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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에게 쓰는 레시피] 고등어 무조림

곽복임| |댓글 1 | 조회수 104

고등어 무조림 Ⓒ뽀기미


 



〈딸에게 쓰는 레시피〉는 엄마가 계절의 재료와 사회의 온도를 살펴 딸에게 응원 한 그릇 내놓는 엄마카세다.


ep2. 고등어 무조림


#먹수저, 꽃수저 타고난 딸에게


사람들은 너를 보면 종종 이렇게 말하지. “먹수저 물고 태어났네. 꽃수저네!” 그 말이 아주 틀린 건 아니야. 너는 분명 잘 먹고 자랐고, 사랑을 많이 받았고, 예쁜 기억이 많은 아이거든.


하지만 나는 알아. 그 말들이 얼마나 쉽게, 너의 시간을 생략해 버리는지……


먹수저는 어느 날 갑자기 쥐어지는 게 아니야. 같이 앉아 먹은 밥의 횟수로 만들어지고, 가만히 피는 게 아니라 서로의 얼굴을 보며 웃은 시간 위에 꽃수저가 피어나지. 너는 맛을 아는 사람이야. 비싼 음식이 아니라 누가 차렸는지를 먼저 보는 아이였고, 배가 고플 때보다 마음이 허기질 때 더 잘 먹는 아이였어. 그래서 나는 네가 요리를 잘하는 게 전혀 놀랍지 않아. 그건 재능이라기보다 기억의 총량에 가까우니까.


앞으로 너는 엄마와 함께한 ‘집’이 아니라 ‘사회’라는 또 다른 식탁에 앉게 되겠지? 어떤 날은 차려진 게 없는 자리일 수도 있고, 어떤 날은 네 몫이 아닌 접시가 앞에 놓일 수도 있겠다. 그럴 때 너는 스스로를 의심하지 않아도 돼. 수저의 문제가 아니라 자리가 잘못된 경우가 생각보다 많으니까. 그리고 가끔은 사람들이 네 앞에 꽃을 요구할지도 몰라. 늘 웃고, 늘 부드럽고, 늘 예쁘게 반응하라고. 그럴 땐 한 번쯤 젓가락을 내려놓아도 괜찮아. 먹지 않아도 되는 자리는 먹지 않아도 돼.


혹자는 수저가 인생을 결정한다고 해. 엄마는 다르게 말하고 싶어. 누구와 얼마나 오래 같이 먹었는지가 사람을 만든다고. 가장 가까운 곁에서, 가장 오랜 시간 내가 보아온 너는 그 시간을 충분히 통과해 왔다고 말할 수 있어. 먹수저도, 꽃수저도 네 것이 맞다. 다만 그걸 증명하려 애쓰지 마. 필요하면 네가 직접 밥을 차릴 줄 아는 사람이라는 것, 그것만 기억하면 돼.


#고등어의 속살을 보고 웃을 줄 아는 아이


아직 파우더 향 가득하던 어린 날의 너는 고등어의 흰 속살을 보면서 웃을 줄 아는 아이였어. 그런 아이가 이제 며칠 후면 대학 진학을 위해 집을 떠나 다른 지역에서 홀로 생활하게 되겠지. 여행이 아니라 긴 시간 처음으로 집을 떠나는 너를 위해 어떤 음식으로 응원해 줄지 고민하다 ‘고등어 무조림’을 선택했어.


고등어는 기름이 많아. 잘 다루지 않으면 금방 타고, 불을 잘못 맞추면 비린내가 올라와. 그래서 조림은 생각보다 섬세한 음식이야. 센불과 약한 불을 번갈아 쓰고, 바로 뒤적이지 않고, 국물이 스며들 시간을 기다려야 해. 나는 네가 그 시간을 지나도 괜찮을 거라고 믿어.


대학은 새로운 식탁이야. 아무도 네 취향을 묻지 않고, 네가 잘 먹는 음식이 무엇인지 모르는 자리. 때로는 네가 설명해야 하고, 때로는 네가 참아야 하고, 때로는 네가 직접 불을 켜야 하는 자리. 그래서 고등어 무조림이 떠올랐어.


2월의 고등어 무조림에는 가을 저장 무도 좋고 겨울 하우스 무도 좋아. 달큼하고 은근한 맛이 있을 때거든. 무를 먼저 냄비에 깔아. 가장 아래에서 오래 익는 건 무야. 무는 눈에 띄지 않지만, 국물 맛을 만들어. 네 생활의 바닥도 그럴 거야. 규칙적인 생활, 약속을 지키는 태도, 스스로 밥을 챙기는 힘. 그게 네 무야. 남들이 보지 않아도 가장 중요한 부분.


그 위에 먹기 좋게 손질한 고등어를 올린다. 기름진 속살은 네 재능과 닮았어. 네 감각, 네 표현력, 네 웃음. 그건 분명한 너의 힘이야. 하지만 힘은 조절할 줄 알아야 오래 간다. 모든 자리에서 네 기름을 다 쓰지 마. 오롯이 나를 위해 쉴 힘을 남겨두는 것도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이야.


엄마는 어떤 요리를 하든 늘 같은 양념을 쓰지 않아. 계절이 다르면 재료도 다르고, 맛도 달라지니까. 주변의 변화를 알아차리는 감각은 음식 맛도 살리고, 네가 공부하려는 법의 세계에서도 분명 도움이 될 거라 믿어.


재료 위에 양념을 얹고 육수를 부어 줘. 바로 뒤섞지 말고. 맛있는 향이 냄비를 뚫고 나오면서 끓기 시작하면 불을 낮추고, 국물이 반쯤 줄어들 때까지 기다려. 기다림은 방치가 아니라 살핌이야. 한 번씩 국물을 끼얹고, 타지 않도록 들춰보며, 넘치지 않게 조절하는 시간이지. 그 시간에 고등어도, 무도, 그 곁의 재료들도 각자의 맛을 흘려보내며 천천히 섞인다. 조림은 그렇게 시간을 견뎌 새로운 맛이 되는 음식이야. 네가 낯선 도시에서 적응하는 시간도 그럴 거야.


엄마는 네가 잘 해낼 거라는 막연한 믿음 대신, 네가 이미 충분히 익어왔다는 확신이 있어. 고등어의 속살을 보고 웃을 줄 알던 아이는 낯선 식탁에서도 자기 몫을 알아보는 사람이 될 거라 믿어.


그리고 하나만 기억해. 배고플 때는 집으로 와. 너를 위한 조림은 언제든 준비돼 있어. 알지? 엄마는 네 편이라는 거.




고등어 무조림 조리과정 Ⓒ뽀기미


1 댓글
공지 02.25 12:20  
감동적인 무조림입니다. 한 입에 눈물 날 것 같은.. . .아~ 무조림에도 인생이 스며있다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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