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의 강 ‘극락강’
1967년에 발표된 신행일의 노래 ‘호남 나그네’를 들어보자.
신행일 - 호남 나그네 (1967 반야월 작사/배상태 작곡)
아세아레코드 앨범번호 AL 132
< 호남 나그네 가사 >
이 노래를 작곡한 배상태는 경북 성주 출신으로 스무살이던 1956년 대구 KBS 전속가수로 활동하다 서라벌 전문대에 입학해서 작곡 공부를 했다. 1963년 송춘희의 ‘송죽부인’으로 작곡가로 데뷔했지만 주목받지는 못했다. 그러다 1966년에 작곡한 배호의 ‘돌아가는 삼각지’가 히트하고 후속곡으로 1967년 ‘안개 낀 장충단 공원’이 히트하면서 정상급 작곡가가 되었다. 배호의 마지막 곡인 ‘마지막 잎새’와 ‘0시의 이별’까지 배호에게만 170여 곡을 작곡해 주었고 그 외에 2,000여 곡을 작곡했다. 1967년에 발표된 신행일의 ‘호남 나그네’는 배호의 ‘안개 낀 장충단 공원’이 수록된 배상태 작곡집에 들어 있는 곡이다.
신행일(본명 신상희)은 1960년 데뷔곡 ‘인생교차로’를 발표하고 1967년 ‘청춘을 돌려다오’와 ‘호남 나그네’, ‘고향길’, ‘그 이별’이란 노래를 불렀지만 두각을 나타내지는 못했다. 작곡가 배상태의 휘하에 머물면서 배호가 세상을 떠난 후에 ‘배호 모창가수’로 활동했는데 신행일이 불렀던 노래 ‘청춘을 돌려다오’를 나훈아와 현철이 다시 불러서 히트하면서 이름이 알려진다.
‘호남 나그네’ 작사는 우리나라 최고의 작사가 반야월이 맡았다.
‘호남 나그네’의 가사에는 광주의 강 ‘극락강’이 나온다. 극락강은 지도에 표기되는 공식지명은 아니지만 광주시민들은 다 아는 곳이다. 극락강의 지명은 고려시대에 서창나루 부근에 있었던 극락원에서 유래되었다고 하는데 불교를 숭배했던 고려시대에는 서창나루를 극락진이라고 했다 한다. 당시의 극락진은 광주읍내로 들어가는 사람들의 통로였다. 1930년대 미국의 선교사들도 목포에서 배를 타고 서창나루에서 내려서 광주 양림동까지 걸어 들어왔다는 기록이 있다.
극락원은 나주 등 지방으로 부임하는 관리들이 이동 중에 묵던 오늘날의 여관이라고 할 수 있는데 조선시대에는 세금으로 받은 곡식을 보관하는 극락창으로 바뀐다. 그 후에 광주의 서쪽에 있는 창고라는 뜻으로 서창으로 부르게 된다.
극락강이 어디에서부터 어디까지인지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다. 필자는 1920년대와 1930년대 신문을 뒤져 당시에 광주군 극락면에 속한 동리 이름을 살펴보는 것으로 극락강의 위치가 어디쯤인지 근사하게나마 유추해 낼 수 있었다.
1920년대와 1930년대의 신문기사에 등장하는 극락면의 동네로는 운암리, 동림리, 덕흥리, 신례리, 평촌리, 치평리, 쌍촌리, 신덕리, 내방리, 송하리 등이 있었다. 이것으로 유추해 보면 극락강은 최소한 지금의 운암동 산동교에서부터 치평동 극락교와 극락원이 있었던 서창나루를 지나 황룡강과 만나는 지점까지의 구간을 말한다고 볼 수 있겠다.
그러나 그 후 여러 자료를 찾아보고 조사를 하는 과정에서 담양군 봉산면 출신의 가수 김원중으로부터 고향 어르신들이 동네에 있는 강을 극락강으로 불렀다고 하는 것으로 보아 극락강은 담양 가마골에서 시작된 영산강 본류와 무등산 원효계곡에서 광주호를 거쳐 흐르는 하천이 만나는 담양군 봉산면 삼지리 두물머리에서 시작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 같다.
