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주에서 보낸 여름휴가 1편] 소설 ‘범도’와 항일무장투쟁학교 ‘범도루트’를 소개한다
소설 ‘범도’와 항일무장투쟁학교 ‘범도루트’를 소개한다.
어느덧 을사년이다. 120년 전 을사년, 1905년은 암울했다. 오죽하면 ‘을시년스럽다’는 말이 생겼을까? 을사늑약 이후로 몹시 쓸쓸하고 어수선한 날을 맞으면 그 분위기가 마치 을사년과 같다고 해서 ‘을시년스럽다’라는 말이 생겼다고 한다. 2025년 을사년, 연초부터 을씨년스럽다. 그러나 우리 모두, 꿈과 희망을 노래할 수 있는 한 해가 됐으면 좋겠다.
- 범도_방형석 장편소설 -
소설 ‘범도’를 소개한다. 작년 5월 경이었다. 삼겹살에 소주 한잔하는 자리였다. 창권은 “최근 보현이가 소설 ‘범도’를 보내줘서 읽기 시작했는데 큰 울림이 있다. 너도 한번 읽어 봐라”고 하며 ‘범도’를 소개해 줬다. 당시는 육군사관학교에 있는 홍범도 장군의 흉상을 철거한다고 나라가 시끄러울 때였다. 작금의 상황을 빗대어 보면 그 사건이 내란의 시작이었다.
소설 ‘범도’를 읽기 시작했다. ‘범도 1-포수의 원칙’ 632쪽, ‘범도 2-봉오동의 그늘’ 672쪽, 총 1,302쪽이다. 제법 두껍다. 방현석의 장편소설 ‘범도’는 역사적 사실에 충실한 소설이다. 숨겨진 역사를 되찾았고 잊혀진 인물을 되살렸다. 믿기지 않은 사건도 있었지만 실제 상황인 경우가 많았다. 두 번째, 1권의 주무대는 북녘, 2권은 만주다. 특히 함경북도와 만주 지명을 찾아보며 그 루트를 찾아가는 재미가 쏠쏠했다. 홍범도의 함경북도 진격 루트는 한국전쟁 때 미국이 패퇴했던 장진호 전투를 역으로 추적하는 것 같기도 했다. 세 번째, 모든 주인공의 삶은 파란만장했고, 죽음은 장렬했다. 그리고 유훈은 언제나 비장했다. 인물이 등장할 때 묘사가 섬세했고 역사적 배경 설명은 철저했다. 그러나 인물이 사라질 때는 한순간이었다.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전쟁터에서 동지를 빨리 망각하려고 했던 것일까? 네 번째, 화려한 묘사나 미사여구보다는 간결한 표현, 현장성 중심의 글이 좋았다. 방현석 작가가 13년 동안 현장에서 조사․채록․분석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다섯 번째, 나와 동명이인이 소설에 등장했다. 설악산의 전설적인 명포수 이쾌의 딸, 간장 종지도 한 방에 맞힌 명사수, 훈련대장 ‘이진’이었다. 김알렉산드라가 처형당하기 전에 풀어준 시계를 차고 있던 여전사 진포씨, 밀정에게 암살당하는 장면까지 그녀를 쫓아가며 글을 읽어갔다.
어느날 창권은 ‘만주회’ 카톡방에 ‘범도루트’ 일정표를 올렸다. 만주회는 대학 시절 민주화운동 동지 모임이다. ‘만주’는 나름 거창한 의미가 있다. ①만주(滿洲)벌판을 휘달리던 선조들의 기상을 계승한다. ②가득찰 만(滿), 술(酒), 건전한 음주 문화 조성에 앞장선다. ③만주(萬株) 정도는 기본, 글로벌 우량주 소유했으면 좋겠다. ④세계 평화를 기원하며 만방(萬邦)으로의 주유(周遊)하자. 여러 회원이 관심을 보였으나 창권과 창권의 딸 자영, 만원, 나 4명이 범도루트에 참가하기로 했다. 2024년 8월 13일부터 18일까지 5박 6일의 여정, 개인적으로 광복절에 백두산 천지와 장백폭포에 오르는 일정이 가장 맘에 들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따라나선 길이었으나 가는 곳마다 나의 무지에 대해 알게 됐다. 우리 역사가 외면하고 있는 만주벌판의 사건과 영웅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선열들의 무장독립전쟁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얻었다.
- 북녘을 배경으로 찰칵, 방형석 작가와 함께 -
범도루트의 ‘범도’는 그냥 홍범도의 이름에서 따온 것은 아니었다. 범도의 의미는 첫 번째 김좌진(金佐鎭, 1889~1930), 서일(徐一, 1881~1921), 안중근(安重根, 1879~1910), 홍범도(洪範圖, 1868~1943) 장군과 같은 독립전쟁영웅들이 걸었던 길. 두 번째, 일제강점기 피눈물로 살았던 보통사람(凡人)들의 삶. 세 번째는 지금은 사라진 백두산 범(虎)들의 길을 의미한다. 그 길은 장대했다. 민중가요 ‘광야에서’의 ‘광활한 만주 벌판’을 한없이 느꼈다. 한편 그 당시 선열을 생각하면 아픔과 분노, 서러움과 눈물의 길이었다. 훈춘과 도문, 연길과 용정, 하얼빈, 그리고 대련과 뤼순까지 약 3천km를 넘는 대장정이었다.
범도루트의 길잡이 방현석 작가는 버스에서 열정적인 역사 수업을 진행했다. “한국의 독립은 수많은 무장독립전쟁을 통해 얻은 결과입니다. 우리는 수많은 무장독립전쟁 중 극히 일부만을 배웠습니다. 한국의 역사교육에서 그 전쟁을 지웠기 때문입니다. 선열들의 무장독립전쟁은 1900년대 초 국내진공작전에서부터 1945년까지 무려 40년 이상 지속된 전쟁이었습니다. 참여자도 최대 수십만에 이를 것입니다. 김좌진의 북로군정서, 서일의 대한군정서, 홍범도의 대한독립군을 비롯해 북간도에만 40여 개의 단체가 활동했습니다. 서로군정서는 임시정부 산하 독립군 부대로 편제됐고, 1919년 5월 신흥무관학교를 통해 무장독립전쟁을 준비했습니다. 보통 독립전쟁하면 1920년 청산리, 봉오동 전투만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이후에도 수많은 독립전쟁이 만주 지역에서 일어났고 일본 정규군과의 전투에서 혁혁한 전과를 올렸습니다. 특히 1929년 11월 3일에 봉기한 광주학생독립운동의 영향으로 만주에서 무장독립전쟁은 확대재생산됐습니다. 1931년 가을 ‘무기 획득을 위한 투쟁’, 1933년도 ‘어랑촌 전투’, ‘대전자령 전투’, 1939년 ‘도천리 전투’까지 무려 202차례 무장독립전쟁이 있었습니다”
다음주에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