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에 갱년기는 처음이라] ep10. 갱년기, 잠시 전원을 꺼두셔도 좋습니다.
고장 난 우리 집 냉장고 Ⓒ갱년기뽀기미
# 고장 난 냉장고
20년 사용한 냉장고가 심상찮다. 온도조절이 잘 안되고, 없던 소음이 발생하고, 냉장고 문을 열었을 때 내부를 환하게 밝혀야 할 불빛이 들어오지 않는다. 아무래도 고장이 난듯하다. 전원을 껐다 다시 켜봐도 증상이 나아지지 않는다. 내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인 것 같아 A/S 서비스를 신청했다. 출장 서비스를 기다리는 동안 온라인에 고장 내용을 검색해 무엇이 문제인지 찾아보았다. 비슷한 상태에 관한 여러 정보를 보니 아무래도 새 제품으로 바꿔야 하나 싶다. 손은 이미 새 냉장고 구매 정보를 검색하고 있다. 마음속에서는 이미 오래된 냉장고를 보낼 준비를 하고 있다. 보낼 때도 됐지. 그래 오래 썼다.
냉장고는 그렇다손 쳐도 냉장고 안에 든 식품들이 아까웠다. 제철이라고 맛 좋은 식자재를 잔뜩 사서 보관 중인데 서비스 전까지 다 상해서 버리게 될까 봐 걱정됐다. 다행히 A/S기사님이 예정 시간보다 일찍 와 주셨다.
“고객님, 큰 문제는 없고요. 냉장고 냉각팬에 먼지가 많이 쌓여서 그래요. 냉각팬에 먼지가 쌓이면 냉각 효율이 떨어지고 소음이 발생합니다. 소음은 그래서 생긴 거고요. 냉장고 내부 전구는 교체해야 합니다. 제가 전반적으로 점검 한 번 하겠습니다.”
하시더니 짧은 시간 뚝딱 점검을 끝내고 문제를 해결하셨다.
“수고하셨어요. 이제 문제가 없는 건가요? 오래 써서 못 고치려나 해서, 이제는 바꿔야 하나 했어요.”
“새 제품으로 바꿔 주시면 저희야 좋죠. 근데 깨끗하게 잘 쓰셔서 한참 더 쓰셔도 되겠습니다. 가끔 냉장고 뒤쪽 냉각팬 청소만 한 번씩 해주십시오. 청소 전에는 반드시 전원을 차단해 주셔야 부품을 보호하고 고장을 예방합니다”
# 건강검진
국민건강보험공단 미수검 독려 안내 Ⓒ갱린이뽀기미
국민건강보험공단의 미수검자 수검 독려 안내 메시지가 왔다. 해마다 건강검진 알림을 수차례 받아도 여러 이유로 제때 못하고 지나쳤다. 아무래도 올해 연말 일정도 건강검진 시간을 쉬 내어주지는 않을 듯하다. 이미 검진을 포기한 것이나 마찬가지로 미뤄두고 있는데 병원엘 가지 않으면 안 될 일이 생겼다. 생전 없던 고관절 통증 때문에 다리에 힘 풀리고 제대로 서 있질 못하겠는 게 아닌가? 급한 대로 인터넷에 검색해 보고 알만한 여러 방법을 동원해 봐도 증상이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며칠 쉬면 괜찮을 것 같다가도 당장 다음날 종일 서서 진행해야 할 행사 때문에 더는 지체할 수 없었다. 급히 병원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온갖 생각이 끼어들었다. 머릿속에서는 다가올 일정들 걱정에 입퇴원 시뮬레이션을 그렸다가 급기야 내 몸도 늙는다는 생각이 들어 서글퍼졌다.
복잡한 생각으로 꼬이고 꼬이는데 어느새 병원이란 곳엘 도착했다. 평소 워낙 건강해서 일 년이 지나도 병원에 갈 일이 거의 없다. 그래서 아~주 오랜만에 요구하는 검사 몇 가지를 하는데 물정 모르는 사람처럼 어색했다. 검사를 마친 후 진료 의사와 대면해서 앉아 증상과 발생 시기를 설명하고 상담을 했다.
“혹시, 최근에 한 자세로 오랜 시간 앉아 있거나 한 일이 있나요?”
있지, 있지. 아무래도 12월 출판을 앞둔 책 작업을 하다가 몸에 무리가 온 모양이다.
“큰 문제는 없습니다. 일시적인 증상이나 좀 지켜볼 필요는 있습니다. 될 수 있으면 며칠 움직이지 마시고 쉬셔야 합니다. 주사와 약, 물리치료 처방해 드릴 테니 상태 지켜보시고 일주일 후에 다시 보겠습니다.”
며칠 쉬어야 한다는 의사의 말에 얼마 전 점검 받은 우리 집 냉장고 생각이 났다.
‘그러지. 내 몸도 오래 썼네. 그렇구나.’
어쩌면 갱년기는 인생의 건강검진, 서비스 점검 같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래 썼다고 내다 버릴 일이 아니라 점검만 잘 해줘도 더 깨끗하고 건강하게, 오래도록 더 애정을 담아 쓸 수 있는 거지. 내 몸 건강검진, 관계의 점검, 일하는 양, 삶의 우선순위 점검 등…. 그러기 위해서는 잠시 전원을 꺼두고 쉬어야 한다는 것. ‘소중한 시간을 위해 잠시 전원을 꺼두셔도 좋습니다’라는 유명한 광고 문구가 있다. 그래야 냉장고 부품이 손상되지 않는 것처럼 갱년기를 지나는 내 속도 건강하게 지킬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