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현의 세상유감] 칼날 위에 선 시대
종일 날이 서 있다.
사람들에겐 늘 웃는 얼굴이지만 내 마음속 숨은 칼날은 늘 나를 벤다.
현대차와 LG의 미국 배터리공장 건설 현장에 기습적인 불법 체류 단속이 있었다.
우리 작업자들이 쇠사슬에 묶여 끌려가는 걸 보니 무참하다.
정치인들의 성비위 사건이 연일 화제다. 무엇보다 문제는 추행 이후의 대처가 어떠했는가?
그 소식을 들으며 우리의 정치계가 참담하다.
지역의 문화 예술은 또 어떤가?
‘문화도시’라는 수식어는 화려하다. 하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창작자는 늘 임대료에 치이고, 행정 보고서에 치이고, 시민의 무관심에 치인다.
지원 사업은 많다지만, 창작자를 위한 것이 아니라 성과 지표를 위한 것이다.
지역에서의 창업은 또 어떠한가?
‘로컬 비즈니스’라는 이름으로 포장하지만, 현실은 늘 하루하루 버텨내는 생존기다.
죽자 살자 버티는 것, 그것 말고 무슨 단어가 더 있을까.
이 모든 것들이 칼날이 되어 밤이면 잠 못 들며 자해 중이니, 어찌 날이 서 있지 않겠는가?
사실 세상을 베고 싶은 이야기들이 이 것 뿐일까?
그동안 지역에서 내가 당한 무수한 이야기들을 모두 까발리고 싶지만, 오늘은 이만 참기로 한다.
지역에서 창업을 한다는 것은 언제나 ‘을’이나 ‘병’이어서 저절로 눈치라는 것을 보게 되고, 세상을 뒤엎을만한 힘이 내겐 없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런 이야기를 나눌 누군가도 없어, 가끔 ‘여기를 떠나야 하나?’ 고민하기도 한다.
진심과 진정성보다는 성과 지표가 다인 지원 사업들 속에서, 나의 ‘플레이광주’ ‘플레이제주’ 같은 돈 안 되는 '공익성 로컬 문화 예술 사업은 접어야 하나?' 생각하기도 한다.
< 연합뉴스TV 현장쏙 유튜브 캡쳐 >
최근 화제가 된 문장 ― “남들 다 폐기 해 ㅂㅅ들아.”
그 낙서가 나에게 던지는 말로 느껴져 놀랐다면, 역시 나의 마음 속 칼 때문일까?
“남들 같으면 진즉 폐기했을 거야, ㅂㅅ아.”
그 조롱이 귓가에 맴돌았다.
어쨌든 세상은 녹록지 않고 사는 것 역시 만만하지 않다.
오늘도 나는 칼을 세우고 무엇을 벨 것인가를 고민한다.
이 칼로 음식을 만들 것인가, 아니면 종이라도 자를 것인지, 아니면 세상에 칼을 빼 들어야 할지.
우리는 미국이란 나라에 무엇을 들이밀어야 할까?
보복 대신 그 칼로 음식을 지어 바쳐야 하는 것일까?
성비위 정치인들에게는 어떻게 하는 것이 맞을까?
그 칼은 정치인들의 손톱 발톱을 자르며 비위를 맞춰야 성공할 수 있다는 말인가?
칼은 언제나 손에 달렸다.
세상을 베느냐, 나를 베느냐.
광주의 로컬 창업자들은 오늘도 자신을 베며 웃고 있다.
‘칼은 방향이 없다. 쥔 자가 어디를 겨누느냐에 달려 있다.’ 장자(張兆)의 말이다.
내 칼 끝이 향하는 곳은 어디일까?
그 곳이 언젠가 세상을 바꾸는 시작이 되기를....
오늘도 나를 다독인다. 그리고 바라고 또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