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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재준의 책읽기] 닥터 지바고

류재준| |댓글 0 | 조회수 69

보리스 파스테르나크 지음, 이동현 옮김, 동서문화사


혁명과 내전, 그리고 운명적 사랑


사랑은 참으로 경이롭다. 혁명의 소용돌이와 죽음의 공포가 가득한 상황에서도 사랑을 멈추지 않는다. 이념의 혼돈에 휩싸여도 운명적 사랑은 오히려 빛을 더한다. 사랑은 두려움을 벗어나는 도피처이자 무거운 현실을 이겨내는 묘약이다. ≪닥터 지바고≫는 수많은 은유와 상징, 의도적인 우연의 연속, 시와 산문의 교차 서술 등 독특한 형식을 취하고 있다. 사건의 전개도 복잡하고, 개연성도 다소 떨어져 내용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아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가의 대표적 작품임에도 찬사와 혹평이 엇갈린다. 급기야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소련 공산주의의 처참한 실상을 알리기 위해 지원했다는 음모론까지 등장하기도 했다. 실제로 1956년 발표된 이 작품은 10월 혁명과 혁명의 주역인 인민을 비판했다는 이유 때문에 러시아에서는 출판되지 못하고 이탈리아에서 먼저 출판되었다.


배경이 되는 러시아는 러일전쟁(1904), 제1차 세계대전(1914), 러시아혁명(1917)을 거치면서 급격한 사회 변혁을 맞이한다. 특히 러시아혁명으로 국가 체제가 바뀌고 민중의 삶과 생활 양식이 송두리째 뒤바뀐다. 소설은 혁명과 내전의 한복판에 있던 지바고의 처절한 삶과 극심한 혼란 속에서 피어나는 라라와의 애절한 사랑을 담고 있다. 어쩌면 둘의 관계를 통해 러시아의 운명을 투영하는 것 같다.


라라의 불행은 집안의 후견인을 자청하고 엄마의 정부가 된 코마롭스키 변호사로부터 비롯된다. 라라는 소녀 시절부터 모욕적인 강제 추행을 당한다. 크리스마스 축제가 열린 밤에 코마롭스키를 총으로 저격하지만 실패한다. 줄곧 정신적 고통에 시달리던 라라는 새로운 생활을 위해 남편 파샤와 유리아틴의 중학교 선생님으로 부임한다. 그런데 파샤는 곧 육군사관학교에 자원하여 그녀의 곁을 떠난다. 라라는 간호사 시험에 합격한 후 파샤를 만나기 위해서 전선의 이동 야전병원을 전전한다.


지바고는 한때 대부호의 집안이었지만 가산을 탕진한 후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고 친척의 도움으로 의과대학에 진학한 후 의사가 되었다. 집안의 파산과 아버지 죽음 뒤에는 코마롭스키의 교활한 음모가 있었다.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지바고는 군의관으로, 라라는 간호사로 만나서 서로 애틋한 감정을 느끼지만, 이미 가정이 있던 두 사람은 엇갈린 운명을 걷는다. 이후 지바고는 빨치산에게 납치되어 그들과 함께 생활한다. 의사로서 발진티푸스, 이질 등 질병 치료에 전념하다가 감시가 소홀해진 틈을 타 도망쳐 나온다. 고향으로 다시 돌아온 지바고는 라라의 집으로 향한다.


지바고는 라라를 중학교 졸업반 때부터 짝사랑해왔다. 지바고는 “그때 당신이 나의 내부에 불러일으켰던 매혹의 세계를, 나의 전 존재 속에 흘러들어와 이 세상의 다른 모든 것을 통찰할 수 있는 열쇠가 되었지” 하며 그녀에게 솔직한 마음을 드러낸다. 지바고에게 라라는 러시아의 또 다른 얼굴이다. “수난자이자 고집쟁이, 미치광이며 맹목적 사랑인 러시아, 결코 예견할 수 없는, 영원히 위대하고 파멸적인 위험이 도사린 모험에 뛰어들지 않고는 못 배기는 러시아인 것이다. 이 세상에 살면서 삶을 사랑하는 것을 얼마나 달콤한 일인가!” 


내전의 와중에 지바고의 아이를 임신한 라라는 코마롭스키의 속임수에 빠져 시베리아 극동으로 떠난다. 그녀가 떠나자 지바고는 점점 미쳐갔다. 그리고 라라와 혁명을 기록한다. 지바고는 “숲은 언제 보아도 움직이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영원히 성장하고 끊임없이 변화하며 그 변모를 확인할 수 없는 사회의 삶과 역사가 우리의 눈에 움직이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그러한 까닭이다”며 인간이 역사의 거대한 변화를 이해하고 해석하기 어렵다고 단언한다. 또한 “혁명은 활동적인 사람들, 편협한 광신자, 자기를 규제하는 천재들에 의해 수행된다. 그들은 몇 시간 또는 며칠 사이에 이전의 질서를 엎어버리고, 이 변동은 몇 주일 몇 년이나 이어지면, 대변동으로 이끈 편협한 정신은 그로부터 몇 십 년 몇 백 년 성물처럼 숭배의 대상이 된다”고 혁명의 폐단을 지적한다. 어느 날 이미 전사했다고 생각했던 라라의 남편 파샤가 찾아온다. 파샤는 라라에 대한 변함없는 사랑을 드러내지만 다음날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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