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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플광24』


아득하고 긴 터널속을 하염없이 걷는 꿈을 꾼 것 같다.

이당금| |댓글 1 | 조회수 69

밤새 울어대던 당나귀의 비명 소리에 깊은 산속 골짜기에서 밤새 뒤척였다. 개기월식 붉은 달의 영기가 당나귀 뇌 속에 침투해 뇌파를 혼란스럽게 하는 것인지 당나귀의 울부짖는 소리는 안쓰러움 넘어 처절에 가까웠다. 붉은 달의 영기속에서 적막을 찢어놓는 듯한 고음 사이사이를 비집는 단발마같은 비명소리는 일점의 빛도 없는 칠흑같은 어둠 속에서 메아리로 다시 돌아온다.


이러다가 숲속 골짜기 모든 영물이 다 나올 것만 같다. 무엇이 그렇게 당나귀를 뒤흔든 건지 알 수 없다. 마치 성난 숫당나귀 불알이라도 잡아 비틀며 절대 놓치지 않겠다는 그 무엇으로 미칠 듯이 날뛰며 온몸을 뒤흔든다. 마치 격렬한 춤을 추는 듯하다.


당나귀의 소란이 내 정령에라도 옮겨붙었나? 곤두서는 소름에 잠은 이미 저 멀리 달아나고 몸이 들썩인다. 꿈을 떨쳐버리듯이.


사막 한가운데, 음악이 울려 퍼지는 파티가 열린다  / 영화 시라트 >


살다 보면, 예상치 않게 다른 길로 밀려날 때가 있다.

밀려난다는 말은 의지와 상관없는 수동의 상태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것은 밀려난 것이 아니라 다른 길로 밀려간 것인지도 모른다.


수술과 병원 생활, 요양 치료를 하며 수동적이던 어느 하루, 사막, 레이브 음악, 춤, 삶, 죽음, 자연이라는 단어가 강렬한 영화 ‘시라트’를 관람했다. 영화는 광활한 사막 한가운데에서 레이브 파티를 하는 무리들 사이에서 루이스는 어린 아들과 함께 몇 달전 실종된 딸을 찾는다는 줄거리가 전부다.


‘천국과 지옥을 잇는 다리, 그 길은 머리카락보다 가늘과 칼날보다 날카롭다’

생애 주기 중반 시점에서 삶과 죽음을 잇는 순간에 서 있는 내게 모든 것이 감각으로 파고든다.


메마르고 거친 사막 한가운데 절벽을 등지고 낡고 허름한 초대형 스피커들이 설치되고 흘러나오는 오프닝은 압도적이다. 볼륨을 최대한 높여 스피커를 둥둥거리는 비트는 마치 당나귀의 찢어지는 듯한 비명과도 같다. 그 비명을 배경으로 트랜스에 빠져 무아지경으로 춤을 추는 사람들, 사막 파티가 끝나면 또 다른 사막으로 이동하면서 음악을 따라 움직이는 사람들의 현실보다 음악에 몸을 맡기고 춤에서 이데아를 꿈꾸는 사람들... 


그 무리 속에서 춤을 추고 싶은 내 몸이 객석에서 리듬을 타고 있다....그 사이를 비집는 루이스와 아들은 그들의 모습이 낯설고 생경하기만 하다. 찢어질 듯한 터질듯한 이게 음악이라고?


“이 음악은 듣기 위한 것이 아니라 춤을 추기 위한 것이야”

오쇼 명상센터에서 춤 명상을 하던 중 무아지경에 빠져 춤을 춘 적이 있다. 그 끝에는 울음이었다. 솟구쳐오르는 거대한 파도처럼 벅차오른 큰 기쁨으로 엉엉 울었었다.


연극은 나의 삶이자 정체성이었다.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방황하던 나의 정체성을 깨닫게 해준 무대에 내 모든 에너지를 다 쏟아부었다. 그 과정에 결혼과 출산을 하면서 예상치 못한 현실을 마주할 때면 현실에 질끈 눈을 감고 이상의 세계로 도피하는 방식으로 열정을 불태웠다.


