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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는 미식의 도시인가?

김홍렬| |댓글 0 | 조회수 113

1. 미식, 미식가 

미식(美食)은‘아름답다고 느껴질 만큼 최고의 음식’이며 동시에 ‘그러한 음식을 먹고 즐기는 행위’를 표현하는 말이다. 일반적으로 오감(五感)을 통해 음식의 맛과 향, 형태와 식감 그리고 소리에 이르기까지 음식 본연의 요소들을 최고 수준에서 즐기고자 하는 것이 미식의 본질이다.


거기에 문화적 배경 등을 깊이 있게 느끼고 감상하며 즐기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미식이라 할 수 있다. 한편, 그러한 가치를 추구하는 이들을 미식가(美食家)라 하는데 미식가 또는 식도락가(食道樂家)들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선망의 대상이면서 동시에 질시와 비난의 대상이었다. 어쨌거나 이 미식가들이 음식을 바탕으로 한 풍류(風流) 문화 발전에 공헌한 문화 선도자들이었음은 분명하다.


광주를 중심으로 하는 남도의 남정네들은 모두가 미식가였고, 그들의 까다로운 입맛을 맞추려 남도 아낙들은 들과 산 그리고 바다와 강에서 나는 각종의 재료들을 고르고 손질하여 때로는 신선하게 때로는 곰삭혀서 최고의 맛을 찾아냈다.


필자는 이러한 남도 여성들의 음식 솜씨를 빗대 “남도 여인들은 맛의 DNA가 다르다”라고 표현하기를 즐긴다. 남들처럼 따로 배우거나 오래 수련하지 않아도 본능적 감각으로 손맛을 낼 줄 아는 것이 남도의 아내이고 어머니들이라는 의미다.


시인 신석정의 맏사위로 만해문학상을 수상한 문학가이자 교육자였던 고하(古河) 최승범 선생에게 들은 광주 미식가 이야기 한 토막이다. 재작년 타계한 선생이 전북대학교를 퇴임한 후 고하 문학관을 지키며 지인과 후배들을 맞던 무렵 남도 음식문화 조사를 위해 찾았을 때 들은 이야기다.


문인(文人)이므로 자연스럽게 명사들을 만나는 일이 많았는데 한 번은 광주(光州) 대부자(大富者) 무송(撫松) 현준호¹ 와 함께 식사할 자리가 있었다. 요릿집에서 큰 상 가득 차려 나온 식사를 시작하려는데 현준호가 양복 안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주사약 병 같은 작고 투명한 유리병이었다. 무송은 아주 조심스레 고무 뚜껑을 벗겨 열고는 살짝 기울이며 젓가락을 넣더니 투명해 보이는 뭔가를 꺼냈다. 곤쟁이젓이었다.


평소 젓갈을 좋아하는 무송이 어디선가 구한 잘 삭은 곤쟁이젓을 작은 유리병에 담아 주머니 안에 넣고 다니며 식사 때마다 아주 조금씩 꺼내 혼자 먹은 것이다. 궁금했던 일행들이 한 번 맛 보여주기를 청했지만 단호하게 거부하며 급하게 다시 고무 뚜껑을 닫고 주머니에 넣었다. 그날 식대를 모두 책임졌을 만큼 돈이라면 거금도 성큼 내놓던 그였지만 자신의 입맛에 맞는 곤쟁이젓만큼은 단 한 톨도 남에게 내어 줄 수 없었다는 것이다. 진정한 미식가의 모습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우연히도 광주시립민속박물관을 찾았다가 무송의 옛집 무송원 대문 앞에서 젓갈 장수로부터 젓갈을 사고 있는 무송가(撫松家) 한 여인 모습이 담긴 해방 전 흑백 사진 한 장을 발견했다.


( 무송원 대문 앞에서 젓갈을 사는 여인. 1940년대 초, 사진:광주시립민속박물관  )


현준호를 비롯한 다양한 남도 사람들의 식도락 이야기는 광주 사람들의 맛에 대한 수준과 전통을 보여주는 사례이자 광주·남도의 소중한 미식 문화 스토리 자원이다.


2. 맛의 본고장 전라도?

