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달’ 아래에서 왜 ‘로또’가 생각날까?
개기월식보다 더 눈길을 뜬 댓글창
지난 정월 대보름 밤, 하늘에는 붉은 달이 떠올랐습니다. 36년 만에 개기월식이 겹친다는 소식에 세상이 잠시 들썩였지요.
단톡방마다 ‘붉은 달’ 사진이 올라왔고, 누군가는 “지금 하늘 봐!”라며 친구들을 불러냈습니다.
저도 괜히 마음이 동해 유튜브를 켰습니다. 천안의 한 과학관이 중계하는 달의 모습이 화면에 펼쳐졌습니다.
붉게 물든 달의 실시간 변하는 모습은 마치 오래된 신화 속 장면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제 시선을 붙잡은 건 달이 아니라 옆에 올라온 실시간 댓글창이었습니다.
그곳은 이상하게도 과학관의 채팅창이라기보다, 어디선가 본 듯한 ‘성황당 앞 기도문’ 같았습니다.
“로또 당첨되게 해주세요.”
“이번 면접 꼭 붙게 해주세요.”
“우리 가족 건강하게 해주세요.”
“좋은 사람 만나게 해주세요.”
수많은 댓글의 이어짐이 달빛을 향해 흘러갔습니다. 사람들은 우주쇼로 펼쳐지는 달을 감탄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대신, 어느새 자신의 간절한 마음을 댓글창에 올려놓고 있었습니다.
관악산으로 향하는 발걸음
생각해 보면 이런 장면은 낯설지 않습니다. 요즘 관악산을 오르는 MZ세대 등산객이 부쩍 늘었다고 합니다. 그 이유가 조금 재미있습니다.
어느 예능 프로그램에 나온 관상가가 “운이 안 풀릴 때는 관악산 기운이 좋다”고 한마디 했다는 것이지요. 그 말 한마디가 SNS를 타고 퍼졌고, 검색 지수는 방송 직후 최고치까지 치솟았다고 합니다.
물론 산을 오르는 일은 건강에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산에 오르기 시작한 이유가 단순한 운동이 아니라 “혹시나 운이 바뀔까 해서”라는 점은 묘하게 마음에 남습니다.
운과 복을 바라는 모습은 홍대 거리에서도 넘쳐납니다. 타로 점집 간판이 줄지어 있고, 그 옆에는 ‘방송 출연’ 이력이 붙어 있습니다. 이제는 너무 자연스러운 풍경이 되었습니다.
예능 속으로 들어온 무속
평생 방송국에서 뉴스와 프로그램을 만들며 살아온 저에게는 이 변화가 참 낯설게 느껴집니다.
예전에는 무속인을 방송에서 다룬다는 것 자체가 꽤 조심스러운 일이었습니다. 다큐멘터리 속 전통문화 정도로만 등장하던 존재였지요. 그런데 지금은 다릅니다.
유명 연예인이 무속인에게 평생 운을 묻고, 무속인이 예능 프로그램의 주인공이 되기도 합니다. 예전에는 은퇴한 연예인의 신내림 이야기가 ‘인간극장’의 눈물겨운 사연처럼 들렸다면, 지금은 무속이 하나의 문화 콘텐츠처럼 소비되고 있습니다.
종교의 빈자리, 새로운 방식의 위안
왜 이런 변화가 생겼을까요. 어쩌면 그 답은 의외로 단순합니다. 사람들이 예전만큼 종교를 찾지 않게 되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미국 갤럽 조사에 따르면 정기적으로 예배에 참석하는 기독교인이 20년 사이 크게 줄었습니다. 한국 종교에서도 ‘신도 절벽’이라는 말이 낯설지 않습니다.
대신 사람들은 새로운 방식으로 마음의 의지처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유튜브에서 경전을 공부하고, 사찰 예능 프로그램을 보며 위안을 얻습니다. 실제 조사에서도 개신교 청년 45% 이상이 점이나 타로를 본 적이 있다고 합니다. 종교의 경계가 점점 흐려지고 있는 것이지요.
인간은 원래 기도하는 존재다
그렇다고 이것을 단순히 ‘미신의 부활’이라고만 말할 수는 없습니다. 수천 년 전에도 사람들은 천둥의 신 토르의 망치 앞에서 떨었고, 삼신할매에게 아이를 빌었습니다.
인간에게는 원래부터 어딘가에 기대고 싶어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분석심리학자 카를 융은 그것을 집단 무의식이라고 불렀습니다. 다만 요즘 젊은 세대의 방식은 조금 다릅니다.
그들은 무속을 절대적인 믿음으로 받아들이기보다, 일종의 마음 관리법처럼 사용합니다. 타로를 보고, 사주를 듣고, SNS에 인증 사진을 올립니다. 심각한 종교 행위라기보다 가볍게 체험하는 문화에 가깝습니다.
그래서인지 요즘 한국을 찾는 외국 MZ 관광객들에게도 새로운 ‘한국 체험’이 생겼습니다. 바로 사주와 무속 상담입니다. 이른바 ‘K-샤먼’ 체험이 관광 상품이 된 셈입니다.
외국인들은 이것을 단순한 운세로 보지 않고 한국인의 정신 문화를 경험하는 라이프스타일 체험으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합니다. 사주카페 앞에 “영어 상담 가능”이라는 팻말이 붙은 것도 그런 이유일 것입니다.
스마트폰 위의 새로운 성황당
인공지능이 세상을 바꾸는 시대입니다. 우리는 이전 어느 시대보다 과학적으로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과학은 내일의 불안까지 해결해 주지는 못합니다.
그래서일까요? 누군가 “관악산 한번 올라가 봐”라고 말해 줄 때, 그 한마디가 때로는 통계보다 더 큰 위안이 되기도 합니다.
어쩌면 TV 속 무속인의 등장은 미디어의 타락이 아니라, 길을 잃은 대중의 마음을 비추는 거울일지도 모릅니다.
붉은 달이 떠 있던 그 밤을 떠올립니다. 사람들은 유튜브 댓글창에 작은 소원을 남겼습니다.
누군가는 사랑을, 누군가는 건강을, 누군가는 삶의 작은 행운을 빌었습니다. 수천 년 전, 성황당 앞 정한수 그릇에 손을 모으고 기도하던 사람들도 아마 같은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다만 달라진 것이 있다면 단 하나입니다. 그 간절한 기도가 이제는 돌무더기 앞이 아니라 스마트폰 화면 위 ‘댓글’과 ‘좋아요’로 흐르고 있을 뿐인지도 모릅니다.
20~30년 뒤에는 또 어떤 기도의 모습으로 변할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