부족한 것은 무대 위에서 열정을 다하며 질퍽한 땀과 피눈물을 삼키면서 나를 위한 카타르시스로 배우라는 포지션으로 자리매김에 여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쩐지 마음은 체한 듯 답답했다. 스스로 잠식당하고 당하면서도 무대 위의 나를 생각하면 아련히 느껴지는 까르마가 나를 토닥였다.  그렇게 잘 헤쳐 나가는 듯했다. 그럴때면 춤을 추었다. 나이트클럽에서 미친 듯이...!


레이브 파티가 진행되던 중, 군인들이 몰려와 이곳을 대피하라고 한다. 하지만 다른 레이브에 갈 예정이었던 레이브 일행은 군인으로부터 달아나 다른 길로 빠져나온다. 자신의 눈앞에 길게 늘어뜨린 길에 놓여있던 루이스는 어쩔 줄 몰라 하는데 어린 아들은 저들을 놓치면 누나를 찾을 수 없다며 이 길에서 벗어나자고 한다. 아버지는 길에 늘어선 길을 따라갈 것이냐 길에서 벗어나 그들을 따라갈 것이냐는 갈등에서 이윽고 길을 벗어나 군인의 추격을 따돌리고 레이브 일행을 따라나선다. 가지 않는 길, 위험한 길에 애써 외면한 보편의 사람들과는 다른 길을 선택한 그들의 삶이 딸을 찾을수 있다는 희망이기도 하지만 어쩌면 절망의 끝으로 몰아세우고 있는 고난의 시작이었음을 알고는 있었을까?


1993년부터 시작한 삶과 연극의 동일체로 살아간지 10년인 2004년 

난 홀연히 인도로 도피하여야 했다. 자살. 죽을까? 죽으면 어떨까? 라는 마음이 난생 처음 느껴져 두려웠다. 무서웠다. 어떻게든 비켜나고 싶었다. 어떻게든 마주치고 싶지 않았다. 어떻게든 회피하고 싶었다. 그때 나는 왜? 보다 어떻게? 라는 행동이 먼저였다. 그 이유가 어떻든 간에 죽고 싶지 않았다.


여름날 한낮의 태양만큼이나 뜨거운 열기만큼이나 불타는 열정이 나를 지배할 때였는지 말이다. 이제 돌이켜 보면, 아마도 십대 시절 겪어야 할 사춘기를  그 시절에 경험한건 아닌가?


십대 시절엔 집안의 경제를 책임져야 할 착한 큰 딸이어야 했고 형제자매의 맏이 노릇을 해야 한 탓에 당연한 사춘기를 경험하지 못했었기에 뒤늦은 사춘기였겠구나!


2004년 7월, 35살, 배낭하나 둘러매고 태양이 작렬하는 인도로 도피했다. 

14박 16일 간의 길 없는 길에서 낯설고 생경한 나홀로 여행은 그나마 옥죄이던 숨통에 뜨거운 열기로 숨결을 불어넣었다. 그래 다시 시작하자! 


멈췄던 길에서 가던 길의 방향으로 직진을 선택했다.

사막의 길은 위험이 도사린 길이다. 레이브 일행의 차는 대형스피커를 싣고 노마드 생활을 하기에 적합한 사막용 차량을 개조하여 튼튼하여도 간혹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에 빠지기도 한다. 따라나선  아버지와 아들의 차는 현실의 승합차이기 때문에 사막을 횡단하기에는 어렵다며 레이브 일행은 그들을 외면하고 소외 시키려 하지만 마침내 그들과 함께 사막을 횡단하게 된다. 그때부터 영화는 거친 먼지를 일으키고 달리고 달리는 로드무비다. 


2013년 엄마의 죽음은 그동안 잠잠하던 나의 숨통을 또다시 옥죄었다. 

