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레이광주 > 웹진 『플광24』 > [나윤상‘s 클래식] 12월이 오면

웹진 『플광24』


[나윤상‘s 클래식] 12월이 오면

나윤상| |댓글 0 | 조회수 76

12월이 오고야 말았다. 개인적으로 매년 새해가 되고 새로운 달력을 받았을 때 맨 마지막 달을 펴보는 습관이 있다. 1월에 보는 12월은 언제나 흥미로운 느낌이 있기 때문이다. 겨울이 주는 미지의 흥분과 가벼운 설렘은 이제 막 지나간 지난해 12월에 대한 아쉬움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12월의 겨울은 1월과는 또 다른 낭만을 준다. 인적 하나 없는 거리에 켜진 가로등 사이로 흩뿌리는 마지막 달의 함박눈은 동화 속 환상의 세계로 이끄는 매개체가 된다. 마치 자신이 호그와트 마법학교의 학생이 된 것처럼 지팡이 하나로 하늘을 수놓은 폭죽의 향연을 펼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상상의 나래를 펴는 것이다.


하지만, 겨울은 마냥 디즈니랜드 같지는 않다. 삭막함과 쓸쓸함이 공존하기 때문이다. 겨울은 이렇듯 야누스의 얼굴을 하고 있다. 로마인들은 1월을 야누스의 얼굴이라고 상상했는지 이해가 간다.


꼭 12월이 아니더라도 매년 겨울이 되면 생각나는 곡들이 있다. 매년 통과의례처럼 들어야 하는 음악들이다. 여기에 특별한 법칙은 없다. 물론, 베토벤의 교향곡 9번 ‘합창’,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 3번, 브루크너 4번 교향곡, 시벨리우스의 1번 교향곡, 차이코프스키의 호두까기 인형들도 연상된다.


위 곡들도 꼭 들어보기를 추천하지만 그래도 12월이 되면 개인적으로 추천해주고 싶은 노래들이 있다.

첫 곡으로는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Wintereise)’다. 슈베르트가 죽기 한 해전인 1827년에 출간한 연가곡으로 빌헬름 뮐러의 시에 곡을 붙인 것이다. 겨울 나그네는 정말 독특한 마력이 있다. 그것은 삭막함이다. 음악으로 겨울의 이미지를 이렇게 형상화할 수 있는지 경이로울 뿐이다.


슈베르트는 세간에 알려진 것과 많이 다른 삶의 궤적이 있는 음악가이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생전에 주목받지 못해 생활고에 찌든 음악가가 아니었다. 그는 당대 유명인이었던 로시니만큼이나 많은 사람들이 그의 음악을 좋아했고 연주를 했고 그렇기에 보수도 상당히 받았다. 또, 교회나 귀족들의 후원에서 벗어나 프리랜서로 일한 첫 번째 음악인이기도 했다.


비록 1822년에 매독에 걸려 1828년에 죽을 때까지 죽음의 우울함에서 벗어나지는 못했다. 그런 상황속에서도 그가 비관하지 않고 쓴 많은 곡들은 아직까지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고 있다. 


겨울 나그네는 1곡 밤 인사부터 24곡 거리의 악사까지 시종일관 겨울 이미지로 가득하다. 대중적으로 가장 유명한 곡은 5번 보리수일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24곡 거리의 악사를 좋아한다. 이 겨울에 꼭 한 번 들어봐야 할 레퍼토리다.


다음 추천곡은 차이코프스키 오페라 ‘오네긴’ 중 렌스키의 아리아 ‘kuda kuda vi udalilis (어디로 가버렸나, 내 찬란한 젊은 날들은)’다. 이 곡은 한마디로 슬프고도 아름답다고 해야 어울리지 않을까 싶다. 오페라 오네긴에 나오는 유명한 아리아 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곡으로 렌스키의 서사에서 나오는 감성도 무관하지 않을 듯하다.


렌스키는 젊은 시인인데 절친인 러시아 귀족 오네긴이 자신이 사랑한 올가를 무시한 것에 대한 분노로 결투를 신청한다. 하지만 만능 스포츠맨인 오네긴을 만년 서생인 자신이 이기지 못하리란 것은 당연히 알고 있다. 이 아리아는 렌스키가 결투일인 새벽에 결투장소에 나와 자신의 마지막임을 직감하면서 부르는 노래다.


가사 내용은 찌질한 면이 없지 않지만 다르게 생각하면 일편단심 남자의 순애보가 깔린 서글픈 노래라고도 볼 수 있다. 물론 그가 사랑했던 올가는 전혀 모르고 있지만... 하지만, 아리아는 그렇게 보잘것없지 않다. 차이코프스키의 노련함과 애잔함이 돋보인 명곡이다. 겨울에 딱 어울리는 곡이다.


마지막으로 12월이면 절대로 빠질 수 없는 푸치니의 ‘라보엠 La Boheme’이다. 매년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전 세계 오페라극장에서 빼놓지 않고 무대에 올리는 작품이다. 제목 라보엠은 젊은 예술가들이라는 뜻으로 시인 루돌포와 미미의 안타까운 사랑을 그리고 있다.


이 오페라가 크리스마스 시즌을 장식하는 주된 이유 중 하나는 작품 속 이야기 시점이 크리스마스란 점이다. 또한, 아름다운 아리아들이 이어지면서도 젊은 연인의 이룰 수 없는 사랑의 비극이 사람들의 마음을 파고 드는데 있다.


여주인공 미미가 마지막에 죽는다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인데도 매번 오페라를 보면서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나오는 경험은 이 오페라의 최대 매력이라고 할 수 있다.


많은 아리아 속에서도 추천하고 싶은 곡은 ‘Che gelida manina (그대의 찬손)’이다. 1막에 나오는 로돌포의 아리아다. 한 아파트에 사는 시인 로돌포, 화가 마르첼로, 음악가 쇼나르, 철학자 콜리네 네 명의 가난한 젊은 예술가들은 돈이 없어 집세를 밀리고 땔감도 없는 형편이다. 


이때 쇼나르가 일을 하기로 하고 선불로 받은 돈으로 크리스마스이브를 술집에서 즐기려고 나간다. 로돌포만 남아 쓰던 원고를 정리하고 나가려는 순간 아래층에 사는 재봉사 미미가 불씨를 얻으려 올라온다. 로돌포는 미미에게 한 눈에 반하고 미미가 떨어뜨린 열쇠를 찾는다는 핑계로 그녀의 손을 잡는다.


그런데, 그녀의 손은 너무나 차갑다. 로돌포는 이때 이 아리아를 부른다. 자신은 시인이라고 멋들어진 소개를 하고 당신은 누구냐고 묻는 노래다. 이 곡은 테너가 가장 어려워한다는 하이C 음이 들어 있다. 영상에서 나오는 루치아노 파바로티가 이 부분을 멋들어지게 소화하자 아리아가 진행 중임에도 관객들이 박수를 치는 장면이 나온다.


이어지는 미미의 아리아 ‘Si mi chiamano mimi (저는 미미라고 부릅니다)’와 이중창 ‘O soave fanciulla (오 귀여운 처녀)’는 이 오페라가 왜 지금까지 매년 크리스마스 시즌을 수놓고 있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0 댓글


카카오톡 채널 채팅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