너의 방식으로 하루하루를 직접 부딪치면서 이 계절을 건너고 있겠지. 아픈 날도 있고, 괜찮은 날도 있고, 별일 없는 날도 있겠지만 그 하루들을 네 힘으로 쌓아가고 있을 거야. 그리고 그 시간은 네가 고른 루비 키위처럼 단단하고 또 선명한 시간으로 남겠지. 엄마는 그걸 지켜보는 자리로 조금 물러나 있을게. 그리고 네가 필요할 땐 언제든, ‘쑥-’ 나타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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