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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로 듣는 충장로의 추억 (원도심 상권 부활을 꿈꾸며)

주광| |댓글 3 | 조회수 261


최근에 광주전남 행정통합이 최대 이슈가 되고 있는데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광주에 들어설 대형 복합쇼핑몰 세 곳이 속속 공사를 시작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광주의 상권이 어떻게 재편될 것인지 그 피해는 얼마나 될 것인지에 대한 걱정을 많이 하고 있는데 특히 내가 20여 년을 DJ로 활동했던 원도심 충장로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지 관심이 더 많이 간다.


과거 호남 최대 상권이었던 충장로에서는 원도심 상권 활성화를 위해 ‘충장상권 르네상스’ 등 도시재생 연계 사업이 벌어졌으나 축제나 행사가 열릴 때만 반짝 붐빌 뿐 이벤트가 끝나면 다시 예전의 한산해지는 분위기로 돌아갔다. 이런 안타까운 현실 속에서 예전에 발표된 충장로를 주제로 한 노래들을 들어보면서 충장로의 화려했던 추억을 되새겨보고 원도심 상권 부활을 기대해본다.


1960년대 이후로 충장로를 소재로 노래한 곡은 다수 존재한다. 그러나 오늘은 직접적으로 충장로를 주제로 한 노래 세 곡을 소개한다. 충장로를 노래한 가수로 제일 먼저 생각나는 사람은 이장순이다. 먼저 그의 노래 ‘충장로의 밤’을 들어보자.


< 이장순 1집 표지,  충장로의 밤 악보 (고승석 작사, 작곡 1984) >


‘충장로의 밤’을 부른 이장순은 1946년 전남 영광 출신으로 어린 시절 광주로 이사왔다. 음악을 좋아하던 이장순은 군입대 후 월남으로 파병되는데 그곳 월남에서 광주가 고향인 국소남을 만난다. 두 사람은 제대 후에 광주에서 다시 만나 노래를 하기 위해 서울로 올라가서 1971년 포크 듀엣 ‘퍼플스’를 결성한다.


그해에 KBS ‘전국노래자랑대회’ 연말결선까지 올라갔고 1972년 KBS 가요 배틀 프로그램 ‘신인무대’에 조용필, 정미조, 이미배, 쉐그린과 함께 출연했다. 두 사람은 다시 광주로 내려와 1972년 12월 30일 광주학생회관 공연장에서 리싸이틀 공연을 하고 그날 밤 DJ 소수옥씨가 진행하던 광주 MBC ‘별이 빛나는 밤에’ 특별 프로그램에 출연한다.


광주 통기타 1세대인 이장순, 국소남으로 시작된 광주 통기타 음악은 이후에 이준용, 정용주, 정오차, 강용욱, 김정식, 김만준, 김종률, 하성관 등이 참여하는 포크 동아리 ‘광주 MBC 별밤가족’으로 이어져 광주 포크음악의 역사가 된 것이다.


1970년대에 이장순은 통기타 가수로 당시 광주 최고의 라이브 클럽 ‘엠파이어’, ‘투모로우’ 등에서 활동하면서 광주 충장로의 ‘프린스 제과’, 음악감상실 ‘또또와’, ‘그랑나랑’, ‘활주로’에서 DJ로도 이름을 날렸고 1980년대 초반에는 충장로 4가에 음악감상실 ‘고장난 우주선’을 개업해서 운영하기도 했다. 


그러다 1984년 이장순은 홀연 서울로 올라가서 1집 앨범 ‘서초동 밤거리’, ‘충장로의 밤’을, 1986년 2집 ‘부모생각’, ‘빈수레 인생’을 발표했다. 그리고 KBS ‘열린음악회’, ‘가요무대’, ‘그 시절 그 쇼’의 구성작가로 활동했다. 가수와 DJ, 방송작가로 활동한 이장순은 당시에 전국적으로 가장 유명한 광주 출신의 대중음악인이 된 것이다.


2001년에는 ‘통기타 1세대 통기타는 살아있다’ CD를 발매했는데, 이 앨범에는 그의 또 다른 대표곡 ‘들쥐’가 수록되어 있다. 이장순은 2002년에 서울 활동을 접고 광주로 내려와서 광주교통방송 ‘운전가요앨범’ DJ로 방송 진행을 했고 광주공원 앞 라이브 카페 ‘별이 빛나는 밤에’와 이후에 사직골 통기타 거리에 자리잡은 ‘이장순의 올댄뉴’를 운영했다. 광주에 다시 정착한 이장순은 2009년에 ‘충장로 블루스’를 발표했다.


