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성현의 로컬푸드 탐방기 9] 배가 익어가는 고장, 나주에 가다 – 나주시로컬푸드직매장 빛가람점
나주로컬푸드직매장 ⓒ배성현
유독 길었던 이번 연휴, 명절 선물로 무엇을 할까 고민하며 9월을 보내고 빨간 날이 가득한 연휴를 지내고 나니 10월이 훌쩍 지나버린 듯하다. 집에 들어온 선물을 보니 올해 유독 배가 좋다. 7구짜리 배는 한 개에 900g~1100g 까지 큰 중량을 자랑한다. 여러 지역에서 진상품처럼 모인 배들을 놓고 재미로 식구들과 블라인드 테스트를 해봤다. 나주배 맞추기, 신고배 품종 맞추기에도 도전! 정답률은 약 50% 정도였다. 달큰한 나주배, 아직도 배 중에서는 으뜸으로 치는 산지인 나주는 전국 배 재배면적의 약 20퍼센트를 차지하는 배의 고장이다. 봄이면 배꽃이 피고, 가을이면 배 박스가 줄지어 나가고, 겨울이면 배즙이 당근에 나오는 동네니까!
전라남도 대부분의 시·군 로컬푸드 매장은 농협을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지만, 나주는 농업진흥재단이 직접 운영 주체로 참여해 독자적인 직매장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오늘 소개하는 “나주시로컬푸드직매장(빛가람점)”은 그 대표적인 매장으로, 지역 농가 관리부터 판매까지 나주농업진흥재단이 주체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매장이다. 재단은 나주축협 하나로마트, 나주농협 하나로마트, 영산포농협 하나로마트, 광주남구로컬푸드 등과 협력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나주시에서는 풍부한 농산물을 소비자에게 저렴한 가격으로 내놓기 위해 로컬푸드 거래를 장려하고 있으며 단위 농협 로컬푸드 매장들도 독자적으로 로컬판매자들과 직매를 돕고 있다. 무엇보다 혁신도시라는 안정적인 상주인구 확보를 통해 로컬푸드 매장이 많아지게 된 이유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오늘 찾아간 매장에서도 아이를 데려온 어머니들과 유모차 고객들을 쉽게 만나볼 수 있었다.
언제나 그렇듯 입구를 반겨주는 로컬푸드의 화훼 농가 부스, 가을이라 국화가 가득 준비되어 있다.
명절이라 한산한 매장, 농가들도 작업을 쉬는 곳이 있어 생각보다 메인 매대는 비어있는 곳이 많았다.
배의 고장답게 배 식혜, 배약주가 먼저 맞는다. 나주에서 난 다양한 막걸리들이 구비되어있다.
나주에서는 주력으로 신고배를 키운다. 그 외에도 추황배, 원황배, 신화배, 창조배, 화산배, 황금배 등이 재배되며 그 외에도 다양한 품종들이 실험을 통해서 개발되고 있다. 박스로 사기는 부담스러운 새로운 품종들을 아주 저렴한 가격에 사시사철 만나볼 수 있는 건 나주 로컬만의 특권이라고 하겠다. 무엇보다 엄마들이 소위 “김칫거리”를 찾아 헤맬 때 못난이 배, 김치용이라는 이름으로 매대에서 우릴 기다리고 있으니 김치용 배를 따로 주문할 필요가 없다. 그냥 먹어도 맛있는 가정용 사이즈면서 가격도 부담 없으니 못난이 배, 김치용 배도 찾아보는 것도 재미다.
매대엔 박스로 되어있는 고급 선물용 배까지 있으니 항상 배를 만날 수 있는 진정한 ‘배의 고장’임을 확인시켜준다. 요즘엔 배와 함께 샤인머스켓이 추석 국룰 과일이 되었으니 달달한 산지직송 포도도 함께 사보시길 추천드린다.
나주 하면 빼놓을 수 없는 홍어! 부스가 따로 마련되어 있다. 모두 국산 홍어라 믿고 먹을만하다. 부위별로 준비되어 있고, 초장 등이 함께 들어있어 소비자 편의성을 높였다. 홍어 외에도 나주에서 기르는 민물장어 손질팩, 진도수협에서 온 반건조생선, 각종 건어물 등이 우수한 퀄리티로 납품되고 있다. 냉동이지만 손질이 되어있어 편리한 해산물들이라 더 눈이 갔다. 나주에서 제조되는 김, 만두 등 2차 가공 생산품도 다양했다.
아이들을 기르는 도시라 그런지 유기농 쌀떡뻥이 종류별로 나열되어있다. 우리밀 부스가 따로 있는 것도 인상깊었는데 각종 농협, 협동조합 등을 통해서 유통된 우리밀 제품이 다양했다. 특히 이 떡뻥은 나주에서 만든 것이다. 아기들을 키우며 엄마들이 얼른 장을 보고 가기에 좋은 매장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외에도 다양한 나주산 제조 식품들이 있으니 눈여겨 보시라.
"씻어서 말린 들깨", 혹시라도 또 씻는 수고를 하며 맛을 버릴까봐 걱정하는 글씨가 괜히 찡해 남겨둔다. 맞아. 할머니들은 그랬다.
이 계절이 되면 벼를 수확하기 전에 더 바빠지던 할머니. 집을 나서다가도 비가 오면 황급히 뛰어가 널어놓은 것들을 거둬들이던 수건 쓴 할머니의 뒷모습, 자식 입에 들어갈 메주콩, 녹두, 팥, 들깨, 참깨, 고추 하나 같이 이 작고 성가신 것들을 그 시절엔 모두 직접 농사 짓고 거두고 갈무리했다. 꼭꼭 묶은 봉지 속엔 말린 것, 삶은 것, 다듬은 것, 씻은 것들만 넣어주던 할머니의 마음, 그걸 이제 와서 사려고 보니 정정했던 할머니의 허리가 굽어지도록 너무 많은 사랑을 받았구나. 그걸 깨닫는데 너무 많은 시간이 흘렀음을 느낀다. 사랑하는 자식을 위해 수고하던 거친 손, 철이 되면 고추를 빻고 기름을 짜러 방앗간을 향하던 할머니 생각이 나는 계절, 로컬푸드 매장에서 나는 그제야 그 계절을 맞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