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재준의 책읽기] 삶의 정도

< 윤석철 지음, 위즈덤하우스 >
인간다운 삶, 주체적인 삶
지난 시절의 과오가 여전히 나를 머뭇거리게 한다. 지금의 정체된 삶은 어제의 씨앗에서 비롯된 것이다. 젊은 시절 꿈이 있었지만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어떠한 노력을 했던가! 실천이 없는 생각은 단지 거추장스러운 관념일 뿐이다. 작은 실패에 속절없이 주저앉고, 가벼운 상처에도 아파할 뿐 아무런 반성과 성찰을 얻지 못했다. 그때 나는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 왜 그리 나태함에 빠져 열정적 노력을 하지 못했을까? 자학이 깊어질수록 삶은 황폐함으로 가득할 뿐이다. 다시 한 번 내 삶의 태도를 바로잡아야 한다. 삶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주체적으로 만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세상은 불필요한 정보와 헛된 욕망으로 넘쳐나고 있다. 인간관계는 무미건조하고, 이해타산만 따진다. 행복한 삶을 위하여 무수히 얽혀 있는 복잡함을 벗어버리고, 간결한 인생을 추구해야 한다. 저자는 우리의 간결한 삶을 위해서는 “필요한 것은 빼지 않고, 불필요한 것은 넣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목적함수와 수단매체라는 두 가지 개념으로 인간의 삶을 분석하고, 삶에 필요한 모든 의사 결정이 가능하다고 설명한다. 목적함수란 인간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노력의 방향이며, 수단매체란 이를 달성하기 위해서 필요한 수단적 도구(불가능한 일을 가능하게 하거나 낮은 생산성을 높여줄 수 있는 것)라고 정의하고 있다. 즉, 내일 거둘 열매를 목적함수, 오늘 심을 나무가 수단매체라는 것이다. 저자는 다양한 수단매체의 사례를 들고 있다. 물질적 수단매체와 관련하여 18세기 중반 영국과 인도를 비교한다. 영국은 산업혁명 때 개발된 방적기를 사용하고, 인도는 물레를 이용하여 실을 뽑았다. 방적기와 물레의 생산성 차이가 두 나라의 경제력 차이와 군사력 차이를 만들어낸 것이다. 결국 영국은 인도를 3백 년간 식민지로 지배했다.
정신적 수단매체 사례로는 중앙아메리카 대륙을 관통해서 대서양과 태평양을 연결하는 파나마운하 건설 과정을 들 수 있다. 1880년에 프랑스가 처음 운하 건설을 시도했지만, 밀림과 산맥으로 이루어진 험난한 지형과 말라리아 때문에 엄청난 손실을 입고 물러나야 했다. 뒤이어 1910년대에 미국이 파나마운하 건설에 뛰어들었다. 미국은 말라리아 전염 매개체가 모기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주변 웅덩이를 모두 없애고 청결을 유지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기울인다. 또 높은 산맥 지대를 수평선에 맞춰 깎아내려면 천문학적인 비용을 들여야 했다. 이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계단식으로 갑문을 설치하고 물을 순차적으로 채워서 배를 움직이는 기술을 도입해 성공을 거두었다.
리더십은 자기희생적 지혜를 수단매체로 하여 성장한다. 알렉산더 군대는 동방 원정길에 사막에서 목마름에 시달렸다. 때마침 수하가 물을 구해와 알렉산더에게 바쳤다. 하지만 알렉산더는 자기 혼자 물을 마실 수 없다며 물을 사막에 버린다. 알렉산더의 리더십은 군대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힘이 되었다.
인간이 사회 공동체 안에서 잘 적응하고 원만하게 지내기 위한 사회적 수단매체는 서독의 빌리 브란트 수상이 모범을 보여줬다. 브란트 수상은 폴란드에서 제2차 세계대전 때 독일 나치 정권에 희생당한 유태인들의 추모비 앞에서 화환을 바치며 무릎을 꿇는다. 진심을 담은 수상의 모습은 국제 사회로부터 신뢰와 지지를 얻는 데 성공했다.
이러한 수단매체를 고도로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별을 동경하는 불나방의 열정”과 “투자하고 인내하며 기다리는 능력”, 그리고 “자연 탐구”이다.
목적함수는 외부로부터 주어지는 것이 아니고, 자기가 스스로 정립하는 것이다. 의미 있는 목적함수는 부단한 자기 수양과 미래 성찰을 통해 축적된 교양과 가치관의 결정이다. 목적함수가 정립되었다면 이를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수단매체는 우회 축적 방법으로 형성하고 축적해야 한다.
그동안 나에게 세상은 회색빛 그림자였다. 다가갈수록 점점 멀어지고, 불투명한 미래였다. 과거에 얽매이고, 고갈된 정신으로 다시 시작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하지만 후회 없는 인생을 위하여 확고한 목표를 정하고, 부지런히 실행에 옮겨야 한다. 무언가를 시작하려면 늘 아픔과 고통을 수반하기 마련이다. 스스로 고단함을 이겨내야 한다. 어쩌면 삶이란 갈팡질팡 속에서 자신의 길을 찾는 여정인 듯싶다.
어느 신문에서 연령대별 인생살이와 관련한 의미심장한 내용을 다룬 삽화를 본 적이 있다. 만약 10년 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묻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다. 20대는 “공부를 죽어라 했을 텐데”, 30대는 “인생의 목표를 다시 세울 텐데”, 40대는 “나에게 맞는 일을 찾을 텐데”, 50대는 “모든 걸 새로이 시작할 텐데”, 60∼70대는 “10년만 젊어도…”. 우리가 삶을 목표와 방향을 놓쳐버리면 후회 가득한 인생으로 점철되기 마련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