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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에는 술이 없다?

김홍렬| |댓글 0 | 조회수 141

1. 술 


음식(飲食)은 먹고(食) 마시는(飲) 모든 것을 말한다. 먹는 것이야 말할 나위 없고, 마시는 것의 중요성 역시 간과할 수 없다. 마시는 것의 바탕은 물이다. 오죽하면 생명수(生命水)라 하겠는가? 물 다음으로 중요한 마실 것은 술이다.


물은 생명의 원천이므로 굳이 내세워 표현할 필요가 없다는 차원에서 보면 음식에서의 음(飲)은 사실상 술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불교를 숭상하던 고려시대에는 종교적 이유로 술보다 차(茶)가 더 중요한 음료였다).


술은 신령스러운 존재인 신(神)과 조상에게 바치는 첫 번째 제물(祭物)이며 풍류 문화의 핵심 소재다. 신과의 관계에서 인간과의 관계 그리고 자기 자신을 다스리고 위로하는 데까지 술은 늘 가장 중요한 자리에 서 있으며 희로애락의 주인공이었다.


예로부터 이름난 고을과 가문에는 자신들만의 술이 전해져 온다. 서울 문배주, 전주 이강주와 죽력고, 안동 소주, 진도 홍주, 한산 소곡주, 경주 법주, 평양 감홍로 등 내로라하는 지역이면 예외 없이 지역을 대표하는 술 하나쯤 전해져 온다.


마찬가지로 뼈대 있는 가문이라면 역시 대대로 물려받은 가양주 하나쯤 내세울 수 있어야 했다. 조상 모시기에 더해 찾아온 벗과 함께하는 시·서·화의 문화 행위는 대체로 술과 함께 이어졌기 때문이다. 


근래 남도 음식문화를 연구하게 되면서 미향(味鄕)이자 예향(藝鄕)이라는 남도를 대표하는 두 도시 광주와 나주에 이렇다 할 전통주가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음·주·가·무가 미(味)와 예(藝)의 기본이거늘 풍류의 고장 남도의 중심도시에 어이하여 전해져 오는 오래된 술 하나가 없는 걸까?


2. 그림


서울 동국대학교 박물관에는 ‘희경루방회도(喜慶樓枋會圖)’라는 그림 한 점이 전시되어 있다. 2015년 보물로 지정된 이 그림은 조선 명종 22년(1567년)에 당시 광주목(光州牧)의 객사 옆에 자리했던 누각 희경루(喜慶樓)에서 20여 년 전의 명종 1년(1546년) 증광시 문·무과에서 합격했던 5명의 동방(同榜)이 함께 연회를 열고 친목을 다지는 모임인 방회(榜會)를 갖고 이를 기념하여 그린 계회도(契會圖)다.


이 연회의 주최자인 광주목사(光州牧使) 최응룡(崔應龍)을 비롯하여 전라도관찰사 강섬(姜暹), 전승문원부정자 임복(林復), 전라도병마우후 유극공(劉克恭), 낙안군수 남효용(南效容) 등 5인이 참석하였는데 이들은 모두 전라도 광주 인근 지역에서 근무하거나 이 지역에 연고가 있는 동방 즉, 과거 급제 동기생들이다.


그림 속 연회 장면에는 36명이나 되는 기녀들이 춤을 추거나 음식을 나르고, 주위를 호위하는 병사, 누각 아래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하급 관리들, 하인들, 피리를 연주하는 악공 등 다양한 모습의 사람들이 그려져 있다.


희경루는 신숙주가 동방제일루(東方第一樓)라 칭송하였을 정도로 큰 규모와 빼어난 형태를 자랑하던 누각으로 일제강점기 때 훼손되었다가 지난 2023년에 광주공원 앞 광주천 변에 복원되었는데 복원의 근거가 된 자료가 바로 이 방회도였다. 희경(喜慶)이란 ‘함희상경(咸喜相慶)’을 줄인 말로, ‘모두 기뻐하고 서로 축하한다’라는 뜻이다. 


