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_02 김피디의 불펀한 생각] ‘건물주’가 아닌 ‘이야기꾼’을 키우는 도시
< 전일빌딩 245 >
12.3 내란 이후, 지역에 묘한 현상이 목격되고 있다. 수도권 지인들이 전일빌딩 245와 5·18민주광장을 보기 위해 광주를 찾는 것이다. 그들은 세련된 인테리어 대신, 총탄 자국이 선명한 기둥과 빛바랜 아스팔트 위에서 셔터를 눌렀다. 풀이하자면, 단순히 물리적인 ‘공간(Space)’을 소비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곳에 서린 고유한 맥락, ‘장소성(Placeness)’을 향유하고 있었다.
대전 성심당이 빵과 함께 ‘대전의 자부심’을 팔듯, 바야흐로 고유한 서사를 파는 ‘로컬 크리에이터’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때마침 이재명 대통령은 ‘국가 창업 시대’를 선포하며 기술 창업과 로컬 창업을 양축으로 삼아 ‘창업 중심 사회로의 전환’을 천명했다.
문제는 광주가 과연 이 흐름에 올라탈 준비가 됐느냐는 점이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 반경 1km 이내는 동명동, 충장로, 금남로, 대인시장, 인쇄의 거리 등 글로컬 상권으로 성장할 최적의 입지를 갖추고 있다. 그러나 정작 ‘제2의 성심당’을 꿈꾸는 크리에이터들을 육성할 시스템은 부재(不在)하다. 단순히 낡은 건물을 리모델링하고 ‘청년몰’ 간판을 달아주는 식의 1차원적 지원은 이미 수명을 다했다. 이에, 필자는 광주가 로컬 창업 시대를 주도할 도시로 거듭나기 위한 네 가지 대안을 제안한다.
< 동명동 여행자의집 >
로컬 창업 시대를 주도할 네 가지 제안
첫째, ‘저렴한 실패’를 허용하는 ‘공간 인프라(Hard Infra)’의 구축이다. 로컬 크리에이터의 가장 큰 적은 임대료다. 젠트리피케이션의 악순환을 끊기 위해선 입지 좋은 유휴 공간을 과감히 ‘테스트 베드’로 내어줘야 한다. 단순 임대를 넘어 매출 연동형 ‘수익 공유 모델’을 도입하거나, 초기 2년 무상 임대 등 청년들이 자신의 ‘무모한 도전’을 공간에 구현할 수 있도록 실패 비용을 낮춰주는 혁신적인 실험이 시급하다. 중소벤처기업부의 로컬 브랜딩이나 글로컬 상권 사업 공모를 적극 활용하는 것도 실질적인 방안이 될 것이다.
둘째, 광주의 서사를 전면 개방하는 ‘데이터 인프라(Soft Infra)’다. 광주의 경쟁력은 압도적인 서사에 있다. 5·18 기록물부터 골목 장인들의 구술사까지, 수장고에 잠든 광주의 모든 역사·문화 데이터를 ‘오픈 소스’로 과감히 개방해야 한다. 크리에이터들이 광주의 역사를 엄숙한 성역이 아닌 가장 훌륭한 창작 재료로 삼아 마음껏 재해석하고, 굿즈, 영상을 넘어 미술, 음악, 문학 작품 등으로 다채롭게 재생산할 때 비로소 빛나는 로컬 콘텐츠가 탄생한다.
셋째, 고립된 점들을 잇는 ‘연결망(Network Infra)’이다. 일본 도쿄의 아자부다이 힐스는 주거·업무·상업·문화 시설을 압도적인 녹지와 보행로로 엮어내며, ‘도시 속의 도시’를 하나의 유기적인 동선으로 연결해냈다. 광주 역시 물리적으로 인접한 충장로와 ACC, 동명동을 하나의 호흡으로 잇는 ‘끊김 없는(Seamless) 보행 환경’을 구축해야 한다. 개별 점포의 각자도생을 넘어 역사 투어와 쇼핑, F&B 소비가 단절 없이 이어지도록 콘텐츠와 동선을 통합 관리할 ‘컨트롤 타워’ 도입이 시급하다.
넷째, ‘감’이 아닌 ‘데이터’로 타겟을 정조준해야 한다. 외국인 관광객 1명의 소비는 정주 인구 0.09명의 소비 대체 효과를 갖는다. 인구 소멸 시대에 관광은 단순한 여가가 아닌 생존 산업이다. 나라살림연구소 보고서에 따르면 광주는 방문객 비율(0.5%)과 체류 기간(-3.71일)이 급감하며 ‘잠시 들르는 경유지’로 전락할 위기에 처했다.
< 광주를 대표하는 충장축제 >
그러나 희망은 데이터 속에 있다. 광주 방문객의 1인당 관광 지출액은 2019년 대비 334%나 폭증했다. 방문객들은 ‘자연경관’보다 ‘식도락’에 만족하고 있으며, 실제 지갑은 ‘의료(1위)’와 ‘문화서비스(3위)’에 열고 있다. 특히 ‘문화서비스’ 소비가 상위권이라는 점은 타 광역 도시와 구별되는 광주만의 확실한 강점이다.
방향은 명확하다. 광주만의 투박하지만, 뜨거운 기억을, 가장 세련된 방식으로 풀어내는 ‘이야기꾼’들이 대우받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그 토대 위에서 미식도, 문화도 꽃을 피우고, 의료 관광지로서의 경쟁력 또한 높아질 것이다. 광주는 역사적으로 결과보다 과정을, 이익보다 ‘이야기’를 택해온 도시다. 곧 있을 ‘시도 통합’ 후 남도 여행의 플랫폼으로서 그 역할은 더욱 막중해진다. 행정 통합 특례를 이용한 난개발이 아닌 우리만의 이야기를 팔 수 있는 판을 깔아주는 것, 그것이 지금 우리가 해야 할 몫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