1920년대와 1930년대 신문에는 극락강 소식이 심심치 않게 자주 등장한다. 1937년 7월 27일 동아일보 기사에는 ‘무등산 극락강 배산임수의 광주’라는 제목으로 ‘지세로 보면 전남의 영봉이라고 하는 무등산이 동편에 솟았으며 양양한 극락강수(영산강 상류)가 북서편으로 흐르고 있어서 그야말로 배산임수로 기후풍토가 온화해 사람살이 좋기로 옛날부터 일으는 福地이다’라고 적고 있다.
< 사진1(좌) : 1927년 7월19일 극락강 수영장 할인 동아일보 기사 >
< 사진2(우) : 1958년 7월21일 광주 3수원지 준공 조선일보 기사 >
1927년 7월 19일 자 동아일보 기사에는 ‘극락강 피서객에 朝鐵賃 金5割引’을 제목으로 하는 글이 실려있다.
‘조선철도주식회사에서는 예년과 갓치 전남선 광주 송정리 간에 잇는 극락강(풍영정) 수영장에 내왕하는 승객의 편의를 도읍기 위하여 극락강반에 가정류소를 설치하고 7월 16일부터 9월 5일까지는 열차마다 1분간씩 정차할 뿐 아니라 승차임도 왕복 5할인을 한다함으로 하기 피서객에게는 대단히 편리하다더라’
당시에 여름이면 극락강 풍영정 부근에 수영장을 만들어 운영했고 극락강변에 임시정류소를 설치해서 1분간 정차하고 왕복운임을 반 가격으로 할인해 주었다는 것이다. 그 수영장은 해방이후까지 운영되다가 1970년에 극락강이 오염되면서 폐쇄되었다.
1955년 8월에는 산동교 부근 극락강에 광주시민들의 식수로 쓰일 제3수원지 기공식이 열렸고 3년의 공사 끝에 1958년 7월 14일 준공되었다는 기사도 있다. 1970년대 들어서 제3수원지는 극락강 오염과 때마침 완공된 동복댐의 수원지 확보로 식수로 쓰지는 못하고 1972년 광주 연초제조창의 공업용수용으로 매각되었다.
극락강은 공식지명으로 인정받지 못했지만 극락강 주변에는 극락이란 지명을 쓰고 있는 곳이 많이 있다. 광주에서 송정리로 가는 도로에 놓인 다리 이름은 극락교이고 그 외에도 극락초등학교, 극락강역이 그대로 남아 있다. 극락강역은 송정리와 광주역을 잇는 철로가 생긴 1922년부터 100년이 넘는 세월을 그 자리에서 지키고 있다. 지금의 극락강역사는 6.25 전쟁으로 소실된 것을 1958년에 다시 지어 오늘날까지 남아 있는데 2013년 철도문화재로 지정되었고, 그 이후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작은 꼬마역으로 잘 꾸며서 젊은이들의 프로포즈 명소로 각광을 받고 있다.
1967년 발표된 신행일의 노래 ‘호남 나그네’의 주인공도 그 시절 극락강역에 내려서 빨래하는 처녀를 만나지 않았나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그 처녀는 광주군 극락면 신가리에 살았던 처녀였을 것이고......
광주광역시에서는 민선8기 역점사업으로 영산강과 황룡강 일대를 힐링 여가 관광단지로 개발하는 Y벨트 사업을 추진한 적이 있었다. ‘Y’는 영산강과 황룡강이 합류하는 지점을 형상화한 것이라는데 극락강의 역사를 안다면 극락강과 황룡강 Y벨트 사업이라고 해야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배산임수의 길지로 무등산에 대응하는 광주의 강은 극락강이니까.......
신행일 - 호남나그네 바로가기
https://youtu.be/gbSa8SIH8Vc?si=bFMuqTLZkZT3WrS5