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는 기억의 흔적
유래와 철학적 배경
모리스 알바흐스는 프랑스 사회학자로, 집단기억(collective memory)이라는 개념을 정립했다. 그는 기억이 개인 내부에서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 도시 공간, 건축, 기념물 같은 외부의 흔적에 의해 지속되고 공유된다고 보았다. 이는 도시는 집단의 정체성을 담는 ‘기억의 그릇’이라는 발상으로 이어진다.
알도 로시는 건축가이자 도시이론가로서 도시의 건축이라는 저서에서 도시를 시간 속에서 켜켜이 쌓인 기억의 구조물’ 보았다. 그는 광장, 묘지, 기념비 같은 집단기억의 고정된 흔적’ 도시의 정체성을 형성한다고 강조했다. 발터 벤야민은 아케이드 프로젝트에서 파리의 아케이드와 거리 풍경을 역사의 흔적이 집적된 도시적 기억의 장치’ 분석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도시는 기억의 흔적’이라는 말은 철학자·도시학자·사회학자들이 공유하는 인식에서 비롯된 표현이라 할 수 있다.
< 광주 상무관 사진: ACC청년기자단 디마스 >
기억의 흔적이 남아 있는 실제 사례
▶ 5·18 민주화운동의 흔적
옛 전남도청 건물, 전일빌딩 245, 상무관, 망월동 구묘역, 금남로 등은 단순한 건축물과 공간이 아니라 민주화 투쟁의 기억을 담은 장소로 보존·재생되고 있다. 이곳뿐만 아니라 광주 도시 전체가 1980년 5월 관련 기억의 지도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독일 베를린 장벽 흔적
독일 통일 후 대부분 철거되었지만, 일부는 의도적으로 남겨져 있다. 장벽 자리는 지금도 포장도로 선, 기념관, 그래피티 예술 등으로 분단과 통일의 기억을 도시 공간 속에 새기고 있다.
▶ 서울 청계천 복원
개발로 덮였다가 다시 열리면서, 산업화 시기와 근대화의 흔적, 동시에 공동체 기억을 복원하는 사례로 언급된다. 서울을 관광하는 외국인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장소 중의 하나다.
▶ 로마의 고대 유적
고대 로마 시대 유적들이 현대 도시 속에서 공존하며, ‘도시란 시간 속에서 기억이 퇴적된 결과물’이라는 점을 직접 보여주고 있다.
< 일제강점기에 세워진 전남방직 사진: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
우리 고장의 기억의 흔적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그렇다면 우리가 살고 있는 빛고을 광주에선 오랜 기억의 흔적을 5.18 민주화운동의 흔적 외에 어디에서 찾아볼 수 있을까? 양동시장 근처와 발산마을, 양림동, 서방시장 또는 말바우시장 근처, 임동 전방‧일신방직 부지, 광산구 고려인 마을, 북동과 동명동 등에서 찾아볼 수 있을까?
남구 양림동과 서구 양동 발산마을에 오랜 도시의 흔적이 일부 남아 있고, 북구 임동 전방‧일신방직 부지는 일제강점기 때의 근대 문화유산과 광복 이후 일부 시설물과 건축물만 원형 원위치, 부분 원위치, 부분 이축, 신축 재현 등으로 보존 계획을 가지고 있다.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50년 이상을 광주에서 산 나는 우리 도시의 흔적을 많이 기억하고 있다. 교육대 건너편엔 미나리 방죽이 있었고, 현재 문흥지구는 문산마을로 불리며 포도밭이 있었다. 동신고 건너편 주조장 자리엔 약국이, 그리고 달동네가 있었다. 산수도서관은 소나무가 많은 동산 자리였고, 금남공원 자리엔 멋진 한국은행광주지점 건물이 있었다.
광주 사직공원엔 동물원이 있었는데, 초등학교 4학년 때 누나 덕분에 새끼 호랑이를 품에 안아 본 잊지 못할 추억도 가지고 있다. 초등학교 때부터 영화 보기를 좋아했던 나는 무등극장, 제일극장, 아세아극장, 계림극장, 시민관, 아카데미극장, 태평극장, 남도극장, 광주극장, 현대극장 등 가보지 않은 극장이 없었다. 이제 추억어린 극장 중 유일하게 광주극장만 원형 그대로 남아있다.
도시의 미래를 지속 가능하게 디자인하기 위해선 리더의 의지와 함께 체계적인 준비가 필요
도시의 미래 디자인은 단순히 건축이나 인프라 배치 차원을 넘어서 사람, 환경, 기술, 문화가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방향으로 설계되어야 한다. 최근 전 세계 도시계획 담론에서 주목하는 핵심 요소는 •사람(보행과 생활 중심) •환경(녹지·탄소중립) •기술(스마트·데이터 활용) •구조 (다핵·15분 도시) •문화(과거와 미래 연결) •회복력(위기에 강한 도시)이다. 현 민선 8기에 마련된 2040 광주광역시 도시기본계획엔 보다 더 나은 시민들의 삶을 위해 빛고을 광주의 도시 가치와 철학, 비전이 얼마나 담겨져 있을지 자못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