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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피디의 불펀한 생각] ep.10 왜곡된 여론조사, 풀뿌리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들다

김태관| |댓글 0 | 조회수 117

 


때이른 지방선거 여론조사가 연일 범람하고 있다. 유권자가 후보의 면면과 정책을 숙고하기도 전에, 신뢰도가 의심스러운 수치들이 여론을 주도하는 판국이다. 특히 특정 정당의 공천이 곧 당선으로 직결되는 광주, 전남과 같은 지역에서는 이 현상이 더욱 심각하게 나타난다.


민심을 반영해야 할 여론조사가 본연의 기능을 상실하고, '명태균'이라는 이름으로 상징되는 정치 브로커들의 손에 민심을 '제조'하는 도구로 전락한 것은 아닌지. 이 검은 커넥션이 풀뿌리 민주주의의 근간을 훼손하는 현실을 직시하고, 근본적인 대안을 모색할 시점이다.


1. ‘저품질·고편향’의 늪: 신뢰도의 구조적 균열

현재 선거 여론조사 시장은 공급자(조사기관)와 수요자(정치인)의 이해관계가 맞물려 기형적으로 팽창한 구조다. 이 과정에서 비용이 저렴하고 속도가 빠른 ARS(자동응답시스템) 방식이 압도적인 비중(제21대 대선 기준 65.2%)을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ARS 조사의 극히 낮은 응답률(제21대 대선 평균 5.4%)은 필연적으로 정치 고관여층 혹은 강성 지지층의 과대 대표라는 편향을 낳는다. 응답률이 낮을수록 표본의 대표성은 무너지고, '무응답 편향(non-response bias)'은 심화된다.


이를 보정하기 위한 '가중치 보정(weighting)'은 통계적 불안정성을 가중시키는 또 다른 함정이다. 예컨대, 과소 표집된 특정 집단(예: 20대 여성)에 높은 가중치가 부여될 경우, 소수의 응답이 전체 결과를 좌우하는 왜곡이 발생할 수 있다. 만약 특정 후보의 지지층이 조직적으로 결집하여 의도적으로 특정 인구 집단으로 응답한다면, 가중치 적용으로 인해 지지율이 인위적으로 부풀려질 위험성이 상존하는 것이다.


2. ‘명태균 비즈니스’의 횡행: 선거운동 도구로의 전락

여론조사가 선거판을 유리하게 조성하는 최고의 선거운동 카드로 변질되면서, 그 그림자 속에서 '검은 커넥션'이 암약하고 있다. 현행법상 후보자는 공표용 여론조사를 의뢰할 수 없지만, 실제로는 여론조사기관이 언론사를 매개로 사실상의 '청부 여론조사'를 공표하는 편법적 '컨설팅 비즈니스'가 횡행한다. ARS 조사기관 대표들 스스로 '의뢰성 여론조사'가 전체의 70~80%에 달한다고 증언할 정도다.


이러한 커넥션은 노골적인 조작은 아닐지라도, 유리한 결과가 나오도록 '설계'하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 후보 선호도가 높은 특정 시간대에 조사를 집중하거나, '인지도 조사'라는 명목으로 후보의 이름과 경력을 유리한 쪽으로 작성한 다음, 반복 노출시켜 유권자에게 각인시키는 등, 규제를 교묘히 우회하며 여론을 호도한다.


3. 풀뿌리 민주주의의 위기: 기울어진 운동장과 1당 독점의 고착화

신뢰도 낮은 여론조사의 폐해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지방선거, 특히 기초 지자체 선거는 인지도와 조직력이 막강한 현직 단체장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이들에게 여론조사는 자신의 과오를 덮고 기득권을 유지하는 편리한 방패막이가 될 수 있다. 정책이나 공약보다 이미지가 중시되면서 지지율 1위 후보 캠프에선 '가만히 있는 것이 최고의 선거운동'이라는 말이 공공연히 나돌 정도다.


이러한 환경에서, 일당 독점이 고착화된 호남권 지방선거는 여론조사 결과에만 의존하는 언론의 무비판적 보도 행태와 맞물려, 만성적인 1당 독점의 악순환을 재생산한다. 유능하고 참신한 정치 신인을 갈망하면서도, 실제로는 여론조사라는 견고한 장벽을 쌓아 이들의 진입을 가로막는 모순적 현실이다.


4. 대안 모색: 품질 중심 전환과 투명성 강화

'제2, 제3의 명태균'을 잉태하는 이 비정상적인 선거 환경을 타파하고 여론조사가 본연의 역할을 다하기 위해서는 전면적인 개선이 필요하다.


첫째, 여론조사 품질 중심의 전환과 투명성 강화가 시급하다. 언론은 지지율 숫자의 등락을 중계하는 '경마 저널리즘'의 관성에서 벗어나, 추세적 흐름을 심층 분석해야 한다. 단순 지지율 조사에서 나아가 정책 수요와 의제 발굴, 후보자 역량 검증으로 무게 중심을 옮겨야 한다. 또한 응답률과 접촉률이 현저히 낮은 조사는 보도에서 배제함으로써, 저품질 조사를 자연히 퇴출시키는 시장 정화 기능을 수행해야 한다.


둘째, 제도적 규제를 강화하고 조사 환경을 개선해야 한다. 휴대전화 가상번호와 같은 공적 자원의 무분별한 남용을 막기 위해, 선거구별 '가상번호 총량제' 도입 등을 검토해야 한다. 또한 낮은 응답률을 극복하기 위한 모바일 조사 방식의 확대 및 응답자 인센티브 제공 등 근본적인 조사 환경 개선 논의가 시급하다.


셋째, 정치권의 자성과 공천 제도 개선이 필수적이다. 정치권은 신뢰도가 부족한 여론조사에 공천이나 단일화 같은 중대한 결정을 맡기는 관행을 즉각 중단해야 한다. 특히 경선이 본선이나 다름없는 호남의 경우, 공천권을 주민에게 돌려주는 '주민 참여 경선'을 제도화해야 한다. 이를 통해 유능하고 참신한 후보가 여론조사라는 허들에 좌절하지 않고, 지역 현안을 살피며 풀뿌리 민주주의를 실현할 기반을 구축해야 한다.


여론조사가 민주주의의 나침반으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데이터가 아닌 '신뢰와 객관성'이라는 대원칙 위에 바로 서야 한다. 유권자에게 후보에 대한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고, 이들의 인물 됨됨이와 정책을 숙의할 시간을 보장하는 토대 위에서만 여론조사는 비로소 제 기능을 다할 수 있다. 지금처럼, 인지도 조사, 인기투표 방식의 여론조사로 민심을 왜곡하는 악순환을 끊어내야 한다. 그 검은 그림자를 걷어낼 때, 비로소 지방선거는 진정한 풀뿌리 민주주의 축제의 장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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