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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결될수록 외로워지는 ‘단톡방 세상’의 아이러니

채문석| |댓글 3 | 조회수 118

지난 월요일, 나의 ‘카톡 세상’은 새벽 5시 20분에 이미 하루를 시작하고 있었다.


6명이 모인 단톡방에 카를 마리아 폰 베버의 오페라 <오베론> 서곡 해설과 유튜브 링크가 올라왔다. 잠시 뒤에는 밴드 U2의 공연 실황 영상과 번역된 가사, 고(故) 김중만 작가의 사진 작품까지 연달아 도착했다.


이 모든 장면을 과거형으로 서술하는 이유는 눈치챘겠지만, 정작 그 시간에 나는 깨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뒤늦게 확인은 했지만, 제대로 읽어보지는 않았다. 이른바 ‘클래식·팝송 배달’은 수년째 거의 매일 같은 시간에 반복되고 있다. 정성만큼은 감탄스럽다.


그날 하루 동안 내가 이용한 단톡방을 세어보니 무려 17개였다. 인원은 5명부터 900명까지, 관계 역시 초등학교 동창부터 대학원, 사회 모임까지 다양했다. 그러나 이 많은 방 어디에서도 마음을 붙잡는 문장이나 진심 어린 위로를 발견하기는 어려웠다.



디지털로 연장된 한국식 집단주의


현재 카카오톡 이용자는 4,800만 명을 넘어섰고, 사용자 10명 중 9명 이상이 하나 이상의 단톡방에 속해 있다고 한다. 공지와 전달의 효율성 덕분에 단톡방은 이제 오프라인 모임을 대신하는 필수적인 디지털 공간이 되었다.


문제는 한국의 단톡방이 지연·혈연·학연 중심의 전통적 연결망을 거의 그대로 옮겨놓은 ‘온라인 연장선’이라는 점이다. 그 안에는 암묵적인 규칙과 반강제성이 공존한다. 어떤 방은 ‘운영지침’을 만들어 사용 시간과 발언 주제까지 관리한다. 메시지 하나를 올릴 때도 구성원의 눈치를 살피게 되고, 정치나 종교 이야기는 날 선 자기검열을 불러온다. 한국 특유의 집단주의가 디지털 공간에서도 여전히 작동하는 셈이다.


메시지를 확인했음을 알리는 ‘읽음’ 표시는 또 다른 풍경을 만든다. 이는 단순한 기능을 넘어, 모임에 대한 관심과 충성도를 가늠하는 비공식적인 지표로 활용되곤 한다.



단톡방에서 만나는 다섯 가지 ‘민폐’ 유형


단톡방에 올라오는 메시지들은 때로 피로를 넘어 불쾌감을 준다. 대체로 다음과 같은 유형들이다.


● 존재 증명형 : 새벽마다 꾸준히 콘텐츠를 올린다. 다른 방에서 퍼온 자료도 적지 않다. 성실함은 돋보이지만, 정작 읽는 사람은 많지 않다.

● 자기 과시형 : 활동량이 압도적이며, 모임이 자신의 의도대로 흘러가길 원한다. 공감 능력의 결핍으로 종종 뒷담화의 주인공이 된다.

● 목적 배달형 : 소셜미디어에 올린 글이나 정치적 메시지를 여러 방에 동시에 유통한다. 스스로는 ‘의미 있는 행동’이라 여기지만, 타인에게는 피로감을 안긴다.

● 일기 쓰기형 : 날씨부터 아침 식사 메뉴까지 사소한 일상을 공유한다. 누군가와 이야기하고 싶은 마음이 읽히지만, 대부분의 구성원에게는 관심 밖의 정보다.

● 음주 폭격형 : 심야 시간, 취기에 기대 무차별적인 발언을 쏟아낸다. 모욕과 비하가 섞인 ‘카톡 폭탄’은 강제 퇴장을 부르는 지름길이다.


연결의 과잉이 부른 ‘프렌드십 리세션’


이런 유형들로 인해 ‘카톡 피로’, ‘카톡 감옥’이라는 말이 생겨났지만, 단톡방을 쉽게 떠나기도 어렵다. 집단에서 소외될지 모른다는 불안, 이른바 소외 불안(FOMO) 때문이다. 고립과 왕따에 대한 두려움이 여전히 큰 한국 사회에서 단톡방은 쉽게 벗어날 수 없는 굴레가 된다.


역설적인 것은 매일 수백 개의 메시지를 주고받으면서도 외로움을 호소하는 사람은 늘고 있다는 점이다. 국가데이터처가 발표한 2025년 사회조사에 따르면, 13살 이상 응답자의 38.2%가 ‘평소 외롭다’고 답했다. 10명 중 4명이 고독을 느끼고 있는 셈이다.


이 현상은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뉴욕타임스 등 해외 언론은 온라인 연결은 늘었지만, 깊은 관계는 오히려 줄어드는 ‘프렌드십 리세션(Friendship Recession, 우정침체)’을 지적해왔다. 일본에서도 라인(LINE} 단톡방에서의 ‘읽씹’ 스트레스와 과도한 반응 압박이 사회적 문제로 논의되고 있다.


결국 세계가 공유하는 결론은 분명하다. 

메시지는 늘었지만, 관계는 깊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단톡방은 외로움을 달래주기보다, 때로는 우리가 얼마나 혼자 서 있는지를 가장 또렷하게 비추는 거울이 되고 있다.


그래서 이런 질문이 남는다. 

우리는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단톡방으로 숨어든 것일까, 

아니면 단톡방에 갇혀 있느라 진정한 대화의 방식을 잊어버린 것일까. 

오프라인에서 조금 더 천천히, 조금 더 깊이 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이야기할 수 있다면 어떨까. 

말 대신 침묵이 허락되고, 자주 악수하고 포옹할 수 있다면

우리는 지금보다 덜 외로워질 수 있지 않을까.


3 댓글
터바인조카 02.05 20:44  
다섯 가지 민폐 유형을 보며 나도 모르게 뜨끔하기도 하고, 주변 사람들이 떠올라 고개를 끄덕이게 되네요. '프렌드십 리세션'이라는 용어가 지금 우리 세대의 현실을 참 잘 나타내는 것 같습니다. 가끔은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침묵 속에서 서로의 눈을 맞추는 시간이 정말 필요할 것 같아요. 오늘부터라도 단톡방보다는 직접적인 대화에 더 신경 써야겠네요
매우낯선 02.06 10:46  
단톡방, sns현상에 대한 의미 있는 진단에 감사드립니다.
톡방을 비롯 페북 이나 기타 등등의 sns들은 우리 사회의 초라한 인간실존을 드러내는 실증적 지표라고 느껴집니다.
더욱 많은 비평과 성찰이 요청되는 인문적 화두입니다.
냉동실검정봉다리 02.06 20:06  
하지만 단톡의 순기능도 있어요.
단도직입적인 대화로 직언하기 쉽지 않을때,
마음이 열리지 않은 상태에서 안부 등 최소한의 의무를 접할때,
특정다수를 상대로 하여 조직내 의사전달 및 수집기능이 필요할때...
SNS 역기능은 배 따숩고 시간많은 한량들의 사례이지만, 오늘도 불철주야 열일하는 이들은 순기능에 박수를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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