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도시성장 획기적 모멘텀 놓친, ACC 건립 프로젝트 ‘유감’
구 도청 부지에 집중 건립된 아시아문화전당 프로젝트를 필자는 지금도 비판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편이다. 광주 도시 곳곳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놓쳤다는 생각 때문이다.
김영삼 정부 때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보상책으로 처음 거론됐던 계획은 도청 원형보존 및 인근지역을 센트럴파크로 조성한다는 방안이었다. 필자는 지금도 그 계획이 옳았다고 본다. 그렇게 추진됐다면 도청 원형 보존을 둘러싼 갈등도 없었을 것이고, 도심 공원이 태부족한 광주의 생태 지형 차원에서도 훌륭한 대안이 되었을 게 틀림없다.
노무현 정부 출범 후 ‘문화수도 광주’ 조성이 현안으로 부상되고, 문화수도 조성의 얼개를 협의하기 위해 이창동 장관 정책보좌관실이 주관한 첫 자문회의에 필자도 참석했었다. 우선 참여한 인사 구성부터 필자를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광주라는 특정 도시에 문화인프라를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를 협의하는 자리였는데 도시나 건축 전문가가 한 사람도 없었다. 미술, 미술비평, 영화연출, 시인 등등의 사람들이 대부분의 구성원이었다.
< 파리 퐁피두 센터 © Julien Fromentin >
당시 미술비평을 하는 누군가가 퐁피두센터와 같은 복합문화예술회관을 건립하는 안을 제시했고, 별다른 반대 없이 자문회의는 갈무리됐다. 그 후 5개원의 역할과 기능을 테마로 문화전당 건립안이 구체화됐을 때 필자는 ‘그랑데 파리 프로젝트(파리 대 개조계획)’을 떠올렸고, 5개원을 구도심화가 진행중인 5개 구에 각각 분산 건립해 도시에 새로운 활기를 부여하자는 의견을 기회가 되는대로 제시했었다.
퐁피두 대통령 정부에서부터 시작해 미테랑 정부에서 완결된 ‘파리 대 개조계획’은 슬럼화되기 시작한 파리의 도심 공간을 문화인프라 조성을 통해 리뉴얼하자는 것이 근본 취지였다.
< 그랑드아르슈 © 2025 Renzo Piano Building Workshop >
이에 따라 파리 시 정부는 세계적 건축가들을 초빙한 국제 콤페를 통해 구 중앙시장 인근 홍등가였던 지역에 퐁피두센터(렌초 피아노‧리처드 로저스 공동설계)를, 도축장이었던 지역에 라빌레트 복합문화공원(베르나르 츄미의 폴리)을, 센 강변의 랜드마크로 아랍세계 연구소(장 누벨 설계)를, 라데팡스 신시가지 지역에 높이 110미터 대형 개선문인 그랑드아르슈(요한 오토 폰 스프렉켈센 설계) 등등을 도시 곳곳에 분산 건립했다. 이들 5개 대형 건축물들은 지금도 파리 관광의 핵심 거점 역할을 하고 있다.
지금도 필자는 5개원 기능의 집합체인 아시아전당이 광주 곳곳에 랜드마크 역할을 할 수 있는 5개의 문화인프라로 분산 건립됐다면 지금 광주의 모습은 어떠했을까? 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파리 대개조계획의 사례가 애초에 거론되지 못했던 것은 도시나 건축 전문가가 문화중심도시 조성 담론에 끼어들 자리조차 없었던 데서 기인한 것으로 풀이해볼 수밖에 없다.
필자 개인의 의견이긴 하지만, 지방 자치정부의 수수방관과 중앙정부의 몽매한 프로젝트 추진 과정으로 인해 광주 도시성장의 획기적인 모멘텀을 놓친 셈이다.
도시의 운명은 늘 그렇게 무지한 정치나 확증 편향적 관료주의에 의해 떠밀려 다닐 때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