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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현의 세상유감] 에스컬레이터가 실어 나르지 못하는 것들

박지현| |댓글 0 | 조회수 233

< 동명동 창억 분식 > 


허름하고 작은 분식집 테이블에 노년의 그녀들이 마주 앉아 있다. 주인장은 어느 여인의 손을 잡고 이제 앞으론 좋은 일만 있을 거라고 위로하고 있었고 마주 앉은 그녀는 눈물을 훔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가고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인사말로 건넸다.


“친구이신가 봐요?”

“아니에요. 오늘 첨 봤어요....... 사연이 하도 짠해서....”


음 사연으로 말하자면 그녀의 삶 역시 만만치 않다는 걸 안다. 게다가 날마다 변하는 동명동 안에서 언제 쫓겨날까 내가 더 노심초사하던 차였다.


아는 구청 공무원에게 “혹 쫓겨나면 구청에서 작은 공간이라도 마련해주면 안 되겠냐?” 말해둘 만큼 그녀의 분식집은 밥만큼이나 마음이 부른 곳이었다.


이천 오백원짜리 김밥 한 줄에도 묵은지부터 반찬 몇 가지를 정성으로 내고(모두 농사지어 만든 것) 오뎅은 모든 이에게 늘 서비스로 내어주었다. 심지어 포장할 때조차 반찬을 넉넉하게 넣어 주어 반찬 값도 안 되는 돈을 건네며 미안해지기도 했다. 내가 언뜻 들은 그녀의 삶은 녹녹치 않았으나 늘 웃고 있었고 누구에게나 따뜻했다.


광주의 지도가 바뀌고 있다. 거대한 타워크레인이 하늘을 찌르고, 이름만 대면 알만한 대형 복합쇼핑몰이 들어선다는 소식에 도시가 들썩인다. 누군가는 '이제야 광주도 광역시다워진다'며 환호하고, 누군가는 '슬세권'의 등장을 반긴다.


자본의 논리는 명쾌하다. 편리함은 곧 진보이고, 소비의 집적은 도시의 경쟁력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 매끈한 유리 건물의 설계도 위에서 자꾸만 발이 걸린다. 에스컬레이터가 수천 명의 사람을 일사불란하게 위아래로 실어 나를 때, 그 속도에 올라타지 못한 채 길 건너 골목 끝에서 서성이는 저런 낡은 간판들 때문이다.


광주엔 수많은 노포가 있었다. ‘있었다’라고 말하는 건 이제 과거형이라는 이야기다. 구석구석 박힌 나의 단골집, 뒷골목 그리고 낡은 테이블이 기억하는 것들


"워매! 얼굴이 반쪽이 됐네." 당시 식당 아주머니의 눈엔 40키로 말라깽이 나는 늘 배불리 먹여야 하는 존재였다. 그리곤 내 국엔 건더기가 뭉텅이로 들어왔다.


그 VIP 서비스를 받고 난 그날엔 내 마음의 허기가 사라졌다. 하지만 이제 이 '덤'의 인문학은 철거될 것이다. 쇼핑몰이 들어서면, 우리는 키오스크 앞에 줄을 서고 진동벨이 울리기를 기다릴 것이다. 쾌적한 에어컨 바람 아래 매뉴얼대로 담긴 정갈한 쟁반을 받겠지만, 거기엔 "많이 묵어"라는 다정한 참견이 들어갈 틈이 없다. 0과 1로 계산된 자본의 논리 안에서 '덤'은 곧 '손해'이기 때문이다.


쇼핑몰의 화려한 에스컬레이터는 우리를 빠르게 수직상승 시켜줄 것이다. 하지만 우리와 우리 사이의 '마음의 층계'까지 연결해줄 수 있을까? 공간은 쾌적하고 화려하겠지만 우리가 수십 년간 쌓아온 '골목의 서사'를 잃어가는 것은 괜찮은 것일까.


< 시부야 노베이 요코초 거리 사진: naver blog 감귤 키우는 남자 >


도쿄 시부야의 '미야시타 파크'는 낡은 공원을 재개발하며 1층에 '시부야 요코초'라는 거리를 만들어 옛 노포들을 입점시켰다. 포르투갈 리스본의 '타임아웃 마켓' 역시 100년 된 시장의 노포들을 도시의 핵심 콘텐츠로 큐레이팅해 세계적인 핫플레이스가 됐다. '새집'을 지어주되, 그 안에 살던 '사람과 맛'을 고스란히 이사시킨 셈이다.


그 외에도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산타 카테리나 시장은 '역사의 적층'을 선택한다. 공사 중에 발견된 고대 로마의 유적을 파괴하는 대신 시장 지하에 고스란히 보존하며 그 위에 현대적인 지붕을 올린 것이다. 인근의 노년층이 수십 년간 이용해 온 '골목 시장'의 기능을 유지하는, 새집을 짓되 그곳을 지켜온 사람들의 시간을 배려하며 상생한다.


런던의 하늘을 찌르는 초현대적 랜드마크 '더 샤드(The Shard)' 빌딩 바로 아래에는 1,000년의 세월을 견딘 버러 마켓이 있다. 이곳은 화려한 유리 건물 옆에서도 낡은 철골 구조를 훈장처럼 달고 상인이 직접 재배한 식재료를 설명하며 말을 건네는 '다정한 참견'을 브랜드로 삼았다. '덤의 인문학'이 사라지지 않을 때 도시가 얼마나 매력적으로 변하는지 보여주는 세계적인 핫플레이스이다.


또한 수백 년 된 '교토의 부엌' 니시키 시장은 현대적인 아케이드 아래에서도 가업을 잇는 장인들의 가게를 철저히 보호하며 '기억의 두께'를 쌓아가고 있다. 대형 자본이 들어올 때 기존 노포들의 조망권과 영업권을 보장하여, 새것을 위해 헌것의 숨통을 끊는 대신 오직 그곳에만 있는 시간의 흔적을 품어내어 도시의 경쟁력을 살렸다. 


광주의 진짜 경쟁력은 '오직 광주에만 있는 시간의 흔적'을 쇼핑몰이 어떻게 품어내느냐에 달려 있다. 쇼핑몰 한 귀퉁이에 형식적인 '상생 구역'을 만드는 시혜적인 태도 정도로는 안 된다. 예를 들자면 광주의 보리밥이 양동시장의 홍어집이 '광주의 자부심'으로 대접받아야 한다.


진정한 도시의 품격은 건물의 높이가 아니라, 그 도시가 품고 있는 '기억의 두께'에서 나온다. 새것이 들어오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그러나 새것을 위해 헌것의 숨통을 끊는 방식은 잔인하다.


이번 유감은 단순한 향수가 아니다. 자본의 속도가 인간의 온기를 앞질러 갈 때, 우리가 잃어버릴 '광주다움'에 대한 뼈아픈 경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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