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레이광주 > 웹진 『플광24』 > 한덕수 중형선고와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

웹진 『플광24』


한덕수 중형선고와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

박호재| |댓글 0 | 조회수 70

< 아이히만의 재판을 지켜보고 있는 한나 아렌트 > 


영혼없는 ‘무사유’ 공직자가 초래할 수 있는 악행에 대한 준엄한 경고


나치의 유대인 학살을 지휘했던 아돌프 아이히만이 이스라엘로 압송돼 재판을 받는다는 소식을 듣고, 저명한 정치철학자이자 홀로코스트의 생존자이기도 한 아렌트는 <뉴요커>의 특별 취재원 자격으로 예루살렘으로 가 재판 과정을 취재했다.


재판정에서 아이히만을 지켜본 아렌트는 ‘실제로 저지른 악행에 비해 너무 평범한 우리 주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중년 남성이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고, 그녀를 소름 끼치게 만들었다.


이스라엘에서 돌아온 아렌트는 그 후 ‘악의 평범성’ 이라는 개념을 정립했다. 평범해 보이는 사람이 사유의 결여 속에서 악을 저지를 수 있으며, 이 ‘무사유’가 타인에게 가하는 끔찍한 악이 될 수도 있다는 게 핵심 내용이다.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 개념은 상하 관계가 엄격한 공적 조직 내에서 무비판적 복종과 동조가 악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중형이 선고된 최근의 한덕수 전 총리의 재판에서 우리는 영혼 없는 공직자의 무사유가 빚은 악행의 전형적인 일면을 목격했다. 재판부는 ‘역부족이었다’ ‘불가피했다’ 는 피고인의 변명을 묵살하고 검찰 구형보다 8년이나 많은 23년을 선고했다.


국민들에게 ‘서로 사랑해야 한다’고 교훈하던 한덕수 전 총리는 그렇게 100살이 넘어서야 교도소에서 나올 수 있는 참담한 처지로 몰락했다. 국민에게 사랑해야 한다고 교훈했지만, 정작 스스로는 국민을 사랑하지 않은 죗값이다.


그래서 이진관 재판부의 한덕수 중형선고가 한국의 공직자들에게 주는 의미는 크다. 책임을 지는 위치에 있으면서도 불가항력을 핑계로 책임을 방조하거나 회피한 것 또한 큰 범죄가 된다는 경고이다. 그래서 공화국의 국민들은 지금 ‘잘잘못을 사유하는 공무원’을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김건희 씨가 종묘와 경복궁 등 국가 문화유산을 사적으로 이용한 사실에 대해 국가유산청이 경찰에 고발하자 노조가 반발하고 나섰다. 책임을 단순히 실무책임자에게 떠넘기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노조는 책임은 권력의 부당한 요구와 그에 따른 행정 절차의 왜곡에 있다고 주장했다. 논리적 어휘들을 동원하긴 했지만 필자가 좀 쉽게 번안하자면 “어쩔 수가 없어 시킨대로 했는데 왜 우리만 탓하냐”는 얘기다.


이 관점대로라면 국가유산청 노조는 한덕수 재판에서 아무런 감흥과 교훈을 얻지 못한 단체다. 국가 유산은 국가유산청의 자산이 아닌, 유구한 역사가 남긴 민족의 자산이다. 특정한 권력을 지닌 누군가가 제집 보물창고 들락거리듯이 자유롭게 오가고, 마음에 든 게 있으면 제멋대로 빌려다 쓸 수 있는 생할용품도 아니다.


김건희의 이 엄청난 반역사적 비행을 보고도 입 다물고 눈감은 이들이 직위를 위협하는 비수가 가까워지자 불가피한 행정질서 탓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에서 공식 공문 하나 보내주세요” 라고 말한 노조원이 한 사람이라도 있었을까?


창피한 줄 알아야 한다.


0 댓글


카카오톡 채널 채팅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