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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재준의 책읽기] 청년이여, 마르크스를 읽자

류재준| |댓글 0 | 조회수 52

우치다 타츠루, 이사카와 야스히로 지음/ 김경원 옮김/ 갈라파고스 


만들어진 세상 너머를 꿈꾸자 


어떤 시대를 막론하고 청춘들은 언제나 고달프고 애처로운 존재다. 이미 만들어진 세상은 새로운 세대에게 불편한 대상이다. 기득권 세력은 자신만의 견고한 성을 구축하고 지배논리를 만들어놓는다. 완고한 기성 질서는 어지간해서는 변하지 않으며 새로운 세대를 길들인다. 젊은 시절 불의의 세상에 저항하던 사람들도 나이가 들수록 기존 질서에 순응하며 길들여진다. 결국 불의는 참아도 불이익은 못 참는 가치 혼란을 겪으며 기성세대로 편입된다.


몇 년 전부터 대학생에게 독서 특강을 맡게 되었다. 나름 열심히 강의를 준비하지만 정작 학생들은 별 반응이 없다. 아마도 학점이나 시험과 무관한 수업이기에 그저 편하게 생각하는 듯싶다. 요즘 대학생에게 시급하고 중요한 관심사는 취업이다. 누구나 선망하는 곳에 취업하고, 남들보다 더 잘살고 싶어 하는 욕망들이 넘쳐난다. 취업을 위한 스펙을 쌓는 데 열중하다 보니 다양하고 깊이 있는 독서활동은 소홀할 수밖에 없다. 자본주의시대에 독서 활동은 그저 사치에 불과한 걸까? 자본주의 경쟁에 억압된 인간성을 회복하고 공동체 정신을 일깨우는 새로운 세상을 열어갈 수는 없을까?


군부독재 시절 마르크스를 감히 언급할 수 없었고 그의 저서는 모두 금서였다. ≪자본론≫을 출간한 출판사 대표는 국가보안법으로 처벌받기도 했다. 1990년대 동독과 서독이 통일하고, 구소련 등 사회주의 체제가 무너지면서 마르크스주의는 실패한 사상으로 간주되었다. 하지만 21세기 초 세계금융위기를 겪으면서 그의 이름은 다시 부각되었다. 이런 현상은 사실 그다지 새삼스럽지 않다. 마르크스는 인간 소외, 사회 불평등, 부익부 빈익빈, 자본주의 국가 간 전쟁 등 자본주의의 폐해를 이미 19세기에 예견했으며, 그저 비판에 그치지 않고 대안 사회를 제시했다. 이 때문에 자본주의 너머의 세상을 꿈꾸는 이들에게 한결같이 적잖은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작가는 일본 청년들 사이에서 점점 잊혀져가고 있는 마르크스에 대한 이해를 돕고자 ≪청년이여 마르크스를 읽자≫를 썼다고 한다. 두 저자가 편지를 주고받는 형식으로 마르크스의 저서 ≪공산당 선언≫ ≪유대인 문제≫ ≪헤겔 법철학 비판 서문≫ ≪경제학-철학 수고≫ ≪독일 이데올로기≫ 등을 소개하고 있다.


마르크스는 노동을 통해 인간다움이 완성된다고 보았지만 산업사회는 사람을 노동하는 노예로 전락시켰다. 노동을 그 자체로 보지 않고 돈으로 매매되는 상품으로만 여길 뿐이다. 그는 인간 소외와 부조리를 우려하면서 암담한 체제를 근본적으로 변혁하고, 새로운 세계를 열고자 했다. ≪공산당 선언≫에서 마르크스는 자본가로부터 착취당하고 소외받던 노동자들이야말로 근본적인 정치 혁명과 사회 혁명을 이뤄내는 주체가 될 수 있다고 선언한다. 그리고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고 외친다. ≪공산당 선언≫을 쓸 당시 마르크스는 겨우 29세였다.


≪독일 이데올로기≫에서는 “공산주의는 우리에게 만들어져야 할 상태도, 현실이 따라가야 할 미래형의 이상도 아니다. 우리가 공산주의라고 부르는 것은 현재의 상태를 폐기하는 현실적 운동이다.” 공산주의는 자본주의의 여러 모순을 해결해가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등장한 것이라고 진단한 것이다.


마르크스는 정치, 경제, 철학, 사회 전반에 뛰어난 사상 체계를 구축했다. 게다가 마르크스는 한발 더 나아가 사회 변혁가로 열정적으로 활동했다. 그는 <포이어바흐에 관한 테제>에서 “철학자들은 세계를 다양하게 해석할 뿐이다. 중요한 것은 세계를 바꾸는 것이다”라고 사변적인 철학자들을 준엄하게 비판한다.


우치다 타츠루 교수는 “마르크스는 내 문제를 해결해주지 않지만 마르크스를 읽으면 스스로의 문제를 자기 손으로 해결해야 함을 깨닫는다”고 말한다. 내가 살아가는 사회 체제가 나를 숨 막히게 한다면, 스스로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식으로건 부딪혀봐야 한다는 뜻이겠다. 아마도 저자는 무기력한 일본 젊은이들의 모습에서 깊은 절망을 느낀 듯싶다. 사정은 우리나라도 별반 다르지 않다. 우리 시대 청년들이 세상에 빠르게 적응하는 대신 기성 체제에 대해 끝없이 의심하고 저항하면서 새로운 세상을 꿈꾸기를 간절히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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