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레이광주 > 웹진 『플광24』 > [나윤상‘s 클래식] 한 시대의 끝은 또 다른 여명이다

웹진 『플광24』


[나윤상‘s 클래식] 한 시대의 끝은 또 다른 여명이다

나윤상| |댓글 0 | 조회수 63

지난 5일 안성기 배우가 영면했다. 지난해 이순재 배우가 소천했을 때도 한 세대가 지났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는데 안 배우의 영면은 한 시대가 이렇게 저물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만큼 안 배우의 한국 영화에서의 영향력은 컸다. 영화 속 안 배우의 존재감은 선한 이미지와 함께 정의로운 영웅적 서사 구조에 필연적인 모습으로 남아 영화 안에서 관객에게 어떤 안도감을 주는 매개체는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한 세대가 저물었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새로운 시대의 탄생을 예고하기도 한다. 역사는 시간처럼 일직선으로 흐르는 것 같아도 타원형으로 돈다. 단지 반복되면서 차이만 발생시킬 뿐이다.


서구 음악사에서도 마찬가지다. 1827년 베토벤이 죽었다. 이듬해인 1828년에는 31살의 젊은 나이로 프란츠 슈베르트마저 세상을 등졌다. 베토벤과 슈베르트의 죽음은 클래식 사조의 한 획을 긋는 역사적 사건이었다.


고전형식과 낭만형식의 태두이자 초석을 다진 두 사람의 죽음은 향후 어떤 형식의 음악으로 창작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논란을 낳았다. 그만큼 그들이 남긴 유산의 힘은 강력했다.


하지만 이 두 거장의 죽음이 클래식의 끝은 아니었다. 새로운 천재들이 세상을 향해 포효하게 하는 밑거름이 돼 주었기 때문이다. 19세기 초 서구 음악사의 천재들이 갑자기 쏟아져 나왔다. 이런 것을 보면 역사는 간단하게 한 시대를 이야기 할 수 없게 만든다.


1809년 펠릭스 멘델스존, 1810년 프레드릭 쇼팽, 로베르트 슈만, 1811년 프란츠 리스트, 1813년 쥬세페 베르디, 리하르트 바그너 1819년 클라라 등 19세기는 한 세기를 낭만주의로 수놓았던 쟁쟁한 천재들의 존재를 알렸다.


물론, 이런 천재들이 베토벤의 유산을 놓고 비록 서구 음악사 100년 전쟁을 하기는 했지만. 이들 천재 중에서 낭만주의 음악의 선구자는 누가 뭐래도 단연코 로베르트 슈만이다.


슈만은 문학에 조예가 깊은 음악가였다. 그는 당시 유행했던 소위 유행가 음악을 가장 경멸했던 음악가이기도 했다. 유행가 음악이라는 것은 장식음이 많고 화려해 대중들에게 깊이 있는 음악이 아닌 그 순간의 쾌락을 선사했던 살롱 음악(필자의 견해다)을 말한다.


이를 소위 필리스틴(Philistine) 음악이라고 하는데 19세기 초반 탈베르크, 칼크브레너, 헤르츠 등의 음악을 가리킨다. 혹시 궁금한 사람들은 유튜브에서 찾아서 들어보기 바란다. 물론 개인적인 호불호는 별개로 하고 슈만의 음악과 비교 감상해 보면 어떤 의미인지 알 것이다.


슈만은 음악의 이런 부분을 경멸했다. 슈만은 출판업으로 자수성가한 아버지의 영향으로 다양한 독서를 통해 자신의 소양을 깊이 있게 성찰했으며 그 토양 아래 그의 음악이 창작되었다. 그래서인가 그의 음악은 클래식에 생소한 사람에게는 한 번에 와 닿지는 않는다.


하지만, 깊이는 다르다. 그가 28세에 창작한 어린이 정경(kinderszenen)을 들어보면 통찰과 사유의 끝이 어디인지 알 수 있다. 또한, 그의 정신병적인 논란에 대해서도 문학적 배경 지식을 조금만 안다면 장 파울에 깊이 매몰하여 만들어낸 자신의 두 자아 플로레스탄과 오이제비우스가 그의 정신병적 우울이라고 단정 짓기도 힘들다.


슈만은 장 파울의 문학에서 쓰이는 장르적 특성을 자신의 음악에 접목시켰을 뿐이다. 장 파울은 현재 사용되는 도플갱어라는 단어를 탄생시킨 장본인이다.


장 파울의 문학은 두 자아의 분열로 인한 판타지적 문학의 대가였다. 물론 당시 어깨를 나란히 했던 E.T.A 호프만과 같이 환상 속의 이미지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호프만이 누구던가, 차이코프스키의 발레극 호두까기 인형의 원작자이자 자크 오펜바흐의 오페라 ‘호프만 이야기’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정신분석학자인 프로이트도 호프만의 1816년 작품 모래사나이를 가지고 섬뜩함에 대한 분석을 했을 정도로 기괴하고 어둡고 환상적인 창작을 했다.


각설하고, 한 시대의 끝을 맺는 것은 위대한 한 명의 죽음이다고 선언할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시대의 끝은 아니라는 것이다. 역사의 수레바퀴는 또다시 새로운 여명을 가져온다.


그렇기에 내일의 태양은 또 떠오르는 것이다. 故 안성기 배우의 영면을 기원하며 오늘은 슈만의 어린이 정경 중에 ‘트로이메라이’를 한번 들어보면 어떨까 싶다.


* 영상은 블라디미르 호로비츠의 1986년 모스크바 차이코프스키 콘서트홀 공연 실황이다. 호로비츠의 이름처럼 그는 1903년 러시아 제국 키예프 출신으로 1925년 서방으로 망명한 뒤 이후 정치적 상황으로 소련 땅을 밟지 못했다.


이후 고르바초프의 개혁, 개방정책으로 그는 61년 만의 귀향 무대 공연을 할 수 있었고 호로비츠 개인적으로는 82세의 나이로 이번 공연이 그의 마지막 무대일 것임을 직감했다. 영상을 보면 트로이메라이를 듣는 관객 중에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볼 수 있고 공연이 끝난 후 호로비츠도 이런 배경을 생각하며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 나온다.


이 공연도 한 세대를 풍미한 예술가의 은퇴라는 면에서 한 세대의 마침표라는 평가를 받는다.



0 댓글


카카오톡 채널 채팅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