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_03 김피디의 불펀한 생각] 옛 도청 임시 개관, 아쉬움 남는 전시 콘텐츠
영화 세트장처럼 박제된 80년 5월
옛 전남도청이 오랜 산고 끝에 임시 개관했다. 기대와 우려를 안고 찾은 현장에는 호기심 어린 청년들이 적지 않았다. 반가운 일이지만, 관람객의 체류 시간은 짧았다. 대다수 전시가 평면적인 패널과 인터뷰 영상 위주로 구성된 탓이다.
< 안병하 전남도경국장 집무실 >
복원된 도청은 80년 5월의 흔적보다 말끔히 정돈된 영화 세트장 같은 인상을 줬다. 5·18민주화운동기록관이나 전일빌딩245 등 기존 전시 공간과 뚜렷이 차별화되는 지점도 찾기 어려웠다. 당시를 증언하는 채록 영상은 풍부하지만, 관람객이 끝까지 시청하기에는 몰입도가 떨어졌다.
장소성을 잃어버린 고뇌와 격론의 현장
가장 큰 문제는 장소의 고유성을 살릴 구체적인 물증과 서사의 부재다. 안병하 치안감 다큐멘터리를 제작했던 입장에서 옛 전남 경찰국 공간의 부실함은 특히 뼈아프다.
당시 경찰국은 신군부의 발포 명령을 거부하고 시민을 보호했던 고뇌와 격론의 현장이다. 그러나 현재 집무실에는 명패와 급조한 책상, 상황일지와 비망록 몇 장이 전부다.
< 덩그라니 명패와 책상만 놓여 있다 >
시위 당시 경찰이 착용했던 복장이나 계엄군에 끌려온 시민들을 몰래 풀어줬던 곳, 시위대 버스에 숨진 경찰 추모 공간 등 사료적 가치가 큰 장소는 배제되었다.
무엇보다 당시 경찰이 상부의 명령을 거부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즉 시민들이 폭도가 아니며 항쟁이 계엄군의 과잉 진압에서 촉발되었음을 증명하는 핵심 기록과 증언이 빠져 있다.
안병하 치안감 유가족 측이 제기한 담당 부서와의 마찰을 고려하면, 이 같은 공간의 부실함은 예견된 결과일지 모른다.
영웅화 경계라는 핑계, 지워진 항쟁의 흔적
윤상원 열사의 발자취 역시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최후 항쟁 전후 구체적인 행적을 공간에 따라 스토리텔링 했을 것으로 기대했으나, 단순한 AI 재현이나 암실 인터뷰 증언으로 대체한 발상은 궁색하다.
< 윤상원 열사의 기자회견을 재현한 영상 >
특정 인물의 영웅화를 막기 위함이라는 해명이 있었지만, 핵심 인물을 중심으로 항쟁 지도부의 움직임을 조명하는 일은 영웅화가 아니라 공간의 역사성을 온전하게 복원하기 위한 필수 전제다.
지역 아카이브와의 단절, 공허한 음악감상실
지역 사회 및 기존 아카이브와의 단절도 유감이다. 수십 년간 광주 지역 언론이 축적한 5·18 관련 다큐멘터리만 제대로 활용했어도 전시의 깊이는 달라졌을 것이다.
도청을 무대로 활약한 외신 기자들의 행적, 항쟁 최후의 날 그리고 열사들 개개인의 이야기를 다룬 귀중한 영상 자료가 산재해 있는데도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그 밖에도 애니메이션, 무용, 미술 등 이 공간을 빛낼 콘텐츠는 각양각색이다.
< 음악 감상실 >
뜬금없이 조성된 음악감상실은 지역과의 단절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사례다. 유명 가수 조용필, 안치환의 음반은 있으나, 정작 78~80년 광주 지역에서 창작되어 전국으로 확산된 '전일방송 대학가요제' 입상 곡들은 찾을 수 없었다.
'임을 위한 행진곡', '검은 리본 달았지', '바윗돌' 등 5·18과 직접 맞닿아 있는 음악도 마찬가지였다. 광주의 기억을 오롯이 담아내지 못하는 음악감상실이 옛 도청에 존재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
487억 투입된 광주의 관문, 전면적 보완 시급
마지막으로, 공간 간 연계가 부족해 전시 전체가 파편화되어 있다는 점도 아쉬웠다. 마치 동어 반복처럼 비슷한 형식(패널과 인터뷰)으로 구성돼 있다 보니까, 같은 공간을 또 온 것 같은 착각마저 들었다. 공간에 깃든 철학과 맥락을 살린 실감, 체험 콘텐츠로 구현됐더라면 어땠을까 싶다.
< 옛도청 전시공간 >
냉정하게 평가해, 현재 전시 수준은 인접한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전시와 비교해 격차를 보인다. 하지만 예산을 살펴보면, 전시 콘텐츠에만 약 98억 원(총사업비 487억 원)이 투입된 옛 전남도청이자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의 관문이다.
콘텐츠와 관리 체계를 이대로 방치한다면, 오랜 산고 끝에 이뤄낸 도청 복원의 역사적 의미는 희석될 수밖에 없다. 정식 개관 전까지 파행을 막기 위한 전면적이고 조속한 보완이 시급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