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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수의 광주 최초를 찾아라] 전남·광주 최초 성냥공장

김경수| |댓글 1 | 조회수 486


불씨! 반세기 전, 설 선물 당성냥과 다방 사은품 휴대용성냥이 유행이었다. 인류 직립보행 시절, 불사용 흔적이 나왔다. 나무 마찰 또는 황철석·부싯돌 타격이다.


서양책 성냥기원은 고대 그리스인과 로마시대로 소환이다. 최초 화학성냥은 1680년 프랑스 로베르 보일이 만들어냈다. 마찰성냥은 1826년 영국인 약제사 워커가 발명, 1830년 상품화됐다. 안전성냥고안은 1846년 스웨덴 룬드스트룀이란다.


성냥어원은 석유황(石硫黃), 영·일어는 Match·도깨비불(燐寸マッチ)이다. 1914년 매일신보 인촌(석냥) 기사를 본다. 아버지가 아이에게 불을 안 켜느냐/아이는 성냥이 없는 걸요/아버지는 불 켜고 보면 곧 찾을 것이지.


한반도 최초 성냥공장은 1917년 인천부 금곡리 33-2번지 조선인촌주식회사다. 전남·광주최초 성냥공장은 1937년 5월 25일 목포인촌주식회사다. 1941년 발행 은행회사조합요록을 보니 목포부 용당리 1005-2번지에 자본금 15만원으로 선다. 대표 하나오카(花岡芳夫), 지배인 야마다(山田勇)이고, 1938년 2월 10만원을 증자한다.


토지이력서와 지도관찰에 공장은 현 목포시립도서관 서편이다. 부지는 목포부 북만동 184번지 차남진 소유 답 5,293평 중 1,838평이다. 1937년 7월 16일 일선인촌(日鮮燐寸)주식회사, 8월 18일 목포인촌주식회사, 1955년 11월 22일 대한민국 소속이 된다.


< 전남·광주성냥공장 각종기사와 문헌자료 >


광주최초 성냥공장 지상보도는 1940년 6월 8일 노다(野田)의 송엽인촌(松葉燐寸)회사 광주에 공장설치다. 광복 이후는 1948년 4월 7일 허가제에 이어 전남 성냥생산량은 74만5천750갑으로 수요량의 14%다. 9월 25일 광주성냥회사에서 전남성냥공업조합 창립총회결성, 30일 도내 8개 회사로 발족한다.


1949년 1월 5일 호남신문 광고란에 전라남도성냥공업조합(조합장金在順부조합장徐三早·金道洙상무이사崔洸鎬)과 광주성냥공업주식회사(社長김재순·상무金在明)가 있다. 충장로4가 7번지 한흥화학공업사제조 노루표성냥 판매점도 포착된다.


동년동일신문 4월 10일에 ‘난립한 성냥공장’기사가 눈에 든다. 무허가 시설 불충분, 화약 취급, 불이 날 염려 많으므로 전남도경 경제계가 광주부 내무 허가공장 단속이 골자다.


1954년 전화번호부에 사동(社洞) 5번지 공작(孔雀)화학공업 대표 추정국(秋正菊) 광고가 실려있다. 1955년 한국은행업체명부 종업원수는 공작성냥 68명, 월산동204번지 세광화학 66명, 지원동528번지 광덕성냥 12명, 목포 남교동107번지 한일성냥 139명, 대성동168번지 목포성냥 73명, 순천 삼산성냥 60명이다.


< 전남·광주성냥공장 제품사진과 위치도 >


1956·58·59년도 명감자료에 성냥생산업체로 광주 15개, 목포 5개, 순천 2개가 수록돼 있다. 지번·상호(대표)를 나열한다. 사동5공작(추정국),양동203·264·303삼화(최윤식·병남),188-3·182하운(전하운),계림동55-307대창(김재명),505동일(김재중),양림동168광덕(박성천),학동909·대인동274군경원호회援産공장(정해복), 임동149일신(진용범·강주), 누문동207강남(하기룡), 월산동23·253신광(허영욱·영석), 24세광(허계수), 25삼성(김순용·순동), 217·235태양(박종기·김용범), 318호남(최석암), 235서부(김용환), 목포 용당동 삼천리(이완영), 102-1목포산업(김형기), 대성동 목포(이재홍·장성기), 남교동 한일(박상출), 산정동310인창(박영우), 순천 동외동202매산(박홍구), 203삼산(손갑동)이다.


1966년판 광주시사에 광주 주요산업기관 11개 중 공작화학공업주식회사가 소개돼 있다. 요약한다. 1951년 사동 5번지 창설, 종업원수는 약 50명, 연간생산량은 124만포다. 1957년 운크라 원조로 새 제작기계 도입과 부속시설 확충, 오합성냥은 전국적으로 이름이 높으며, 병용·사각성냥 고안 우수품을 만들고 있다.


현 광주시립점자도서관 서편 새한빌라가 공작성냥 사동공장터다. 1910년대 향사리 206번지 대지 120평은 1929년 광주면, 1931년 이씨, 1954년 여수 김씨를 거쳐 4월 추정국이 임자다. 6-2번지 46.2평과 6-3번지 15.1평도 추씨 땅으로 된다.


1960년대 말, 지금 지원2동사무소 지나 광주천변으로 옮긴다. 용산동 262번지는 1915년 답 1,429평으로 효천면 양림리 185(128)번지 정락교터다. 262-4번지 답 945평은 1945년 양림정 128번지 정태영, 1961년 256번지 양씨, 1968년 10월 17일 추정국이 인수한다.


명감자료에 종업원은 1975년 25명, 1977년 17명, 2004년(추병현) 5명이다. 현재 종합카서비스업체가 위치한다. 1994년 전화번호부에 수기동 20-3번지 공작종합상사·성냥대리점이 있다.


1950~70년대 성냥 전성시대와 함께 성냥공장아가씨노래, 성냥개비놀이도 회상한다. 1938년 목포인촌, 1955년 한일성냥(1946년설립), 1961년 계림동 성냥공장에 대형화재가 발생했다. 1967년 시영 계림시장의 큰불, 성냥개비 인화였다.


1980년대 가스라이터와 자동점화장치로 성냥은 박물·추억용품이 됐다. 명절성묘와 연휴 간, 소방심! ‘꺼진불도 다시보자’



1 댓글
김방식 02.13 19:12  
군가: 인천에 성냥공장                  인천에 성냥공장 성냥만드는 아가씨 하루에 한갑두갑넏낟갑이 열두갑 치마밑에 감추고서 정문을 나설때 치마밑에 불이붙어서 보지털이 다탓네 인천에 성낭공장 아가씨는 백보지 백보지  군시절에 비속어 군가로 많이 불렀습니다  우리나라 최초성냥 공장이 인천에 있어서 그노래가 불리워졌는지는 모르겠네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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