< 2009 이장순 OLD & NEW CD표지, 충장로 블루스 가사 (이장순 작사, 작곡) >

이장순은 2010년 대장암 판정을 받고도 2011년 7월. 증심사 특설무대에서 93회 무등산 풍경소리 ‘이장순, 포크음악의 산에 오르다’ 공연을 하고 2011년 11월 사직공원 옛 KBS 공개홀에서 ‘이장순의 행복 음악회’를 열었다. 결국 2012년 3월 16일 세상을 떠났는데 이장순의 장례식은 광주 통기타 후배들과 DJ들이 모두 참여한 광주대중음악인장으로 열렸다.


1984년에 나온 ‘충장로의 밤’은 5.18광주민주화운동 이후 광주를 소재로 한 노래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노래다. 당시에 광주 충장로의 음악다방이나 음악감상실에서 자주 신청되던 노래로 광주의 아픔을 충장로를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달래주는 노래였다. 그리고 2009년 앨범 ‘이장순 OLD & NEW’에 수록된 ‘충장로 블루스’는 점차 쇠퇴해 가는 충장로의 화려했던 옛 추억을 그리면서 충장로의 부활을 염원하는 마음을 읽을 수 있다. 


충장로를 주제로 한 또 다른 노래로 최지선의 ‘비 내리는 충장로’가 있다.


< 최지선 2집표지, 비내리는 충장로 가사 (안송시 작사, 김정일 작곡 1988) > 

비 내리는 충장로’를 작곡한 김정일은 1973년 홍세민의 ‘흙에 살리라’를 작곡해서 이름을 알린 후, 1975년 라나에로스포의 ‘고독’, 1982년 동그라미의 ‘같이 있게 해주세요’, 1989년 박영규의 ‘카멜레온’, 1991년 이자연 ‘여자는 눈물인가 봐’, 1993년 설운도의 ‘마음이 울적해서’를 작곡한 작곡가다. 


가수 최지선은 명지대 응용미술학과를 졸업하고 1983년 ‘못 잊을 정’으로 데뷔했는데 1990년 제1회 목포 이난영가요제에서 ‘지금 우린 만남이 중요해’로 대상을 받은 시원한 창법의 가수다.  


‘비내리는 충장로’는 해마다 5월이면 시위가 격렬했던 충장로의 거리 풍경과 1980년 당시 목숨을 잃은 광주 시민의 넋을 기리는 내용으로, 블루스 리듬에 호소력 짙은 최지선의 목소리가 어우러져 더욱 애절한 느낌이 든다. 1987년 6.29선언 이후 광주민주화운동 진상규명 열풍이 불던 때 라디오 방송을 통해 많이 들을 수 있었던 노래였다. 


필자는 2025년 6월 충장로 4가 충장상인회 세미나실에서 열린 충장로 특화상권 혁신 토론회에 패널로 참여해서 의견을 피력한 적이 있다. 충장로에 추억의 문화예술관광 거리를 조성하자는 것이 골자인데, 해마다 충장축제 때 만들어지는 추억의 테마거리를 아예 충장로 빈 점포를 이용해서 상설로 만들자는 이야기다.


광주 극장 부근의 충장로 4,5가에 만화가게, 오락실, 레코드가게, 비디오가게, 음악다방, 스낵코너, 정종센터, 학교교실, 롤러스케이트장, 사진관, 상추튀김, 교복교련복, 연탄가게 등으로 구성된 거리를 조성해서 MZ세대들이 교복과 교련복, 청바지를 입고 돌아다니면서 사진도 찍고 쇼핑도 하는 거리로 만들자는 것이 나의 의견이었다. 해마다 짓고 부수는 충장축제 추억의 거리를 상설로 만들면 상당히 유의미한 문화예술관광 거리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화려했던 그 시절로 완전하게 돌아갈 수는 없지만 추억의 문화관광 테마거리로 조성된 충장로의 새로운 모습을 그려보면서 그 시절 충장로의 노래를 다시 한 번 들어본다.



3 댓글
주하주 01.15 15:55  
충장로를 아끼고 광주를 사랑하는 마음이 절절히 느켜집니다.
광주의 참 문화인, 주광샘의 건투를 빕니다. ^^;
LJLJ 01.15 16:09  
감사합니다.
충장로 음악다방, 사직공원, 중앙초 후문, 전남대후문 등등.
라이브 무대가 많았던 기억입니다.
주선생님의 의견을 지지합니다.
최상봉 01.15 16:33  
50여년전 충장로1가 해바라기음악실 PJ음악실 4가 화신다방등
아련히 떠오르는 옛추억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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