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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플광24』


2시간 13분, 그 아름답고 소중한 시간

채문석| |댓글 2 | 조회수 150

2025년 9월 21일 일요일, 6년의 기다림 끝에 마라톤 출발선에 다시 섰다. 소풍을 앞둔 초등학생처럼 전날 밤부터 설렘에 뒤척였다. 아침 6시 20분, 서울 광화문 광장에 도착하니 가을 공기가 코끝을 간지럽혔다. 이른 아침의 맑은 기운, 선선한 바람이 온몸을 깨우는 듯했다. 몸을 풀며 가볍게 달리니 심장이 쿵쾅거렸다. '과연 완주할 수 있을까?' 하는 불안과 '해낼 수 있다!'는 기대감이 뒤섞여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짜릿한 전율이 흘렀다.

 


0km ~ 5km: 인생의 봄, 가볍게 날아오르다


이번 대회에는 하프마라톤 9,000명, 10km 11,000명, 총 2만 명이 참가했다. '클릭 경쟁'을 뚫고 온 젊은 열기 덕분인지 출발선은 활기로 가득했다. 모두의 얼굴에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최고 기록을 세우겠다'는 야심이 봄꽃처럼 피어 있었다. 드디어 출발 신호와 함께 거대한 인파가 물결처럼 쏟아져 나갔다.


차 없는 텅 빈 도로를 뛰니 가슴이 뻥 뚫리고, 날아갈 듯 가벼운 발걸음은 솜털처럼 느껴졌다. 옆을 스쳐 가는 젊은 주자들을 보며 '나도 아직 젊다'고 속으로 외치기도 했다. 주변을 둘러볼 여유까지 만끽하며 청계천 도로를 달렸다. 전태일 기념관, 광장 시장의 막걸리 추억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갔다. 한 달 전 방문했던 유명 치킨 회사 직영점 앞을 지나면서는 '치킨 풀 코스' 메뉴를 떠올리기도 했다. 아직은 모든 게 가벼웠다. 폭풍 전야의 평화처럼, 쥐어 터지기 전까지는 고통을 모른다는 듯이 말이다.


5km ~ 10km: 인생의 여름, 뜨겁게 달아오르다


5km 지점을 지나자 몸이 서서히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해가 뜨고 땀이 비 오듯 흘러내리니 호흡은 점점 거칠어졌다. 대회 분위기에 휩쓸려 초반 5km를 평소보다 훨씬 빨리 달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욕심을 버렸어야 했는데...', '내 페이스대로 갔어야 했는데...' 뒤늦은 후회가 파도처럼 밀려왔다.


이때 눈앞에 나타난 오르막 고갯길은 숨통을 조여 왔다. 주변에서도 고통의 신음이 터져 나왔다. 그 순간,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나타난 급수대에 모두가 하이에나처럼 달려들었다. 이온 음료와 물이 담긴 컵을 낚아채듯 받아 목을 축이고, 빈 컵을 바닥에 내팽개치는 모습은 마치 TV 중계 속 선수 같았다. '아직 힘이 남아있어! 달려보는 거야!' 스스로에게 주문을 외웠다. 이 구간은 뜨거운 태양 아래 더 큰 성취를 위해 땀 흘려야 하는 인생의 여름과 같았다. '포기'라는 단어는 그림자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10km ~ 15km: 인생의 가을, 꾸준함으로 버티다


절반을 달렸다. 숨은 더욱 가빠지고 다리는 납덩이처럼 무거워졌다. 이제는 속도가 아니라 꾸준함이 중요한 구간이다. '관성'에 의지해 발을 내딛고, 어떻게든 남은 길을 완주하겠다고 다짐했다. 저 멀리서 들려오는 자원봉사자들의 '힘내세요!'라는 응원 소리가 귓가에 박혔다.


주변을 둘러보니 나처럼 힘들어하는 사람, 걸음을 멈춘 사람도 보였다. 나 역시 속도가 떨어지고 있음을 직감했다. '포기'라는 단어가 떠오르지 않도록 소리를 지르고 헛기침을 하며 힘을 끌어모았다. '차 없는 한강 다리를 언제 달려보겠어?', '구름이 정말 예쁘네', '오늘 나오길 잘했다' 등 주변 환경에 '과몰입'하며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었다. 그렇게 ’Keep on running'을 외치며 지친 몸을 이끌었다.


15km ~ 21km: 인생의 겨울, 의지의 싸움


이제 다리는 시멘트처럼 무겁고, 짧아진 숨은 가슴을 옥죄는 듯했다. '여기서 멈출까?' 유혹의 속삭임이 끊임없이 들려왔다. 특히 17km 지점은 '이만 멈추자'는 다리와 '여기까지 왔는데 포기할 수 없다'는 머리의 처절한 싸움이 벌어지는 고비였다.


주변 풍경은 눈에 들어오지 않고, 그저 앞사람의 등만 보고 기계처럼 달렸다. 마치 컨베이어 벨트 위의 제품처럼, 내 의지와 상관없이 몸뚱이가 앞으로 나아가는 듯했다. 체력은 바닥났고, 허기까지 밀려왔다. 급식대에서 주는 바나나 한 조각으로 마지막 힘을 쥐어짰다. '6년 전 기록은 버리자. 완주만이라도 하자!' 마지막 1km, 죽을힘을 다해도 속도는 나지 않았다.


그러다 100m 앞에 결승선이 보이자, 갑자기 숨어 있던 '허세'가 튀어나왔다. 힘든 내색 없이, 폼 나게 뛰는 것처럼 각을 잡고 뛰어보자고 마음먹었다. '그래, 인생은 폼생폼사야!' 결승선을 통과하는 순간, 2시간 13분이라는 기록과 함께 새로운 봄이 찾아왔다. '다음 대회는 더 철저히 준비해서 잘 뛰어 보자'며 미래를 기약했다.


사람들은 종종 나이가 들면 도전을 주저한다. '체력이 예전 같지 않다', '이제는 늦었다'는 이유로 스스로를 가둔다. 하지만 이번 마라톤을 통해 다시 배웠다. 나이는 결코 장벽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다시 출발선에 서는 용기다. 그리고 그 용기를 내는 순간, 인생은 언제나 새로운 봄을 선물한다.



2 댓글
저질체력 09.25 20:39  
와우 마라톤 현장에서 저도 뛰는 줄 알았습니다. 숨도 가쁘고 포기하고 싶단 생각도 들겠다 했다가. . . 하여간 생생한 현장기입니다. 부럽습니다. 마라톤 도전이라니. . .
-저질체력 올림-
채문석 09.26 14:14  
마라톤에 저질 체력은 없습니다.  조금씩 늘려가면 완주가 가능하게 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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