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팝송과 우리 대중가요
1970년대 중,고등학생 시절부터 해외에서 들어 온 팝송이나 샹송, 칸쏘네를 들으면서 우리나라 대중음악은 언제부터나 이렇게 멋지고 세련되게 만들 수 있을까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1981년에 전남대학교에 입학해서 아르바이트로 시작한 음악다방 DJ로 일할 때도 신청되는 음악은 대부분 팝송이었고, 가요 중에서는 팝송의 영향을 받은 포크음악이나 그룹사운드, 대학가요제 입상곡 위주의 곡들이었다. 그 시절 음악다방에서는 당시 최고의 트로트 가수였던 남진, 나훈아, 이미자 등의 트로트 앨범은 구하지도 않거니와 DJ가 트로트를 들려주는 것이 금기시되던 시절이었다.
그렇게 팝송의 영향을 받은 노래들이 젊은이들에게 사랑받았던 시절을 보내고 50여 년이 지난 오늘날 우리 대중가요가 많이 발전해서 K-Pop이라는 하나의 장르로 자리 잡았다.
< 98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공연 모습 >
2012년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빌보드 챠트에서 2위까지 오르더니, BTS의 ‘다이너마이트’부터 ‘새비지 러브’ ‘라이프 고즈 온’ ‘버터’ ‘퍼미션 투 댄스’와 ‘마이 유니버스’ 등 여러 노래들이 빌보드 싱글차트 1위에 오르고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영화 ‘K팝 데몬 헌터스’에 나오는 ‘Golden'이 그래미상을 받고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주제가상을 받는 쾌거를 이뤄냈다.
그 시절 그래미 시상식 중계방송을 볼 때마다 우리 노래가 그래미상을 받는 날이 올 수 있을까 생각했는데 지금은 많은 것들이 실현되었고 이번 주말에 광화문 광장에서 열리는 BTS의 컴백 공연 이후에 더 많은 성과를 이룰 것으로 기대한다.
내가 DJ를 시작한 이후 45년 동안 현장에서 우리 대중가요의 변천사를 지켜보면서 그동안 우리가 팝송을 들으면서 많이 따라 했고 우리의 대중음악을 발전시킨 결과로 오늘날의 K-Pop을 만들어 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오늘은 우리 대중가요 발전에 팝송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정리해본다.
대중음악계에서 우리나라 가요의 역사는 1920년대 말부터 시작된 것으로 보고 있다. 일제강점기였던 그 시절에 우리 음악은 일본을 통해 들어 온 서양음악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그중에 미국의 음악은 우리나라 음악에 가장 많은 영향을 주었다.
1930, 40년대 미국은 빅 밴드의 스윙 재즈 음악 시대였다. 이 땅에도 재즈 음악이 들어왔는데, 1938년, 17세의 소녀 가수 박단마는 '나는 열일곱 살이에요'를 발표했다. 이 노래는 우리나라에서 히트한 최초의 재즈 음악이다.
이 시대에 재즈 음악으로 히트한 곡으로는 김해송의 '청춘삘딩', 박향림의 '오빠는 풍각쟁이', 이난영의 '다방의 푸른 꿈' 등이 있다. 이 재즈곡들은 당시의 유행가 작곡가이자 당대 최고의 가수 이난영의 남편이었던 김해송인데 그는 김송규라는 예명으로도 활동했다.
1950년 6월에 시작된 한국전쟁으로 16개 나라로 구성된 UN군이 들어오면서 세계 여러 나라의 음악이 유입되는데 특히 미국의 팝 음악을 빠르게 받아들인다. 1953년 휴전이 된 이후에 주한 미군을 위한 AFKN 방송과 미8군 무대를 통해서 미국 본토의 음악은 우리 대중음악계에 빠르고 넓게 퍼져 나갔다.
1950년대 미국은 프랭크 시나트라로 대표되는 스탠다드 팝 음악과 엘비스 프레슬리로 대표되는 락앤롤이 시작되는 때였다. 이 시대에 우리나라에도 스탠다드 풍의 가수 현인, 최희준이 인기를 누렸다.
현인, 최희준을 트로트 가수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데 그들은 당대 최고의 스탠다드 팝 가수다. 그리고 50년대 왈츠의 여왕으로 불리던 미국의 가수 패티 페이지는 우리나라 가수에게도 영향을 끼쳐 김혜자라는 이름의 가수를 패티김으로 만들어 놓기도 했다.
