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구의 관광객은 누구인가
< 양림동 수피아홀 사진:양림역사문화마을 >
관광 정책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흔히 “관광객 수가 늘었다”는 말로 성과를 확인한다. 그러나 이제 그 질문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은 사람이 왔는가가 아니라, 누가 와서 어떤 시간을 보냈는가다.
최근 일본의 관광 담론이 이를 잘 보여준다. 일본은 교통, 치안, 자연, 문화, 미식까지 세계 최고 수준의 조건을 갖춘 나라다. 실제로 코로나 이전까지 관광객 수는 꾸준히 증가했다. 그럼에도 일본 내부에서는 “양적 성장에는 성공했지만, 유럽·북미의 고부가가치 여행자를 붙잡는 데는 실패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단체 관광과 짧은 체류 중심의 구조 속에서, 일본이 가진 깊은 문화와 공간의 가치를 충분히 소비하게 만들지 못했다는 반성이다.
이 질문은 광주, 그리고 남구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과연 남구의 관광객은 누구인가.
방문객은 있지만, 체류객은 드물다.
남구에는 분명한 관광 자산이 있다. 양림동의 근대 역사와 건축, 선교와 민주화의 서사, 예술과 종교가 공존하는 독특한 정체성, 푸른길과 무등산으로 이어지는 자연 환경까지. 콘텐츠만 놓고 보면 결코 부족하다고 말하기 어렵다.
그러나 현실에서 남구는 종종 ‘잠시 들르는 동네’로 소비된다. 양림동을 둘러보고 사진을 남긴 뒤,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나 동명동, 혹은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는 흐름이 일반적이다. 하루를 온전히 보내기에는 동선이 느슨하고, 하룻밤을 묵을 이유는 더더욱 선명하지 않다.
이는 남구만의 문제가 아니다. 서울 서촌 역시 한때는 “볼 것은 많지만 머물 곳은 없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서촌은 한옥 숙소, 소규모 전시 공간, 로컬 식당과 서점이 골목 단위로 연결되면서 ‘하루를 보내는 동네’로 변했다. 관광객 수보다 체류의 밀도를 선택한 결과였다.
남구 역시 콘텐츠의 부족이 아니라, 머무름을 전제로 한 구조가 아직 만들어지지 않았을 뿐이다.
< 양림동 펭귄마을 사진:한국관광공사 >
관광은 상품이 아니라, 도시의 구조다.
고부가가치 여행자는 단순히 명소를 소비하지 않는다. 그들이 중시하는 것은 한 지역에서 보내는 시간의 질이다. 걷는 속도, 건축의 밀도, 거리의 분위기, 미식과 예술이 만들어내는 일관된 세계관. 이 요소들이 자연스럽게 이어질 때 도시는 비로소 ‘머물고 싶은 공간’이 된다.
포르투갈의 포르투는 대표적인 사례다. 화려한 랜드마크보다 오래된 골목, 강변 산책로, 소규모 와이너리와 숙소가 유기적으로 연결되면서 “천천히 머무는 도시”로 자리 잡았다. 관광 정책의 핵심은 이벤트가 아니라 도시 전체를 하나의 경험으로 설계하는 것이었다.
지금의 남구는 개별 명소와 점포가 각자의 감성으로 흩어져 있다. 관광객의 동선은 설계되어 있지 않고, 건축·상업·문화·휴식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중심부도 뚜렷하지 않다. 이는 홍보 부족이나 프로그램의 문제가 아니라, 도시 전략의 문제다.
관광을 단기 사업이나 일회성 행사로 접근하는 한, 남구는 계속해서 스쳐 가는 공간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남구가 유치해야 할 관광객은 누구인가.
이제 질문을 바꿔야 한다.“얼마나 많은 관광객을 부를 것인가”가 아니라,“어떤 관광객의 시간을 감당할 것인가”이다. 남구가 지향해야 할 관광객은 빠른 소비를 전제로 한 단체 쇼핑 관광객이 아니다. 그러한 구조는 남구의 역사와 정체성과도 어울리지 않는다. 오히려 남구와 잘 맞는 여행자는 다음과 같은 사람들이다.
도시를 천천히 걷고 사유하는 여행자, 기독교 역사와 인권, 민주화의 맥락을 이해하려는 방문객, 로컬 미식과 공예, 건축과 풍경을 하나의 경험으로 소비하는 사람, ‘핫플’보다 도시의 분위기와 결을 찾는 여행자, 이들은 수는 많지 않지만, 체류 시간은 길고 지역에 남기는 가치는 크다. 전주 한옥마을이 단순 방문지를 넘어 숙박과 체험 중심으로 확장된 것도, 이러한 여행자층을 염두에 둔 전략의 결과였다.
관광을 도시 전략으로 다시 세울 때다.
남구 관광의 미래는 새로운 축제를 하나 더 만드는 데 있지 않다. 핵심은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머물고, 소비하고, 사유할 수 있는 설계된 중심부를 만드는 일이다. 로컬크리에이터와 상점, 숙박과 미식, 공공 공간과 골목이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될 때 비로소 체류는 현실이 된다. 관광은 산업이기 이전에 도시의 품격을 보여주는 지표다.어떤 관광객을 맞이할 것인가는, 결국 어떤 도시가 될 것인가에 대한 선택이다.
이제 남구는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남구의 관광객은 누구인가.’그리고 그 질문에 걸맞은 도시를, 차근차근 설계해야 할 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