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5년 광주에서 열린 전국체육대회의 추억
가을을 맞아 전국 각지에서 각종 축제와 행사가 열리는데 광주에서도 충장축제, 서창억새축제 등이 한창이고, 부산에서는 오늘 제106회 전국체육대회 개막식이 열린다. 그 더웠던 여름 지나고 바야흐로 축제와 행사의 시즌이 돌아온 것이다.
< 1965년 전국체육대회를 위해 신설된 실내체육관 출처. 광주광역시 >
그런데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60년 전인 1965년 10월 5일 광주에서는 제46회 전국체육대회가 열렸다. 당시 광주에는 5만 5천 가구에 35만 명의 시민이 살고 있었다. 광주 중심 시가지에 제대로 된 관광호텔 하나 없던 시절, 지방의 도시에서 열린 이 대형 행사에 전국 11개 시,도와 재일교포 등 13,182명의 선수단이 참여하다 보니 숙박시설이 턱없이 부족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광주시는 27개 동 1,845가구의 일반 가정 민박을 가동해서 10,779명의 선수단을 수용했다. 전체 선수단의 82%를 민박을 이용해 숙식을 해결한 것이다. 민박 숙박비는 한 사람당 하루 180원이었고, 광주시에서는 참여한 민박 가정의 주부들을 모아 교양과 위생, 요리강습을 했다.
전국체육대회에서 민박 제도는 1963년 전주에서 열린 제44회 전국체육대회 때, 선수의 약 70%를 일반 민가에 묵게 하는 민박 제도를 대규모로 시행했고, 1964년 인천대회에서도 민박 제도가 시행되었지만, 그 불편함으로 인해 여관으로 숙소를 옮기는 일이 다반사였다 한다. 그러나 광주의 민박에 묵었던 타 지역 선수단은 광주의 인심과 음식 맛에 정이 들어 광주의 민박 활용은 대성공으로 평가받았다.
광주에서 전국체육대회가 처음 열린 것은 전쟁 중이던 1951년 광주일고 운동장에서 조병옥 박사 등이 참석해서 개막식을 진행했던 제32회 대회로 이 대회는 서울이 아닌 지방에서 열린 최초의 전국체육대회였다. 그 이후 지방에서 열린 전국체육대회는 1957년 부산에서 열린 대회로 그 이후 대회는 각 시도를 번갈아 가면서 열리게 되었다.
1965년 10월 5일부터 10월 10일까지 엿새 동안 치러진 제46회 전국체육대회를 위해서 광주에는 다양한 시설들이 새로 들어섰다 지금의 기아 챔피언스 필드 야구장 자리에 있었던 공설운동장은 2만석 규모의 스탠드를 갖춘 종합운동장으로 새로 건설되었고, 지금의 광주문화재단 시민문화관 자리에는 서울 장충체육관 이후 지방에서는 처음으로 개설된 실내체육관이 들어섰다.
그런데 이 성공적인 대회는 매우 불행한 사고를 기록했다. 10월 5일 개회식 당일 아침, 새벽부터 개회식을 보기 위해 많은 관중이 몰리면서 정문 철제 출입문이 부서지고 앞사람이 넘어지자 뒤쪽 사람들이 계속 밀려 들어와 여러 명이 압사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14명이 죽고 약 100여 명의 부상자가 발생했지만 대회는 강행되었고 각종 기록이 만들어졌다. 이 사건은 이후 전국체육대회나 대형 행사 때마다 안전 대책 강화의 중요성을 알리는 사례가 되었다.
이 해 광주에서 민박을 동원해 성공적으로 열린 전국체전 덕분인지는 모르겠으나 그 이듬해인 1966년과 1968년에 걸쳐 광주를 노래한 대중가요가 대거 등장했다.
1966년과 1968년 사이에 만들어진 광주노래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살펴보자.
최갑석 – 눈물실은 호남열차 (1966)
비둘기자매 – 광주역의 밤비 (1966)
정광중 - 광주 부루스 (1966)
오정란 - 광주 아가씨 (1966)
신행일 - 호남 나그네 (1967)
안다성 - 광주 에레지 (1967)
송춘희 - 무등산아 물어보자 (1968)
최윤정 - 무등산 처녀 (1968)
최정자 - 무등산 처녀 (1968)
하춘화 - 남해의 연가 (1968)
황선아 - 내 고향 무등산 (1968)
이렇게 10곡이 넘는 노래들이 이 시기에 나왔는데 짧은 시기에 이렇게 많은 노래가 만들어진 경우는 그렇게 흔치 않다. 그중에 정광중이 부른 ‘광주 부루스’를 살펴보자
이 노래를 작사한 정득채는 이 노래 외에도 1961년 강준희 작곡, 김득수 노래의 ‘무등산 아가씨’를 작사한 작사가다. 가수 정광중은 신세기 레코드에 소속된 가수 지망생으로 그렇게 많이 알려진 가수는 아니다.
노래 가사를 살펴보면 당시에도 충장로는 네온불이 휘황찬란한 번화가였고 젊은 연인들의 데이트 장소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충장로에서 식사를 하고, 차를 마시고 인근의 사직공원이나 광주공원을 찾아 거니는 젊은이들의 모습이 그려지는 노래다. 그리고 1959년에 문을 열었던 무등산 산장호텔의 인기도 당시까지는 여전했던 모양이다.
두 번째로 살펴 볼 노래는 오정란의 ‘광주 아가씨’다
이 노래를 작사한 반야월은 '울고 넘는 박달재' '단장의 미아리 고개' '소양강 처녀'등 5,000여 곡을 작사한 우리 대중가요사의 산 증인 작사가로 유명하다. 이 노래를 작곡한 이인권은 1949년에 히트한 ‘귀국선’을 부른 가수로도 유명한데, 1955년부터 가수 활동은 접고 작곡에 전념해서 특히 수십 편의 영화음악을 작곡했다. 노래를 부른 가수 오정란은 이인권 작곡가 사무실 전속 가수로 여러 노래를 취입했으나 히트곡을 내지는 못했다.
무등산의 명물로 진달래와 딸기가 등장하고, 지금 광주 사람들이 주로 먹는 섬진강 물도 등장한다. 작사가가 광주의 식생에 대해 연구해서 노랫말을 만들었고, 미래의 일을 미리 유추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많은 노래들이 1966년과 1968년 사이에 많이 발표된 것은 1965년 10월에 열린 제46회 전국체육대회에서 보여 준 광주 사람들의 정과 인심, 그리고 음식 맛의 영향이 컸다는 확신이 든다.
1965년 이후 광주에서 열린 전국체육대회로는 1977년 제58회 대회가 있고 1987년에는 광주직할시 승격 기념으로 제68회 대회를 유치했다. 그리고 1993년 제74회 대회, 2007년 제88회 대회까지 광주에서는 총 6차례의 전국체육대회를 성공 개최했다. 그리고 이번에 2028년 제109회 대회를 유치하려고 한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2028년 광주에서 전국체육대회가 열리게 되면 60년 전에 광주시민들이 보여주었던 그 정과 인심에 얹어 무엇을 더 보여 줄 수 있을 것인지 지금부터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정광중 ‘광주 부루스’ 링크 주소
https://youtu.be/UeAv6qvR-MQ?si=_GVw2ylAIILI-JD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