50년대에 탱고, 맘보, 부기우기 등의 춤곡도 등장하는데, 현인의 '서울야곡', 도미의 '비의 탱고', 김정구의 '코리안 맘보', 백설희의 '도라지 맘보', 김정애의 '닐니리 맘보', 윤일로의 '기타 부기' 등이 히트했다. 거기에 이국적인 가사와 멜로디로 사랑받은 노래로는 현인의 '신라의 달밤', 장세정의 '샌프란시스코', 백설희의 '아메리카 차이나타운', 허민의 '페르샤 왕자', 금사향의 '홍콩 아가씨' 등이 있다.
흑인들의 음악으로 불리는 블루스의 영향을 받은 히트곡으로는 백설희의 '봄날은 간다', 안정애의 '무정 블루스', 나애심의 '미사의 종' 같은 노래가 있다. 그리고 미국의 음악과 우리의 신민요가 만나서 황정자의 '오동동타령', '노랫가락 차차차' 등이 나오기도 했다.
팝송 풍의 대중가요가 가요계를 선도하는 양상을 보이는 60년대에 1961년에 나온 한명숙의 '노란 샤쓰의 사나이'의 대유행 이후 미8군 무대에서 활동했던 한명숙, 이난영의 딸과 조카로 구성된 김시스터즈와 현미, 패티김, 그리고 소녀듀오로 활동했던 송영란과 윤복희가 미8군 무대에서 인정받고 대중가요계로 흘러나왔다.
송영란과 윤복희의 무대에서 백밴드로 활동했던 밴드는 윤복희의 오빠 윤항기가 만든 키보이스였다. 키보이스는 1963년부터 신중현의 애드포와 함께 우리나라 그룹사운드 시대의 문을 연 밴드다. 영국에서 1962년에 비틀즈가 결성되고 1964년에 미국 시장에 진출해서 전 세계 음악 판도를 바꾼 사건이 벌어지는데 1963년에 활동을 시작한 키보이스나 애드포를 보면 우리나라에 그룹사운드 문화가 얼마나 빠르게 전해졌는지 알 수 있다.
비틀즈 이전의 음악 산업 시스템은 노래 만드는 작곡가가 있고 반주는 악단이 하고 노래는 가수가 하는 분업의 시대였다. 비틀즈는 작곡과 연주, 노래까지 그 모든 것을 한꺼번에 하는 효율적인 시스템을 만들어 낸 것이다. 이런 효율적인 시스템을 미8군 무대를 통해 빠르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리고 60년대에는 미국 본토에서 프라더스 포, 포 시즌스, 포 탑스등의 남성 4중창단의 인기가 대단하던 때였다. 그 영향으로 최희준, 박형준, 위키리, 유주용으로 구성된 포 클로버스가 외국인을 상대로 한 워커힐 호텔의 무대에서 사랑받고 당시의 지식인들 사이에서 인기를 얻었다. 4중창단의 인기는 봉봉 4중창단에 이어서 별넷 등으로 이어진다.
60년대는 트위스트의 시대이기도 하다. 1960년 체크무늬 옷을 입은 흑인가수 Chubby Checker가 '트위스트'를 히트 시키는데 몸을 비비 꼬는 독특한 이 춤은 전 세계로 퍼져 나갔고 우리나라 젊은이들도 한 때 이 춤에 푹 빠져서 60년대 내내 발바닥을 열심히 비벼댔다. 김한섭이라는 이름의 코미디언이 트위스트 김으로 거듭나기도 했던 시절이다.
월남전이 벌어진 1960년대 중반 이후 미국에서는 전쟁을 반대하는 젊은이들의 히피문화가 싹트는데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도 이 시대의 젊은이였다. 히피문화 시대의 포크음악 가수였던 밥 딜런과 조안 바에즈, 사이먼 앤 가펑클 등의 음악이 우리나라에 들어오고 한대수, 트윈폴리오, 김민기, 양희은, 서유석, 김세환 등의 통기타 가수들이 방송을 통해 알려지게 된다.
우리나라 포크 음악은 초창기에는 팝송을 번안한 곡을 부르다가 74년부터 창작 포크 음악을 대거 만들어 낸다. 당시 젊은이들에게 사랑받은 포크 음악은 유신 독재정권 시대에 의도와는 다르게 민중가요의 역할을 하기도 했다.
미국에서 60년대 말부터 인기를 끌던 쟈니 리버스와 CCR, Raiders의 고고 음악은 우리나라에 70년대 초에 들어와 고고 열풍으로 이어진다. 전국에 고고클럽이 많이 생기면서 무대에 설 밴드가 만들어진다.
히식스, 데블스, 템페스트, 트리퍼스 등의 고고밴드가 등장하고 70년대 중반 이후 대마초 파동으로 가요계가 어려운 시절에는 고고밴드에서 활동하던 가수들이 고고와 트로트가 절묘하게 배합된 트로트 고고라는 독특한 장르의 노래로 가요계의 전면에 등장하게 된다.
