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반하장(賊反荷杖)
현재 진행형인 적반하장
적반하장(賊反荷杖)은 도둑이 도리어 회초리를 든다는 뜻이다. 중국 고전에서 유래한 이 말은,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 반성은커녕 오히려 피해자를 꾸짖고 책임을 전가하는 상황을 비유한다. 공동체 윤리를 무너뜨리는 태도를 경계하기 위해 오랫동안 쓰여온 말이지만, 오늘의 정치 현실 속에서 이 사자성어는 유감스럽게도 현재 진행형이다.
12·3 내란 사태, 대한민국 헌정 질서에 대한 중대한 도전
12·3 내란 사태는 대한민국 헌정 질서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었다. 민주주의의 근간인 문민통제와 권력 분립을 위협했고, 헌법 위에 군과 권력을 세우려 했다는 점에서 결코 가볍게 넘길 수 없는 사건이다. 그럼에도 윤석열 전 대통령은 재판 과정에서조차 책임을 인정하기보다 “정당한 통치 행위였다”거나 “야당과 언론의 과장”이라는 식의 주장을 반복해 왔다. 헌정 질서를 흔들어 놓고도 이를 ‘정치적 판단’으로 포장하는 것은, 명백한 책임 회피이자 궤변(詭辯)이다.
국민의힘 지도부의 태도 역시 다르지 않다. 지도부 인사들은 12·3 사태에 대한 사과나 정치적 단절을 요구하는 시민들의 목소리에 대해 “이미 지난 일, “대통령의 통치 행위. 선동에 휘둘릴 필요 없다”는 표현으로 일축하고 있다. 심지어 내란 혐의로 재판을 받는 당사자를 두고 “정치 보복의 희생자”라는 프레임을 앞세우며, 사법 절차 자체를 흔드는 발언도 서슴지 않고 있다. 불을 지른 사람이 화재 원인을 따지는 시민에게 왜 소란을 피우느냐고 되묻는 형국이다.
시간이 지나면 국민은 다 잊는다?
윤상현 의원의 “시간이 지나면 국민은 다 잊는다”는 취지의 발언은 이러한 인식을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이는 국민을 주권자가 아닌, 잠시 분노했다가 이내 잊어버릴 존재로 본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현대사는 그 반대를 증명해 왔다. 5.18 광주민중항쟁의 아픔을 잊지 않았고, 6월 항쟁의 함성을 잊지 않았으며, 박근혜를 탄핵하기 위해 촛불로 광장을 밝힌 시민의 선택도 잊지 않았다.
민주주의를 위협한 사건은 시간이 아니라 시민의 기억 속에서 심판받아 왔다. 만약 국민들이 45년 전, 광주의 아픔을 기억하지 못했다면 그 추운 겨울날 새벽에 국회로 달려가지 않았을 것이다, 반역의 무리인 전두환 일당을 단죄하지 못한 것이 어떤 결과를 초래했는지 시간이 지나도 국민들은 잊지 않았다. 국가를 위험에 빠트리고, 국민을 고통스럽게 한 역사적 사실은 시간이 지나도 국민들은 결코 잊지 않는다는 사실을 똑똑히 기억해야 한다.
궤변과 요설로 모면 못해
정치는 말의 기술이 아니라 책임의 윤리 위에 서야 한다. 궤변과 요설로 국면을 모면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그것이 신뢰를 대신할 수는 없다. 항아리에 금이 갔는데 겉에 화려한 문양을 덧칠한다고 물이 새지 않는 것은 아니다. 진정한 수습은 반성과 사과, 그리고 분명한 단절에서 시작된다.
6·3 지방선거는 단순한 지방 권력의 선택을 넘어, 민주주의에 대한 국민의 집단적 판단이 드러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적반하장의 정치가 계속된다면, 국민은 다시 묻고 다시 기록할 것이다. 도둑이 매를 드는 사회가 아니라, 책임 있는 사람이 고개를 숙이는 사회. 그것이 민주공화국이 지켜야 할 최소한의 상식이기 때문이다.
이제 정치가 국민들에게 답할 때
김대중 전 대통령은 연설문에서 “정의로운 사회를 위해서는 양심이 존중되는 세상이 되어야 합니다. 선이 이기고 악이 눈앞에서 패배하는 사회, 정직하고 부지런한 사람이 성공하는 사회를 민들어야 합니다. 우리들의 목표는 결국 ‘얼마만큼 잘사느냐’가 아니라 ‘얼마만큼 바르게 잘사느냐’입니다. 민주정치는 국민이 주인이 되는 정치입니다. 국민이 주권자의 역할을 훌륭히 수행할 때만 민주정치를 이룩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씀하셨다. 국민들은 국가 위기 순간마다 주권자로서 역할을 다해왔다. 이제 정치가 국민들에게 답할 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