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시대와 인문학의 지평
인류는 지금 AI시대로 가는 폭주열차에 한결같이 몸을 싣고 있다. AI산업의 디테일에 취약한 필자이기에 그저 신기한 눈빛으로 지켜볼 뿐이지만, 우리들 일상에도 많은 도움을 주는 기제인 것만은 사실이다.
며칠 전 서울 출장을 다녀왔다. 익숙치 않은 도시여서 빠듯한 일정 맞추기가 쉽지 않았지만 챗봇이 알려주는 교통정보 때문에 그런대로 시간을 아껴가며 무난히 업무를 소화했다.
하지만 한때 작가의 삶을 살아온 먹물근성 때문인지, AI시대 인문학의 지평은 어디일까? 하는 생각을 해보곤 한다. 필자 같은 어설픈 회의론자들이 늘 과학과 기술의 진전을 가로막는다는 자격지심과 함께.
인간은 '파토스적'인 것과 '디오게네스적'인 것의 혼성 속에서 살아간다. 쉽게 말하면 가슴이 시키는 일과 머리가 시키는 일의 갈등 속에서 선택을 고민하는 호모사피엔스라는 얘기다.
이 때문에 최적의 것과, 최적이진 않지만 가치가 내재된 차선의 어떤 것을 선택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하지만 AI는 결코 그런 결정을 할 리가 만무하다. 또한 AI의 초고속 진화에 무지해서 하는 말이겠지만, 생성형 AI의 알고리즘이 그 혼성의 질문들을 던진들 과연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실제로 필자가 이 질문을 챗GPT에 물었더니, 개념을 설명하고 각론적 접근방법을 제시하는 답변에 그쳤다.
AI가 노래를 만들고, AI가 그림을 그리고, AI가 소설을 쓰고, AI가 영상을 만드는 매직을 우리 모두가 경이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이 신세계를 우리가 살아가야 할 당연한 미래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 전환기적 변화는 인류가 맞은 또 한차례의 산업혁명에 다를 바가 없다.
인류가 맞이한 몇 차례의 산업혁명은 문명의 발전과 함께 당대에 예상하지 못한 후과를 낳는다는 사실을 역사속에서 체험했다. AI시대로의 진화는 또 어떤 후과를 가져올 것인지에 대한 우려는 그래서 헛된 기우가 아닐 것이다.
문·사·철의 종합 지성인 인문학의 토양 위에서 살아가는 창조계급들의 AI시대에 대한 고민은 아직 적나라하게 드러나지 않고 있다. AI로 쏠려들어가는 급류가 워낙 거세기 때문이다.
광주는 문화중심도시로의 진화를 오래전부터 표방해왔다. 이 슬로건은 어느날부터 AI첨단 산업도시로 일거에 바뀌었다. 그러다 보니 그 공접면을 찾기 위한 인문학적 고민도 아직은 전무하다. 이제라도 시작했으면 좋겠다.
왜? 광주는 문화중심도시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