1975년 최헌의 '오동잎'을 시작으로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에', 윤수일의 '사랑만은 않겠어요', 조경수의 '돌려줄 수 없나요', 최병걸의 '난 정말 몰랐었네', 들고양이들의 '마음 약해서'가 이 시대에 사랑받은 대표적인 트로트 고고 음악이다. 관광버스에서 춤을 출 수 있었던 시절에 사랑받았던 곡들은 거의 다 트로트 고고 음악이었다.
고고와 함께 70년대 젊은이들이 사랑했던 음악 장르로 존 덴버, 로보, 케니 로저스 등의 컨트리 음악을 빼놓을 수 없다. 대표적인 가수는 김세환과 서수남 하청일, 이성애 등이 사랑받았다. 그리고 아예 외국에서 히트한 곡을 가사만 번역하거나 따로 작사해서 만든 번안가요도 많이 나왔는데 조영남이 번안곡을 많이 불렀다.
'딜라일라', '고향의 푸른잔디', '돌고 도는 인생'. '내 생에 단 한 번만이라도' 등이 모두 조영남이 불러서 히트한 번안곡이다. 당시 인기 있는 팝송은 동시에 여러 가수들이 번안해서 발표하기도 했는데 폴 앙카의 'Papa'는 이수미, 이승연이 불렀고 프레디 아길라의 ‘Anak'도 이용복, 정윤선이 같은 시기에 불러서 발표했다. 그리고 버티 히긴스의 ’Casablanca'는 최헌, 전영록이 불러서 사랑받았다.
1977년에 영화 ‘Saturday Night'에 나오는 비지스 음악에 의해서 전 세계에 디스코 열풍이 분다. 우리나라에도 보니엠, 이럽션, 바카라, 아라베스크 등의 음악이 들어오고 어김없이 번안곡으로 소개되는데 보니엠의 'Rivers of Babylon'은 들고양이들의 '강가에서'로, 이럽션의 'Oneway Ticket'은 방미의 '날 보러 와요'로 징기스칸의 '징기스칸'은 조경수에 의해서 번안이 된다.
전자음악과 펑크음악의 시대. 80년대는 경제발전이 이루어지고 올림픽을 유치하면서 대중음악도 다양화되는 시대이다. 미8군 무대에서 일하던 조용필이 최고의 전성기를 맞았고, 팝송을 들으며 공부를 했던 학생들이 대학가요제에 나가서 입상하고 가요계로 진출하는 시스템이 정착하는 시대이기도 하다.
미국에서는 락 밴드인 본 조비와 건스앤 로지스 등의 음악이 성행하는데 우리나라에서도 하드락 밴드인 부활, 시나위와 들국화, 신촌블루스 같은 밴드도 대중적인 인기를 얻는다.
80년대 말부터 시작된 힙합 음악은 엠씨 해머나 바비 브라운으로 대표되는데 밴드 시나위에서 베이스를 연주하면서 힙합을 즐겨 들었던 서태지는 1992년에 우리나라 가요계의 판도를 일시에 뒤집는 활동을 시작했다. 그리고 김건모는 당시 전 세계를 강타한 레개 음악을 도입해서 큰 사랑을 받았다.
1990년대 R&B음악은 Boyz II Men, R. Kelly 등의 영향으로 우리나라에서도 R&B음악이 유행처럼 번졌다. 솔리드, 플라이 투 더 스카이, 박효신, 휘성 등에 의해서 R&B 특유의 소몰이 창법이 한때 유행했었다.
그리고 그 즈음 미국에서 유행하는 얼터너티브 락 밴드 너바나와 펄 잼 등의 영향으로 90년대 후반에 우리나라에도 인디밴드들이 대거 등장하는데 크라잉 넛, 노브레인 등이 이때 만들어진다.
이렇게 1960년대부터 음악감상실이나 음악다방에서 듣던 팝송은 라디오 방송을 통해 더욱 사랑받았고 7080시대 대부분의 대학생들이 대화에 끼려면 기본적인 팝송은 알고 있어야 했다. 그 영향으로 우리 가요의 수준도 자연스럽게 높아질 수밖에 없었고 이제는 세계음악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거기에 교통과 인터넷, SNS 등의 통신수단이 발달하고 우리나라가 정보화 시대의 선도국가가 되면서 우리의 대중음악을 유튜브나 숏츠, 릴스를 통해 바로 알릴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지난 15일 미국 LA에서 열린 제98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우리의 전통음악과 사물놀이가 울려 퍼지는 모습을 보면서 이제는 우리의 더 많은 음악이 K-Pop 열풍의 대열에 합류해서 전 세계로 퍼져 나가기를 기대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