< 희경루방회도(부분)  출처:국가유산포털 >


이 그림에서 음식은 상과 그릇들의 모습으로만 표현되어 음식에 대한 상세한 내용은 없다. 그러나 광주목사가 주최하는 행사이고, 과거에 급제한 지 20여 년 만에 동방들과 함께하는 연회이니만큼 당대 전라도 음식의 정수를 모두 모아 차려냈을 것임은 쉽게 짐작해 볼 수 있다. 그런 잔칫상에서 흥을 돋우기 위한 술이 빠졌을 리 없다. 아마도 광주목을 대표할 지역 명주가 넉넉하게 준비되었을 것이다.


3. 기록


무등산 넘어 가사문학관이 있는 지실마을은 송강 정철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인연으로 얽혀 있다. 그는 이곳에서 청년 시절을 보내며 혼인도 하고 과거에 장원으로 급제하였으며 우리 문학사에 빛나는 가사 문학을 남겼다. 우여곡절을 겪은 인물답게 그의 묘와 종가는 생전에 아무 연고가 없었던 충청도 진천에 자리 잡고 있지만, 다른 많은 후손은 여전히 남도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중 한 곳이 계당(溪堂) 종가다. 계당은 원래 송강 정철의 4남 기암(畸庵) 정홍명(鄭弘溟, 1582~1650)이 터를 잡고 지은 집 사랑채의 당호이자 택호(宅號)였다. 안채, 별당 등을 갖춘 전형적인 반가 가옥이었으나 두 차례 화재로 모두 소실되고 현재는 이 사랑채만 남아 있다.


계당가는 기암의 바로 위 형, 즉 송강의 3남으로부터 내려온 영일정씨(迎日鄭氏) 소은공파(簫隱公派)의 종가로 지금은 송강 정철의 16세손인 정구선(鄭求善) 종손이 지키고 있다. 평생을 민주화 운동과 시민운동에 헌신해 온 종손은 10여 년 전에 가전 되어 오던 고문헌 천여 점을 가사문학관에 기증하였고, 이어 남은 고문헌을 전남대학교 도서관에 기탁 하였다.


이 문서 중에서 발견된 것이 『갑자년 주법(甲子年 酒法)』이다. 이 문헌은 70여 종에 이르는 조선시대 조리서 중 호남에서 쓰인 것으로 확인된 세 번째 자료로 그만큼 희귀한 고조리서다. 필자 등은 최근, 이 고문헌에 수록된 술과 음식 만드는 법을 해독하고 연구하여 유수 학술지에 논문으로 발표하였다. 이를 통해 ‘갑자년 주법’의 자료적 희귀성은 물론 내용에서도 남도 고유의 조리법과 명칭 등의 독특성이 확인되어 학계로부터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 


< 계당종가 가전 고조리서 갑자년 주법 >


4. 마침내 찾아낸 광주의 술


  『갑자년 주법』에 ‘희경주’라는 술이 나온다. 찹쌀과 가루 누룩 그리고 당대에는 귀한 식재료였던 밀가루를 넣어 빚는 이양주(二釀酒)로 오래될수록 맛이 좋고 국이 많아지는 술이다.


 ‘희경주’라는 술 이름 자체가 지금까지 알려진 조선시대 수많은 술 기록에서 전혀 보이지 않은 것인데다 밑술과 항아리 온도가 상당히 높아진 후에 덧술을 넣는 등의 양조법 또한 다른 술 방문에서 유사한 사례를 찾기 어려운 독특한 방식이어서 학계의 관심이 높은 발효주다. 현재는 희경주를 비롯한 『갑자년 주법』 수록 술들을 재현·복원하는 작업을 진행 중인데, 참여하는 술 전문가들에 의하면 명문가의 가양주답게 맛과 향이 뛰어날 것이라 한다.


 ‘희경주’가 천하제일루(天下第一樓) 희경루에서 이름을 따 온 것인지 확인하기는 어려우나 그 개연성은 충분해 보인다. 우연이든 필연이든 같은 이름을 갖고 있는 훌륭한 술과 누각을 연결하는 스토리텔링과 상품화 등을 통하여 그동안 비어 있었던 광주의 전통주와 남도 풍류 문화를 부흥시키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참고문헌)

1. 「담양 송강 정철 후손 계당가(溪堂家) 갑자년 주법(甲子年 酒法) 소개와 해석」, 한국식생활문화학회지, 41(1):13-25, 2026, 박채린(세계김치연구소), 백두현(경북대), 김홍렬(청주대·한국음식인문학연구원)

2. 한국 민족 대백과사전. 온라인판

3. 국가유산청 국가유산 포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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