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윤상의 시대유감] 다시 시작된 세상
바야흐로 극우의 세계화가 시작된 느낌이다. 시작은 미약하지만 끝은 창대하리라의 격언이 이번 경우에는 틀리기를 바라지만,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다고 하지 않았던가.
신민족주의의 대두와 자국우선주의의 최종 장면은 시오니스트인 네타냐후가 벌인 표지 사진과 같은 비극이 되지 않을까 싶다. 참고로 사진은 가자지구를 게토화 시켜 버린 후 굶주림으로 최후를 맞은 27살의 청년 아델 마디의 모습이다.
지난 7월 20일 치러진 일본 제27회 참의원 의원 선거에서 천왕의 친정을 주창한 극우정당인 참정당이 15석을 차지했다. 미국 타임지는 이를 두고 “일본의 미니 트럼프의 부상으로 트럼프 미대통령이 전 세계 사람들의 원초적인 본성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고 평가했다.
트럼프의 MAGA가 전 세계 극우들의 표어가 되었다는 뜻일 것이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슬로건은 사실 트럼프의 리메이크에 불과하다. 오리지널은 로널드 레이건의 ‘Let's Make America Great Again’이다.
러시아의 푸틴, 중국의 시진핑, 이스라엘의 네타냐후, 이탈리아 멜로니, 이 정도 급은 아니더라도 차후 권력이 될 수 있는 영국의 나이젤 페라지, 프랑스의 르펜 등을 거론하다 보면 지구촌이 당장이라도 세계대전을 하지 않은 것이 기특할 정도다.
전쟁이 무기를 들고 살육을 해야 할 필요는 없다. 살육 대신에 걸고 나온 것이 소위 ‘관세’라는 마법 카드다.
미국 극우가 품어온 40여 년의 야망이 트럼프의 관세로 표출된 것이나 다름없다. 세계 69개 국가를 대상으로 ‘삥뜯기’나 하는 미국을 보고 있으면 제국 몰락의 서막이 보이는 듯해서 짠하기까지 하다.
로마가 하루아침에 망하지 않았듯이 그렇다고 미국이 그렇게 허무하게 망하지는 않겠지만.
극우의 대두 현상이 대한민국이라고 다를까? 지난해 있었던 내란의 밤부터 현재까지 있는 일련의 사태를 쭉 보고 있노라면 예전부터 알고 지낸 대한민국이 맞나 하고 의심이 들 정도다.
극우들의 일제시대의 정당화 내지 합법성 인정,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테러리스트 비하, 독재자들에 대한 무한 찬양, 기독교 원리주의 신봉, 다문화 가족에 대한 배타적 시선, 민주주의 운동가들을 향한 빨갱이 모욕 등 이루 헤아릴 수가 없다.
특히, 일본 대사관 옆 위안부 소녀상 앞에서 대형 일장기를 흔들었던 모습은 어떻게 설명이 가능할까? 개인적으로는 이들의 세력화에 법적 제재가 가능한지 알고 싶었다.
국가보안법을 폐지할 수 없다면 법을 개정해서 극우의 반국가적 행동으로 규정할 수 없을까 하는 단순한 생각에서다. 이런 개인적 궁금증으로 지역 유력 정치인에게 전화를 걸어 물어봤다. 국가보안법을 개정해서라도 반국가 단체의 범위를 넓혀서 처벌할 수는 없는지와 국민의힘을 해산시킬 수 있는지에 관한 것이었다.
예상과 다르게 둘 다 불가하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법으로 옥죄는 것이 최선은 아닐 것이고 현실적으로 맞지 않는다는 취지였다. 과거 통진당 해산의 경우도 있지 않으냐는 질문에도 통진당 경우는 구성원 전체가 개입된 사례이고 국민의힘은 일부 세력의 일탈이니 당 해산은 힘들다는 의견이었다.
그는 덧붙여 지난하지만 국민의 선택이 이 모든 난제를 해결해 줄 것이다고 마무리했다. 전화를 끊고 한동안 생각에 잠겼다. 의문은 한 가지였다.
‘과연 그럴까?’
그의 설명이 당을 대변하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현재 당을 대표하는 정치인의 수사와는 언뜻 결이 달라 보이는 것 같으니 말이다.
극우는 세계를 다시 새롭게 시작하려는 듯 보인다. 무솔리니와 히틀러가 보여줬던 그 살육의 맨얼굴을.
새로운 질서가 이어진 지 80년이 지난 지금, 인류가 지켜온 진보의 인권가치를 지키려 노력하지 않으면 인류는 서로 죽고 죽이는 역사를 반복할 것이다.
괴벨스의 이 한마디가 대한민국 극우들의 현주소가 아니기를 바라본다.
“조작되는 자들이 자기 자신의 자유의지로 행동하고 있다고 자신할 때에 선전은 가장 효과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