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피디의 불펀한 생각] ep.11 내 심장의 첫 번째 – 코리아컵 결승을 맞이하는 축덕의 자세
코리아컵 결승전 출정식 사진 출처: 광주FC
12월 6일 오후 1시 30분 상암월드컵경기장에서 2025 코리아컵 결승전이 열린다. 광주FC가 사상 첫 결승에 진출하면서, 광주에서 우등 고속버스 61대가 출발한다. 예매 결과, 총 7천여 명의 광주 팬들이 상암에 집결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그동안 FA 컵으로 더 알려진 코리아컵은 대한축구협회에 등록한 프로, 세미 프로, 아마추어 구단이 모두 참가해 올해 최고의 축구팀을 가리는 전국 단위의 최상위 컵대회다. 아마추어팀이 참여하는 1라운드 지역 예선을 시작으로, 세미 프로팀과 K리그2 팀이 참가하는 2라운드를 거쳐 3라운드부터 K리그1팀이 본격적으로 출전한다. 올해 광주FC는 수원FC와의 16강전에서 승부차기 끝에 승리하더니, 8강전에서는 강호 울산 HD를, 4강전에서는 부천 FC를 격파하며 구단 사상 첫 결승에 진출했다.
결승 상대는 올 시즌 K리그1 우승을 차지한 전북 현대. 단판 승부로 승자를 가리는 이번 경기는 호남선 더비로도 일컬어진다. 그동안 우승을 밥(?) 먹듯이 한 이웃집 부자팀 전북 현대와는 달리, 단 한 번도 우승을 차지한 적이 없는 광주로선 이번 경기에 임하는 각오가 더욱 절실하다.
코리아컵 우승을 노리는 이정효 감독
더욱이 이정효 감독의 J리그 이적설, 내년 시즌 상반기 영입 금지 징계, 주축 선수들의 입대와 이적 등 구단을 둘러싼 불확실성으로 가득하기에, 어쩌면 지금의 멤버와 감독이 함께하는 '정효볼의 라스트 댄스’가 될지도 모른다. 그 위기감이 선수단과 팬들을 하나로 묶고 있다.
지난 4년, 광주FC는 불가능의 반대말이 무엇인지 스스로 증명해 왔다. 제한된 예산과 얇은 스쿼드라는 한계 속에서도 확고한 팀 철학을 심었고, 팬들에게 납득 가능한 경기력을 선사했다. 이번 코리아컵 결승전은 그 4년의 결실을 확인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설령, 준우승에 그친다 해도 실망할 필요는 없다. 이 경기는 광주FC라는 구단이 지역민과 호흡하고, 명문 구단으로 도약하기 위한 하나의 거대한 통과의례이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도 이번 결승전은 나만의 축구 역사 한 페이지를 매듭짓는 하나의 계기가 될 것 같다. 코리아컵 결승전이라서 더욱 그렇다.
1997년 이맘쯤이었다. 코리아컵 전신인 FA컵 결승전이 광주 무등경기장에서 열렸다. ‘전남 드래곤즈’와 ‘천안 일화 천마’가 맞붙은 이날 경기에, 당시 고등학교 2학년이었던 나는 반 친구들과 서포터스를 조직해 경기장으로 향했다. TV 속 붉은 악마 응원에서 보고 배운 화장지 폭탄과 종이 꽃가루를 친구들과 함께 준비했고, 나름의 응원 구호도 연습해 뒀다.
경기장 한구석에 아무렇게나 자리 잡은 우리는 ‘족보’ 없는 응원으로 현장 분위기를 살려보려고 노력했고, 그런 우리의 어설픔이 재밌었던지 당시 TV 중계 화면에 잡히기도 했다. 우리의 응원 덕분일까. 이상윤, 신태용 등을 앞세운 천안 일화에 맞선 전남 드래곤즈는 당대 최고의 캐논 슈터 노상래의 결승 골로 1:0으로 승리하며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우승의 감격에 젖은 우리는 시상식으로 어수선한 틈을 타, 그라운드로 난입했고, 아무런 제지를 받지도 않고, 정정당당하게(?) 선수들의 사인을 받았다. 아직도 내 보물 상자에는 현장에서 받았던 국가대표 수비수 김태영 선수와 주전 수비수 김정혁 선수의 사인지가 고이 모셔져 있다.
최다 원정 응원으로 힘을 보탤 빛고을 서포터스
어느덧 27년이 지났다. 내 인생에 또 한 번의 코리아컵 결승전을 앞두고 있고, 응원 준비를 단단히 하고 있다. 그동안 축구를 사랑하던 앳된 소년은 로컬 팀의 다큐를 찍고, 글을 쓰며 주요 의사를 결정하는 사외 이사직 등을 수행하는 중년이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뜨거운 열정으로 축구를 사랑한다. 축구만의 매력이 무엇일까. 사실 나도 잘 모르겠다. 굳이 말하자면, 첫사랑 같은 순수한 애틋함이 아닐까. 축구를 모르는 분들과도 한 번쯤은 그 첫사랑의 감성을 공유하고 싶다.
이번 주 토요일 오후 1시 30분, 상암으로 향하는 팬분들도 아마도 같은 마음일 터다. 그리고 지든 이기든 이 노래를 함께 부를 것이다. “내 심장의 첫 번째! 그 이름은 빛고을~!! 너밖에 몰라, 미칠 것 같아, 알레 알레 알레오, 알레 알레 알레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