음식은 문화(文化)이고, 문화의 발전은 경제력에 기인한다. 고대로부터 산업화가 본격화되기 이전 전통시대(傳統時代)에는 경제력의 핵심이 농업이었다. 곡창으로 일컫던 전라도는 나라 경제의 중심지였고 그 경제력을 바탕으로 전라도의 음식문화는 자연스레 높은 수준으로 발달하였다. 너른 들과 그곳을 가로지르는 강, 적당한 산 그리고 각기 다른 특징을 갖는 양면의 바다와 끝없이 펼쳐진 갯벌에서는 항상 신선하고 다양한 식재료가 공급되었고 그것들은 ‘맛의 DNA’를 타고난 전라도 여인들의 손을 거쳐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산해진미를 만들어 냈다.


‘맛의 본고장’이니 ‘미향(味鄕)’이니 하는 말들도 이런 배경에서 붙여진 남도의 별칭이었다. 그러나 2·3차를 넘어 4차와 그 이후 단계의 산업 시대에 접어들고 있는 오늘날, 나라 경제력의 중심은 수도권과 영남권에 집중되고 음식문화 역시 두 지역을 중심으로 급속하게 발전하여 앞서 나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많은 국내·외국인 관광객들은 맛을 찾아 서울과 부산을 찾고, 거기에 제주와 강릉 같은 유명 관광지를 더 해 이들 지역이 K-Food 미식 관광의 주 목적지가 되고 있다. 심지어 대표적‘노잼·노맛’도시였던 대구와 대전마저 음식을 주제로 관광객을 불러 모으고 있다. 대구는 치맥 축제로 대전은 성심당 빵으로 지역경제와 이미지 제고에 상당한 성과를 얻고 있다. 대단치 않은 식문화 자원이지만 관광객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관민이 함께 노력한 성과다.


3. 미식 광주의 길   

광주는 다른 지역에 비해 일반적인 관광 매력물이 많지 않은 도시로 알려져 있다. 부산·강릉·제주도가 가진 바다가 없고, 서울·강릉·경주·전주·안동에서 보는 궁궐·고택·향교와 서원·오래된 사찰 등 유적 유물도 많지 않다. 무등산이 있으나 외지인들에게는 일부러 찾을 만큼의 관광 매력물로 보이지 않고, 영산강 역시 한강·금강·낙동강·동강 등에 비해 밋밋하다는 이미지를 갖고 있는 듯하다.


예향이고 음식의 고장이라는데 비엔날레와 축제와 여러 종류의 음식관광 상품들도 폭발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오히려 같은 남도 음식 문화권에 속하는 전주·목포·여수 등에 밀리는 느낌이 역력하다. 적어도 외지인들에게 광주는 그다지 매력적인 관광과 미식의 도시가 아니다.


우리가 안에서 보는 광주는 그야말로 미식의 천국이고 예술의 도시인데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걸까?


실제로 전주와 광주 두 도시의 음식문화를 모두 경험한 이들은 한결같이 광주 음식 더 다양하고 깊이도 있다고 말한다. 그런데도 전주는 비빔밥·콩나물국밥·모주 등이 인지도와 이미지 측면에서 지역을 대표할 만한 음식으로 전국적 명성이 높고 유네스코 음식문화창의도시로 지정될 만큼 미식 도시로 알려진 데 반해 광주는 그렇지 못하다. 많은 이유와 원인이 있겠으나 여기서 일일이 거론할 필요는 없다. 광주 사람들도 이미 잘 알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얼마 전 시청 고위 간부 한 분은 “구슬이 많은데 어떻게 꿰어야 할지 모르겠다.”라고 광주 음식산업과 관광 활성화의 어려움을 토로한 적이 있다. 다양한 정책들을 시도해 보지만 현장 적용에 실패하는 일들이 반복되는 상황이 답답하였을 터다. 이래저래 지금은 광주 음식문화의 발전과 미식 관광 활성화를 위해 함께 다 함께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 이글은‘2025 광주관광거버넌스 성과보고회’에서 발표한 원고 중 일부를 발췌 재정리한 것이다.

1) 현준호(玄俊鎬,1889~1950)는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에 오른 인물이다. 여기서는 그의 미식가적 요소만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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