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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리즘의 피해자일까? 수혜자일까?

채문석| |댓글 0 | 조회수 93

한창 ‘두쫀쿠’가 인기였다. ‘두바이 쫀득 쿠키’의 줄임말이다. 두쫀쿠는 두바이 초콜릿에서 영감을 받아 한국식으로 재해석한 퓨전 디저트이다. 아이브 장원영 등 연예인이 즐겨 먹는다고 알려지면서 ‘오픈런’ 현상을 낳기도 했다. 일반 쿠키와 달리 안이 덜 익은 듯 촉촉하고 쫀득한 식감이 특징인데, 지난해 하반기부터 SNS와 카페를 중심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며 디저트 트렌드의 중심에 섰다. 인기 비결은 의외로 단순하다. 쿠키라는 익숙한 형태에 예상치 못한 쫀득함이라는 '반전'이 MZ세대의 취향을 저격했기 때문이다.


MZ 딸 덕에 거둔 '의문의 1승', 두쫀쿠가 뭐길래?


최근 대학 동료 모임이 있었다. 4명이 모였는데 2명이 두쫀쿠를 아직 못 먹어봤다며 신세 한탄을 했다. "집에 딸이 없다 보니 이런 트렌드조차 못 따라간다"며 괜히 애먼 아들들만 탓한다. 그 모습에 웃음이 터졌다. 딸을 둔 덕에 이미 그 맛을 섭렵한 내가 의문의 1승을 거둔 기분이었다. 두쫀쿠가 대체 뭐라고 은퇴한 사내들을 이토록 작아지게 만든단 말인가.


실제로 한창 인기 있을 때 두쫀쿠는 제과점마다 인당 판매 개수를 제한할 정도였다. 두쫀쿠를 처음 개발했다는 김포시의 제과점은 하루 최고 매출액이 1억 3천만 원까지 올라갔다고 한다. 전국의 제과점마다 디저트 매출은 전년 대비 수배 이상 폭등했다. 알고리즘이 띄운 짧은 영상 하나가 거대한 소비의 물결을 만들어낸 셈이다.



강호동의 먹방, 봄동을 '금(金)동'으로 만들다


봄바람이 불기 시작한 2월 말부터는 ‘봄동 비빔밥’이 디지털 공간을 점령했다. 발단은 방송인 강호동의 2008년 먹방 영상이 소환된 것이 계기였다. 야무지게 비벼 한 입 크게 밀어 넣는 그 장면에 알고리즘이 화력을 보탰다. SNS마다 저마다의 레시피가 쏟아졌고, 나 역시 그 대열에 합류했다. 레시피대로 봄동 겉절이를 무치고, 참기름과 고추장을 넉넉히 둘러 계란 후라이 두 개를 얹었다. 한 그릇 비워내며 혼자 감탄했다. “난 전생에 요리사였을 거야.”



이런 갑작스러운 인기에 봄동 가격은 그야말로 '금(金)동' 수준으로 뛰었다.  가락시장 등 주요 도매시장에서 3월 봄동의 평균 도매가는 불과 한 달 전보다 30% 가까이 급등했다는 뉴스도 나왔다.  봄동은 애초에 물량을 오래 쌓아두고 가격을 조절할 수 있는 품목이 아닌데 SNS를 타고 소비가 한쪽으로 쏠리다 보니 가격 급등을 막을 방법이 없었다는 설명이다. 이러다 보니 편의점에서도 봄동을 활용한 비빔밥 도시락이 출시됐다. 심지어 한 식품 기업에서 출시한 봄동 겉절이는 한정판임에도 두 달 만에 22톤이 팔려나가는 기염을 토했다.


알고리즘이 보여준 레시피가 널리 퍼지면서 위축됐던 농가 소득에 큰 보탬이 된 것이다. 개인은 제철 음식으로 건강을 챙기고, 농가는 소득이 늘어나니 이보다 더 뿌듯한 상생이 어디 있겠는가.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이런 비빔밥, 예전에도 수없이 먹어왔다. 찬밥에 남은 반찬 때려 넣고 슥슥 비벼 먹던 그 꿀맛 말이다. 그때는 SNS도, 알고리즘도 없었기에 그저 개인의 소소한 만족에 그쳤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온 국민이 같은 메뉴를 바라보고, 같은 맛을 공유한다. 마치 이 트렌드를 쫓아가지 못하면 시대에 뒤처진 사람처럼 느껴지게 하니, 참 묘한 일이다. 이 복잡미묘한 심경을 담아 시조 한 수를 지어봤다.


두쫀쿠 인기래서 늦지 않게 먹었더니

꽃 피니 봄동인가 비빔밥이 대세구나

트렌드 뒤처질까 봐 봄맛으로 비벼본다


어제는 두쫀쿠, 오늘은 비빔밥...다음 타자는 '버터떡'


봄동의 계절이 가기도 전, 이제는 '버터떡'이 대세로 자리를 잡았다고 한다. 전통적인 떡에 고소한 버터 풍미를 입힌 이 새로운 디저트는 벌써 '떡케팅(떡+티케팅)'이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내며 SNS를 달구고 있다. 어제는 두쫀쿠, 오늘은 비빔밥, 내일은 버터떡이다.


다음 트렌드는 또 무엇일까? SNS가 유행의 불씨를 지피면, 알고리즘이 적절히 부채질하며 거대한 불꽃을 만든다. 우리는 그 불꽃 주변을 맴도는 나방처럼, 알고리즘이 설계한 취향의 생태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현실을 살고 있다.


새로운 맛을 알아가는 즐거움이 있는 반면 소외되지 않으려는 피로감도 있는 게 사실이다. 스스로 물어 본다. 나는 이 촘촘한 알고리즘의 수혜자일까, 아니면 조종당하는 피해자일까? 정답은 알 수 없지만, 오늘도 나는 스마트폰을 켜고 알고리즘이 추천해 준 다음 '대세'를 확인한다. 수혜와 피해, 그 모호한 경계 위에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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