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수의 광주 최초를 찾아라] 광주최초 얼음(氷)기록을 찾아서
< 각종 문헌에 나타난 광주 얼음 관련 흔적 >
염천지하(炎天之夏)다. ‘아이스께키 얼음과자’ 어린 시절 한여름 나무상자 빙과통 소년을 떠올린다. 다이닝코드 검색 결과 현재 광주광역시에 아이스크림 맛집이 678개소란다. 국내 1.2위 유명 빙프랜차이즈점 30개와 22개소가 포착되고, 24시간 무인 아이스크림 가게도 등장했다.
전통 시대 석빙고가 여러 곳에 존재했지만, 광주 최초 얼음에 관한 기록은 19세 말 광주읍지에 보인다. 1899년 규장각 소장 광주읍지(光州邑誌) 요역(徭役)에 ‘빙정(氷丁)/군정(軍丁)은 장빙(藏氷)한다’ 가 그것이다.
1930년 전라남도사정지 광주의 부 제9장 상공인명록에 얼음 영업소가 서성정에 삼천(森川勝太郞), 1932년 4월 1일 광주우체국에서 발행한 전화번호부에 황금정 산하(山下)제빙판매소가 수록돼 있다.
1935년 8월 7일 부산일보는 광주 수은주 오름, 얼음 수요 증가를 알린다. 광주 수산회사는 1일 400관 생산하나, 하루 1500~1600관을 요한단다. 1938년 8월 8일 경성일보에 광주제빙주식회사는 제조·판매부 전화번호가 든 광고를 낸다.
1946년 11월 24일 수산경제신문에 광주부 성북동 4번지 광주제빙공사(光州製氷公司지배인/서정수), 1949년 4월 24일 동광신문에 광주부 대인동 4-2번지 광주제빙주식회사는 ‘氷(어름)판매특약점모집’ 제목하 광복 후 조합으로 운영하다 주식회사로 개칭했다며, 지점희망자 본사 내담(來談)을 알린다.
< 전남일보 아이스케키 광고 >
1955년 전남일보 광고란에 충장로1가 중앙(中央)과자점, 2가 산업은행옆 태서당(太瑞堂), 4가5번지 부래옥(富來屋), 5가13번지 풍월당(風月堂)에서 아이스크림과 께키를 홍보했다. 1956년 전남상공명감에서 대인동 4-2번지 구주(九州)제빙주식회사(지길풍)를 찾았다.
1958년 7월 31일 평화신문에는 ‘빙과업자 단속에도 복선(複線)?’ 도의 조치를 광주시 당국에선 반대로 표하면서 26일 도 보건과 9개 빙과업자 3~15일 영업정지, 시 당국 30여 개소 빙과업체 위생 검사 실시, 아이스케키 1개당 5천~50만 마리 대장균, 인공감미료 사용범위를 살폈다. 8월 5일 자는 29개소 중 22개소는 아직 약간의 세균이 있지만, 영업정지 안 했단다.
1964년판 호남명감에 양동 307번지에 전남제빙주식회사(명재필), 5번지에 동양제빙주식회사(이길수), 1965년 호남약도에 동양제빙공장(박삼암), 1967년 전화번호부에 계림동 249-1번지 경운당(景雲堂)을 발견했다.
1975~1983년 명감에서 창설연대순 빙과업체(대표·위치·종업원수)를 나열한다. 1960년 동양제빙공장(신직우 양동5-8 8명), 1962년 삼맹냉동기업사(장한섭 광천동51-1 20명), 1969년 광주수산냉동공장(정래희 양동1-5 9명), 1972년 육친산업(윤순기 임동94-83 8명), 삼강산업전남총판(유광현 수기동13), 1976년 ㈜삼진냉장식품(이이득 송하동173-4 9명), 1977년 동신식품공업사(최창석 농성동417-10 18명), 1979년 동양식품(박용선 중흥동533 10명)과 대호냉동식품공업사(김홍준 양산동349-3), 1980년 수창식품공업사(고휘상 소태동671-4), 1981년 효성식품주식회사(황인조 양산동401-22 45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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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순에 위치한 ㈜라벨리(최선웅)는 1954년 호남동 12번지 신선유업(김달금)에서 연원한다. 1975년 소태동 518-31번지(최창우)에 있다가 1988년 화순읍 대리 3번지로 이전, 1997년 현 상호(Lavelee)로 변경했다. 취업정보사이트에 전주공장과 서울영업소를 둔 중소기업으로 종업원 60여명, 연매출액 약 365억원이다. 홈피에 복숭아바로부터 각종 아이스하드 15종이 뜬다.
빙과를 과하게 섭취하면 혈당 수치가 올라 건강에 해롭다. 하지만 이 무더위에 어쩔수 없이 폭염극복 핑계로 500원 하드와 1,400원 콘을 입에 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