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재준의 책읽기] 논형(論衡), 있는 그대로를 논하다

왕충 지음, 성기옥 옮김, 동아일보사
있는 그대로를 논하다
우리 사회는 법조 비리로 늘 시끄럽다. 이는 전관예우 문제에서 시작되었다. 이로 인해 법의 존립 근거라고 할 수 있는 판결에 따른 범죄 유무와 형량에 대한 신뢰성마저 흔들리게 됐다.
여전히 권력과 돈이 있으면 해결이 가능하다는 무전유죄, 유전무죄의 어두운 그림자가 가득하다. 또한 언론은 법조계의 고질적 폐단이라고 할 수 있는 전관예우의 문제점보다는 사건 관련자들의 개인 사생활 등 흥미 위주로 사안을 보도하고 있다. 결국 본질은 사라지고 말초적이고 파편적인 가십만 남았다.
후한 광무제 때 태어난 저자 ‘왕충’은 사실에 근거하여 시비와 논리를 펼친 철학가이자 논설가였다. 책 제목 ‘논형’은 ‘평론의 저울’이라는 뜻이다. ‘왕충’은 이 책을 쓴 이유를 “논설은 내용의 정확함이 가장 중요하다. 사실을 기술할 때는 실제와 부합해야지 다른 사람의 견해에 쉽게 영합해서는 안 된다.
논설은 시비를 변별하기에 사람들의 마음과 귀를 거슬리기 마련이다. 사람들의 의견이 잘못된 것을 무조건 따를 수 없기 때문에 그러한 거짓을 축출하고 진실을 규명하기 위해서”라고 밝히고 있다.
전체 85편으로 구성된 이 책은 잘못된 논거나 과장된 사실에 대한 반론을 담고 있다. 즉 보편적 사실에 근거한 논리를 설파하고 있다. 예컨대 그는 맹자의 성선설을 부정한다.
인간의 본성은 착한 부분도 있고 악한 부분도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부모는 자식의 본성을 꾸준히 살펴야 한다. 선하면 격려하고 이끌어주며, 악행을 저지르지 않도록 힘써야 한다. 본성이 악하면 예방 조치를 취해 선하게 변화시켜야 한다. 선한 본성이 악에 물들거나 악한 본성이 선하게 변하는 일은 원래의 본성과 품행으로 변하는 일과 같다. 감정과 본성은 예의로써 흐트러짐을 예방하고 음악으로 다스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이름이 높다고 해서 비판 없이 수용하는 것을 경계한다. 사람들은 옛 성현의 말과 글은 모두 잘못이 없다고 생각하여 힘써 익히기만 할 뿐 비난하거나 의문을 품지 않는다.
이해할 수 없다면 마땅히 논쟁해서 그 뜻을 깨달아야 한다. 또한 성현이 전한 내용은 모두 옳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특히 정확한 사실이 담긴 일반 서적과 엉터리 경서의 내용이 일치하지 않으면, 오히려 일반 서적이 믿을 수 없는 내용을 담고 있다고 비판한다. 하지만 이치에 어긋난 괴이한 내용은 대부분 틀림없는 거짓말이다.
‘왕충’은 하늘의 뜻이나 요행은 단순히 우연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사람들은 하늘로부터 복을 받는 까닭이 선행의 결과이며, 재앙을 당하는 까닭도 악행의 결과라고 여긴다. 보이지 않는 악행과 잘못에 대해서도 하늘이 벌을 내린다고 하지만 하늘은 복과 벌을 내릴 수 없다.
귀신이나 실체 없는 것을 믿는 것도 잘못된 생각이다. 죽은 사람은 귀신이 될 수 없고, 지각도 없으며, 다른 사람을 해칠 수도 없다. 천지간의 귀신은 죽은 사람의 정신이 변한 모습이 아니다. 산 사람의 사념이 지나쳐 만들어낸 허상이다. 귀신을 부르는 원인은 질병이다. 사람은 병이 들면 근심하고 두려워하며, 근심하고 두려워하면 귀신이 출현하는 것이다.
‘왕충’은 허황된 논거들이 진실인 양 둔갑하는 이유는 사람들이 사실을 부풀리거나 과장해서 표현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칭찬할 때는 지나치게 과장하고, 악행에 대한 폄하는 실제의 죄보다 지나치게 포장한다. 즉 하나를 들으면 열이라 하고, 백을 보면 천이라고 과장한 결과이다.
우리 사회에 정론직필이 아득하기만 하다. 언론이 어떠한 권력이나 압력에 굴하지 않고 올바른 글을 써야 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핵심과 논점을 벗어난 글을 양산하고 갈등을 조장한다. 상식과 기본이 통하는 사회가 되기 위해서 논쟁은 언제나 옳고, 그름이 분명해야 한다. 또한 사실을 사실대로 표현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