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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현의 세상유감] AI와 데이터에 관한 소고

박지현| |댓글 3 | 조회수 123


길을 걷다 보면, 풍경은 내게 말을 겁니다. 오래된 간판, 문 닫은 가게 앞에 내린 햇빛. 벽에 적은 낙서, “도시는, 누가 어떻게 살아왔는가의 흔적이다.”는 누군가의 말을 떠올립니다.


최근 지역에서는 데이터센터 이야기가 화두입니다. 데이터센터가 들어오는 것만으로 지역경제가 당장에 살아날 것처럼 호들갑입니다. 


전력 사용량이 얼마며, 건물의 규모, 몇만 대의 서버가 들어오는지, 말들은 그럴듯하고 복잡합니다. 하지만 반짝이는 첨단시설의 외피가 아니라, 그 안에 무엇을 담을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질문에는 답이 없습니다. 


세상 모든 기계가 모여 있다 한들, 그 안에 사람의 하루, 지역의 결, 도시의 기억이 없다면 그것은 그저 거대한 금속의 숨일 뿐입니다.


‘AI 시대’라는 말이 공기처럼 떠다닙니다. 하지만 그 시대를 ‘살아 있게’ 만드는 것은 거창한 하드웨어가 아니라, 우리가 쌓는 로컬 데이터, 즉 우리의 삶을 비추는 기록이 아닐까요? 관광객이 어디에서 발걸음을 멈추는지, 한 소상공인의 하루 매출이 어떤 리듬을 만드는지,낯선 여행자가 무엇에 마음을 빼앗기는지, 그 미세한 결들이 모여야 비로소 도시는 ‘이해되는’ 것이지요.


예컨대, 양림동의 좁은 골목에 들어선 작은 카페가 어느 날부터 SNS를 타고 외지인의 발길이 잦아지는 순간, 그곳의 ‘기록되지 않은 데이터’는 이미 변화의 파동을 만들어냈습니다. 하지만 지금 로컬 데이터 체계는 이런 흐름을 담아내고 있을까요? 세밀하게 담아내지 못하고, 막연한 “관광객 증가”라는 통계만 채웁니다. 숫자는 늘어나는데, 맥락은 비어 있는 셈이지요.


광주의 현실은 조용히 우리에게 말을 걸고 있습니다. 관광객은 늘어나지만 머무는 시간은 채 하루도 되지 않습니다. 청년들은 일자리를 찾아 지역을 떠나며, 지역경제의 심장 역시 가끔씩 멎을 듯 약해집니다.


1913 송정역 시장은 한때 지역 변화의 상징처럼 이야기됐지만, 실제로 기록된 데이터를 들여다보면 주말, 일부 구간에서만 활성화되었고, 평일엔 여전히 힘든 ‘온도 차’가 존재합니다. 또한 충장로의 빈 점포들이 보내는 신호는 어떤 것일까요? 


왜 활력을 잃어가는지, 어떤 시간대에 사람들의 흐름이 끊어지는지, 소상공인들의 매출 곡선이 어떤 패턴을 그리는지, 이는 모두 데이터가 말해줄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지도보다 먼저 나침반만을 들여다보고 있지 않은지 반성해봅니다. 방향만 정하고서 길을 떠나는, 어디가 언덕인지, 어디가 낮은지, 길의 질감은 보지 못한 채 무작정 달리자고 작정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삶이란 우리가 기억하는 모든 것의 합이다.” 문학가 아나톨 프랑스(Anatole France)의 말입니다. 이 말을 바꿔보자면 “도시는, 우리가 기록한 모든 것의 합이다.”

 

그렇다면 지금 광주가 기록해야 할 것은 데이터센터의 규모나 서버의 개수뿐 아니라, 사람의 흔적, 지역의 맥락, 문화의 결, 골목의 목소리일 것입니다.


로컬 데이터를 모으는 일은 숫자를 채우는 작업이 아니라, 도시의 영혼을 다시 모으는 일에 가깝습니다. 예를 들자면 광주비엔날레를 찾은 관람객이 비엔날레 전시장을 나와 어디로 향하는지 이 작은 흐름을 기록해 놓으면, 도시의 문화 동선이 어디서 끊어지는지, 어디서 확장되는지 명확히 드러납니다. 


그 데이터는 지역 상권에 새로운 숨을 불어넣을 수도 있고, 예술과 경제가 만나는 지점을 자연스럽게 보여줄 수도 있습니다. 이 모든 작은 데이터들이 쌓일 때 도시의 미래는 ‘예측 가능한 언어’를 갖게 됩니다.


그런 데이터가 차곡차곡 쌓인 도시에서는 AI가 이 도시의 숨을 따라 걷기 시작할 것입니다. 관광지의 붐빌 시간을 예측하고, 개인의 취향에 맞는 여정을 제안하고, 소상공인이 활기를 찾도록 도우며, 축제와 상권을 연결하고, 지역의 문화 DNA를 잃지 않게 붙잡아 줍니다.


그렇다면 데이터센터의 진짜 역할은 무엇일까요? 그저 “많은 데이터를 저장하는 창고”가 아니라, 도시의 기억을 품는 거대한 도서관이 되어야 합니다.

건물의 크기가 미래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기는 사람이 미래를 만드는 것입니다.


제가 바라는 광주의 모습은 단순히 기술이 빠른 도시가 아니라, 기억을 아름답게 저장할 줄 아는 도시, 사람의 온도를 담을 줄 아는 도시, 흐름을 읽는 도시입니다. 


데이터센터는 결국 하나의 그릇일 뿐입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 그릇에 지역민들의 시간과 마음, 문화의 빛과 삶의 결을 정성껏 채워 넣는 일일 것입니다.


도시의 기억을 짓는다는 것은 도시의 미래를 짓는 일이며, 광주는 기술의 도시가 아니라 ‘기억의 도시’가 되어야 합니다.


데이터센터의 화두만큼 고민해야 할 로컬 데이터에 대한 담론! 이제부터 시작해야 할 것입니다.


  

3 댓글
김옥열 12.05 17:53  
동의합니다. 도시는 기록한 모든 것의 합! 디테일에 약한 광주에 내리치는 죽비!
짱가 12.05 21:32  
동감합니다! 로컬데이터의 축적이 글로벌 무한으로 뻗어나가는 것.
문화를 담는 그릇이야말로 반드시 해야할 우리의 숙제이자 미래라 생각됩니다.^^
주광 12.05 21:44  
기억의 도시 광주 좋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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