그럴수록 오직 연극에만 매달려야 했다. 그러다 결국엔 간혹 숨이 안 쉬어져 늦은 밤 응급실에 가기도 했었다. 견디고 참고 현실을 외면이 극에 달했던 2015년 섣달그믐, 안식년을 선택해야 했다. 시베리아 겨울만큼이나 냉랭해진 내 몸에 호흡기를 매달았다.


음악은 심장을 두드리는 트랜스 형식을 담고 있어 울퉁불퉁 달리는 사막 한가운데를 같이 질주하는 비트로 영화 속에 빠지고 마는데 마치 예고라도 하는 듯하다.


구덩이에 빠진 차를 건져내는 동안 홀로 이 세상에 있던 아들의 차가 절벽에 미끄러지면서 떨어지고 만다. 죽음의 현장까지 보여주지 않은 스크린은 아버지의 절규로 가득하다. 이제부터 영화는 죽음에 가까워진다.


“핸드브레이크!” 

아들이 죽기 전 내가 절벽에서 떨어지는 아들에게 한 말이 겨우 핸드브레이크를 붙들어라. 사막의 여정을 함께 한 일행은 아버지를 위로하고 자신의 죽음을 막아달라는 듯이  사막 한가운데 스피커를 설치하고 음악을 틀고 무아지경 춤을 춘다.


음악에 몸을 맡기고 서서히 몸을 움직이던 아버지 또한 춤 속으로 무아지경이 된다. 하지만 그곳은  전쟁을 대비한 사막 곳곳에 설치된 지뢰가 파묻혀 있다. 어느누구도 죽음을 예상할 수가 없는 무방비 상태다.


“날려버려”

광할한 사막에 지뢰가 묻혀있는 줄 몰랐던 것은 마치 우리들의 삶의 앞길이 어떠한 방향으로 어떠한 길로 나아가야 하는지 모른 것과 같다. 현실을 벗어나며 사막 생활을 했던 레이브 일행 등은 춤을 통해 구원을 받고 죽음의 공포를 날려버리겠다는 듯하다.


황망한 죽음 속에서도 음악으로 구원받고자 했던 이들은 정작 자신을 지뢰밭으로 날려버렸다. 그 순간 너무 황망했다. 삶과 죽음이라는 것은 어디에 있었던가? 늘 우리와 동일체였지 않은가!


어느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는 죽음은 삶에서 당당하게 걷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메시지를 던져준 영화 시라트를 보면서 그동안 경험했던 것과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다. 이렇게 살아가는 구나!


‘그냥 아무생각없이 걸었어’

20년전, 지글거리는 낯선 올드델리 시장통에서 흘렸던 눈물,

15년전, 인도 오쇼명상센터에서 느꼈던 삶의 환희로 펑펑 울던 순간, 

10년전, 카미노 산티아고길에서 벅차오르던 감정이 눈물로 터져 나오던 순간 순간이 시라트의 음악속에서 내 세포들이 꿈틀거린다. 

작년, 뇌종양 진단을 받고 애써 담담하려 했던 순간들을 지나오면서 또 한번 뜨거운 눈물을 주루룩 흐른다.


연극은 나의 생애와 함께 하는 삶의 동반자로 의심치 않았다. 그 의심은 나의 깊은 우울을 숨기게 하였다. 

1993년, 2004년, 2016년, 2026년. 여름 매미가 변태하듯 10년 주기로 가던 길에서 잠시 멈추었다. 그 멈춘 길에서 그대로 나아갈 것인지, 뒤돌아 갈 것인지, 다른 방향으로 갈 것인지 선택의 기로는 온전히 나에게 달려있었다.


삶은 거창하지도 죽음은 우울하지도 않다. 생의 동반자로 희노애락 생노병사를 감각하고 감동한다. 나는 오늘도 그 길 위를 걷는다. 심장이 둥둥거리는 비트위에 손을 대고 머리를 흔들며!.



1 댓글
03.10 14:59  
ㅠ ㅠ
머언가 울컥 가슴이 짜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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